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바람에 복잡한 속내
전경련 고용위축론 등 깃발들고
개별 그룹들은 ‘주판알’ 분주
전경련 고용위축론 등 깃발들고
개별 그룹들은 ‘주판알’ 분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경제민주화·재벌개혁 바람에, 재계는 복잡한 표정이다. 충분히 예상했고 시대적 변화를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비현실적인 요구라며 억울해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다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재계 단체가 앞장서서 공세적 자세를 취하는 대신, 개별 그룹은 공식 입장을 자제하고 추이를 지켜보며 주판알을 튕기는 등 역할 분담을 하는 모양새다.
개별 기업에 견줘 여론 부담이 적은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요구에 맞서 선봉에 서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민주화 의제를 선점하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지난 6월 ‘경제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 이어, 지난 10일 2차 토론회를 열었다. 아울러 한경연에 사회통합센터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전경련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재벌개혁을 위한 수단이어선 안 된다는 전략적 관점을 강조한다. 아울러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들어, 경제민주화 바람이 투자와 고용 등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위기론’도 부각시킨다. ‘기업 때리기’나 ‘포퓰리즘’이라는 프레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며 ‘국부 유출’ 우려도 강조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정책으로는,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는 물론 투자와 고용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며 “경제민주화 추진이 재벌개혁과 동일시돼서는 안 되며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개별 재벌그룹들은 이미 2010~2011년부터 적극적인 정세 분석과 여론 파악을 통해 경제민주화 흐름을 예상하고 대비해왔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기에 이명박 정부가 공정사회, 동반성장을 화두로 내놨겠냐”며 “이미 2년 전부터 대기업 중심의 경제 시스템에 변화가 올 것을 예상해왔다”고 말했다. 또다른 수위권 그룹의 임원도 “큰 틀에서 세상이 변하고 있고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협력업체들과 상생하기 위한 작업들을 펼치고 다양하게 기부를 해온 것도 그래서다”라고 전했다.
얼핏 정치권이 추진하는 경제민주화에 동의하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속내를 들여다보면 억울해하거나 경제민주화 방식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하는 데 더 방점을 찍는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재벌들이 잘못하는 것, 탈세나 불법승계 등의 문제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지난해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한 것처럼 기업들이 노력해왔는데 무조건 재벌은 나쁘다, 때려잡아야 한다는 데 대해선 억울하다”고 말했다. 중견 그룹의 한 임원도 “순환출자든 상호출자든 경영권을 방어하고 기업 인수합병을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것인데, 이제 와서 이를 해소하라고 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며 “지배구조를 바꾸는 데 비용을 쓰면 투자나 고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유통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놓고 말은 못해도 불만이 많다”며 “경제위기이고 국내 경기도 침체로 치닫는 시기라 통합 리더십이 필요한데 편가르기 하고 재벌을 공적으로 만들어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고 털어놨다.
개별 그룹으로 보면 처지에 따라 정치권 움직임을 주시하며 대응방안을 저울질한다. 이미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한 한 그룹의 임원은 “우리는 순환출자와 무관해, 일감 몰아주기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면서도 “먼저 깃발 들고 나섰다가 다른 재벌들한테 욕을 먹을 수 있는 점이 고민”이라고 말했다.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다른 한 그룹의 관계자는 “지주회사 규제 강화가 고민”이라며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일부 대기업은 향후 경제민주화 바람이 약화될 것을 점치기도 한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아직은 공약단계일 뿐 입법 과정이 많이 남아 있다”며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경제민주화를 1번으로 내건 게 상징적이긴 하지만, 여론수렴 단계에서 의견 개진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4대 그룹의 고위관계자도 “이번 바람이 미풍에 그칠 것으로 보진 않지만, 구