영국에 머물고 있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난 11일 <한겨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재벌개혁론자들은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만, 결국 ‘1원 1표’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재벌개혁론자들에게)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써서 뜻하지 않게 여러분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다”고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재벌옹호’ 비판 받은 장하준 교수의 반격
해체땐 장기적 성장동력 떨어지고
국민 아닌 외국 금융자본에 넘어가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일부일뿐
전체 자본가그룹 힘 약화시켜야 ‘경영권·복지 맞교환’ 타협이 순진?
재벌 백기투항하라면 받아들이겠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지난 3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란 책을 펴낸 이후 재벌개혁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논쟁이 뜨거워졌다. 장 교수는 재벌개혁론을 펴온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을 향해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의 맞교환’ 방식으로 재벌과의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이병천 강원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등이 나서 장 교수를 재벌옹호론자로 비판했다. 두 진영간 논쟁은 인터넷 공간 등을 통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1일 영국에 머물고 있는 장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재벌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물론 개혁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재벌에 집중되는 부다. 어느 나라에서든 부자들은 집중된 부를 이용해 사회 구조나 관습, 이데올로기를 바꾸려 한다. 재벌들이 차이는 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건 당연히 고쳐야 한다. 그런데 주주자본주의 시각에서 ‘왜 이건희가 삼성그룹 지분 3% 갖고서 힘을 행사하냐’고 말한다. 이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만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재벌이란 구조를 한 집안이 소유한다고 보는 게 아니라 비관련 다각화된 기업 집단이라고 본다. 이를 꼭 해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집단 구조의 장점이 있다. 우라나라와 같은 ‘후발 추격자’의 입장에선 (재벌이) 꼭 필요하다. 반 우스개 소리로 하는 얘기지만, 기업 집단체제 장점이 없었으면 삼성은 아직도 양복지(옷감) 만들고, 현대는 길을 닦고 있지 않겠냐? ” -우리나라가 아직도 선진국을 좇는 후발추격자라고 볼 수 있나? “우리가 성공한 분야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나마 강하다고 하는 제조업의 생산성은 미국의 40~50% 수준 밖에 안된다.” -5%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의 기형적 지배구조는 개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개혁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사회적 이익에 맞느냐가 중요하다. 형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순환출자로 엮어서 기업집단 만들면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장점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죽이느냐를 얘기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그런데 일단 얘기 꺼내면 재벌옹호론이라고 한다.” -재벌 경제력 집중이 점점 커져 한국 경제의 쏠림이 커지고 있다? “자꾸 복지국가 얘기하는 게 그걸 해결하자는 것이다. 기업집단구조를 해체해 독립 기업으로 쪼개면 결국 우리나라의 장기적 성장동력이 떨어진다. 그걸 유지하면서도 옛날보다 세금 더 걷어서 공평한 사회를 만들면 된다. 스웨덴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경제력 집중 더 심하다. 발렌베리 기업 관련 기업들이 많게는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나 된다고 얘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삼성도 그 정도는 아니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분들도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나 순환출자제한제 이런 식(강도 높게)으로 하면 결국 쪼개지게 돼 있다. 어떤 분들은 (재벌을 해체해) 400대 기업을 만들자고 하잖나.” -재벌체제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재벌 옹호론’자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다. “재벌체제를 절대악이라구 보는 쪽에선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점을 얘기하면 옹호한다고 한다. 나는 국민연기금이 삼성 대주주가 돼 이재용씨에게 한 십년 시한을 주고 못하면 몰아내거나, 삼성생명을 국유화하면서 그걸로 삼성그룹의 고리 유지해주는 대신에 삼성한테 뭘 받아내야 한다는 얘기도한 사람이다. 그건 게 어떻게 보면 재벌한테 더 끔찍한 소리일 수 있다. 재벌옹호론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재벌이 나쁜 짓 한다고 해서 제도의 유용성이 있는데 그걸 부숴선 안된다. 삼성, 현대 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보조금 줘가고, 국민들이 질 나쁜 물건 사줘가면서 키운 국민 기업이다. 이것을 왜 자꾸 외국 금융자본에 넘겨주려고 하냐.” -재벌개혁론을 앞장서 주장하는 국내 진보성향의 학자들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재벌개혁에 있다고 믿는데?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제일 중요한 것도 아니다. 복지개혁이 훨씬 중요하다. 많지는 않지만 심한 분들은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이라고 본다. 경제민주화엔 복지국가, 노동권 강화, 소비자 협동조합 등 해야 할 게 많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1원 1표’ 논리를 ‘1인 1표’로 제약해야 한다. 재벌개혁을 말씀하는 분들의 경제민주화 논리는 시장에서 ‘1주 1표’가 안되니, 그것을 막고 있는 순환출자 등 고리를 끊어서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기업이 주주의 것이란 것을 인정한다. ‘1인 1표’가 아닌 ‘1원 1표’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어떻게든 시장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경제민주화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말하자만 나는 전체 자본가 그룹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경제 민주화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류 경제민주화론자들은 한국의 특정 자본가의 힘 약화가 경제민주화라고 본다. 이(건희)씨 집안이 3~5% 갖고서 그 지분 이상 힘을 많이 행사한다고 해서 그걸 약화시키기 위해서 순환출자 고리 끊어 3~5% 주주니 그만큼의 힘만 행사하라고 해보자. 그렇게 해서 이씨 집안의 삼성에 대한 영향력이 줄면 국민이 아닌 미국과 영국의 금융자본한테 넘어간다. 결국 자본가 그룹 내에서 권력의 재분배일 뿐이다.” -경제민주화의 목표가 복지국가 건설이 돼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일반 국민입장에선 사실 그게 제일 절박한 얘기다. 솔직히 삼성그룹 이건희씨 집안이 영향력을 잃고 나면 일반 국민들이 하루 좋을지 모르지만, 출산, 교육, 노후 문제 해결 안되면 하루이틀 기분 좋은 것 갖고서 해결 안 된다.”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의 맞교환’을 통해 재벌과 타협하자는 주장이 현실성도 떨어지고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보는 분들이 더 순진한 것 아니냐? 재벌이 너무 세서 타협도 안 된다는 분들이 재벌들한테 백기투항하라고 요구한다. 재벌이 할 역할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뭘 주고서 받아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하나도 안 주고 받기만 한다면, 재벌들이 (개혁안을) 받아들이겠냐?” -재벌과의 타협이란 게 세금을 더 받아내자는 방식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경제민주화 할려면 재벌들 골목상권 침해나 중소기업 하청기업 착취나, 노조 탄압도 다 같이 고쳐져야 한다.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종합적인 패키지(꾸러미)의 일부다.” -왜 ‘선택’의 많은 부분을 진보적 재벌개혁론자들에 비판에 할애했는가? “개혁주의의 의제가 잘못 설정된 게 있다. 민주당이 어떻게 해서 선거에 이겨서 과거 노무현식 개혁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 넓은 의미의 우리편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대강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 장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신자유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해왔다. -박정희 체제의 그림자를 너무 소홀히 다룬다는 비판도 있다? “거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긴한데…. 기본적으로 박정희가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있다고 평가하는게 박정희를 거인이 아니라 보통사람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본다. 한쪽에선 박정희를 민족중흥의 영웅으로 우리를 황무지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했다고 보고, 반대 쪽에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가 박정희가 길을 잘못 들어서 그렇다고 본다. 둘 다 영웅사관이다. 굳이 따지면 큰 인물이긴 했지만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이미 죽은 지 30년이 지나 우리 사회를 규정할 인물이 아니다.” -재벌이 외국자본으로부터 위협받는 적대적 관계라고만 할 수 있나? “오해다. 투자를 많이 하고 일자리 많이 만들어 장기 경영하는 외국 자본가 있으면 정부가 국유화해서 삼성 뺏어서 그런 사람한테 줄수도 있다. 재벌들을 어떻게 보존하면서 바꿔 쓰는 게 일반국민한테 좋은가, 아니면 금융자본에 넘아가게 하는 게 좋은가의 문제다. 솔직히 이씨 집안, 정씨 집안은 누가 누구인지도 국민들이 다 안다. 대강 어디 사는지도 안다. 집앞에 가서 시위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월스트리트(금융자본)는 싸울 실체도 없다. 그렇게 무서운 게 금융자본이다. 재벌은 어쨌든 한국에 뿌리도 있고, 최소한 소속감도 있다. 여러가지 얽힌 것도 많아 그 사람들과 타협하든 아니면 쥐어 패든 뭔가 얻어내는 게 현실적이다.” -재벌개혁론자들과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는 건가? “저는 경제민주화란 게 큰 그림을 봐서 시장에서 자본가 힘의 약화라고 본다. 그걸 위해서 여러가지 할 게 있는데 재벌개혁은 그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재벌 해체 및 약화라고 본다. 그리고 재벌의 해체 자체가 시장논리에 의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기본적 인식의 차이는 부정하지 못한다.” -재벌개혁론자들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오지 않았냐? “그 분들도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또 싫어한다. 그러면 결국 ‘1원 1표’라는 신자유주의 논리 받아들인 것이다. 이분들이 전경련이나 이명박 정부에서 일하는 골수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중요한 부분에서 신자유주의 논리 동의하는것이다. 나는 그게 우려된다구 자꾸 얘기하는 것이다. 거기엔 세계관의 차이가 있다.” 장 교수는 자신이 약간 자극적으로 말을 하면서 논쟁을 풀어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는 좌파 신자유주의란 용어를 써 “뜻하지 않게 여러 분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벌개혁론을 펴는 분들과 최대한 접점을 찾아 좋은 방향으로 논쟁이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끝으로 전했다. 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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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백기투항하라면 받아들이겠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지난 3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하 선택)란 책을 펴낸 이후 재벌개혁을 포함한 경제민주화 논쟁이 뜨거워졌다. 장 교수는 재벌개혁론을 펴온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을 향해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의 맞교환’ 방식으로 재벌과의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이병천 강원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등이 나서 장 교수를 재벌옹호론자로 비판했다. 두 진영간 논쟁은 인터넷 공간 등을 통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1일 영국에 머물고 있는 장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재벌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물론 개혁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재벌에 집중되는 부다. 어느 나라에서든 부자들은 집중된 부를 이용해 사회 구조나 관습, 이데올로기를 바꾸려 한다. 재벌들이 차이는 있지만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이건 당연히 고쳐야 한다. 그런데 주주자본주의 시각에서 ‘왜 이건희가 삼성그룹 지분 3% 갖고서 힘을 행사하냐’고 말한다. 이게 문제라고는 생각하지만 핵심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재벌이란 구조를 한 집안이 소유한다고 보는 게 아니라 비관련 다각화된 기업 집단이라고 본다. 이를 꼭 해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집단 구조의 장점이 있다. 우라나라와 같은 ‘후발 추격자’의 입장에선 (재벌이) 꼭 필요하다. 반 우스개 소리로 하는 얘기지만, 기업 집단체제 장점이 없었으면 삼성은 아직도 양복지(옷감) 만들고, 현대는 길을 닦고 있지 않겠냐? ” -우리나라가 아직도 선진국을 좇는 후발추격자라고 볼 수 있나? “우리가 성공한 분야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나마 강하다고 하는 제조업의 생산성은 미국의 40~50% 수준 밖에 안된다.” -5%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의 기형적 지배구조는 개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개혁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사회적 이익에 맞느냐가 중요하다. 형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순환출자로 엮어서 기업집단 만들면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장점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죽이느냐를 얘기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그런데 일단 얘기 꺼내면 재벌옹호론이라고 한다.” -재벌 경제력 집중이 점점 커져 한국 경제의 쏠림이 커지고 있다? “자꾸 복지국가 얘기하는 게 그걸 해결하자는 것이다. 기업집단구조를 해체해 독립 기업으로 쪼개면 결국 우리나라의 장기적 성장동력이 떨어진다. 그걸 유지하면서도 옛날보다 세금 더 걷어서 공평한 사회를 만들면 된다. 스웨덴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경제력 집중 더 심하다. 발렌베리 기업 관련 기업들이 많게는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이나 된다고 얘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삼성도 그 정도는 아니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분들도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나 순환출자제한제 이런 식(강도 높게)으로 하면 결국 쪼개지게 돼 있다. 어떤 분들은 (재벌을 해체해) 400대 기업을 만들자고 하잖나.” -재벌체제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재벌 옹호론’자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다. “재벌체제를 절대악이라구 보는 쪽에선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점을 얘기하면 옹호한다고 한다. 나는 국민연기금이 삼성 대주주가 돼 이재용씨에게 한 십년 시한을 주고 못하면 몰아내거나, 삼성생명을 국유화하면서 그걸로 삼성그룹의 고리 유지해주는 대신에 삼성한테 뭘 받아내야 한다는 얘기도한 사람이다. 그건 게 어떻게 보면 재벌한테 더 끔찍한 소리일 수 있다. 재벌옹호론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재벌이 나쁜 짓 한다고 해서 제도의 유용성이 있는데 그걸 부숴선 안된다. 삼성, 현대 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보조금 줘가고, 국민들이 질 나쁜 물건 사줘가면서 키운 국민 기업이다. 이것을 왜 자꾸 외국 금융자본에 넘겨주려고 하냐.” -재벌개혁론을 앞장서 주장하는 국내 진보성향의 학자들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재벌개혁에 있다고 믿는데?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제일 중요한 것도 아니다. 복지개혁이 훨씬 중요하다. 많지는 않지만 심한 분들은 ‘경제민주화 = 재벌개혁’이라고 본다. 경제민주화엔 복지국가, 노동권 강화, 소비자 협동조합 등 해야 할 게 많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1원 1표’ 논리를 ‘1인 1표’로 제약해야 한다. 재벌개혁을 말씀하는 분들의 경제민주화 논리는 시장에서 ‘1주 1표’가 안되니, 그것을 막고 있는 순환출자 등 고리를 끊어서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결국 기업이 주주의 것이란 것을 인정한다. ‘1인 1표’가 아닌 ‘1원 1표’는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어떻게든 시장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경제민주화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말하자만 나는 전체 자본가 그룹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경제 민주화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류 경제민주화론자들은 한국의 특정 자본가의 힘 약화가 경제민주화라고 본다. 이(건희)씨 집안이 3~5% 갖고서 그 지분 이상 힘을 많이 행사한다고 해서 그걸 약화시키기 위해서 순환출자 고리 끊어 3~5% 주주니 그만큼의 힘만 행사하라고 해보자. 그렇게 해서 이씨 집안의 삼성에 대한 영향력이 줄면 국민이 아닌 미국과 영국의 금융자본한테 넘어간다. 결국 자본가 그룹 내에서 권력의 재분배일 뿐이다.” -경제민주화의 목표가 복지국가 건설이 돼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일반 국민입장에선 사실 그게 제일 절박한 얘기다. 솔직히 삼성그룹 이건희씨 집안이 영향력을 잃고 나면 일반 국민들이 하루 좋을지 모르지만, 출산, 교육, 노후 문제 해결 안되면 하루이틀 기분 좋은 것 갖고서 해결 안 된다.” -‘재벌의 경영권과 복지의 맞교환’을 통해 재벌과 타협하자는 주장이 현실성도 떨어지고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보는 분들이 더 순진한 것 아니냐? 재벌이 너무 세서 타협도 안 된다는 분들이 재벌들한테 백기투항하라고 요구한다. 재벌이 할 역할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뭘 주고서 받아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하나도 안 주고 받기만 한다면, 재벌들이 (개혁안을) 받아들이겠냐?” -재벌과의 타협이란 게 세금을 더 받아내자는 방식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경제민주화 할려면 재벌들 골목상권 침해나 중소기업 하청기업 착취나, 노조 탄압도 다 같이 고쳐져야 한다. 세금을 더 걷는 것은 종합적인 패키지(꾸러미)의 일부다.” -왜 ‘선택’의 많은 부분을 진보적 재벌개혁론자들에 비판에 할애했는가? “개혁주의의 의제가 잘못 설정된 게 있다. 민주당이 어떻게 해서 선거에 이겨서 과거 노무현식 개혁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 넓은 의미의 우리편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대강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 장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신자유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해왔다. -박정희 체제의 그림자를 너무 소홀히 다룬다는 비판도 있다? “거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긴한데…. 기본적으로 박정희가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있다고 평가하는게 박정희를 거인이 아니라 보통사람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본다. 한쪽에선 박정희를 민족중흥의 영웅으로 우리를 황무지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인도했다고 보고, 반대 쪽에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가 박정희가 길을 잘못 들어서 그렇다고 본다. 둘 다 영웅사관이다. 굳이 따지면 큰 인물이긴 했지만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이미 죽은 지 30년이 지나 우리 사회를 규정할 인물이 아니다.” -재벌이 외국자본으로부터 위협받는 적대적 관계라고만 할 수 있나? “오해다. 투자를 많이 하고 일자리 많이 만들어 장기 경영하는 외국 자본가 있으면 정부가 국유화해서 삼성 뺏어서 그런 사람한테 줄수도 있다. 재벌들을 어떻게 보존하면서 바꿔 쓰는 게 일반국민한테 좋은가, 아니면 금융자본에 넘아가게 하는 게 좋은가의 문제다. 솔직히 이씨 집안, 정씨 집안은 누가 누구인지도 국민들이 다 안다. 대강 어디 사는지도 안다. 집앞에 가서 시위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월스트리트(금융자본)는 싸울 실체도 없다. 그렇게 무서운 게 금융자본이다. 재벌은 어쨌든 한국에 뿌리도 있고, 최소한 소속감도 있다. 여러가지 얽힌 것도 많아 그 사람들과 타협하든 아니면 쥐어 패든 뭔가 얻어내는 게 현실적이다.” -재벌개혁론자들과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는 건가? “저는 경제민주화란 게 큰 그림을 봐서 시장에서 자본가 힘의 약화라고 본다. 그걸 위해서 여러가지 할 게 있는데 재벌개혁은 그 중 하나라고 본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재벌 해체 및 약화라고 본다. 그리고 재벌의 해체 자체가 시장논리에 의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이런 기본적 인식의 차이는 부정하지 못한다.” -재벌개혁론자들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오지 않았냐? “그 분들도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또 싫어한다. 그러면 결국 ‘1원 1표’라는 신자유주의 논리 받아들인 것이다. 이분들이 전경련이나 이명박 정부에서 일하는 골수 신자유주의는 아니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중요한 부분에서 신자유주의 논리 동의하는것이다. 나는 그게 우려된다구 자꾸 얘기하는 것이다. 거기엔 세계관의 차이가 있다.” 장 교수는 자신이 약간 자극적으로 말을 하면서 논쟁을 풀어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는 좌파 신자유주의란 용어를 써 “뜻하지 않게 여러 분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벌개혁론을 펴는 분들과 최대한 접점을 찾아 좋은 방향으로 논쟁이 이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끝으로 전했다. 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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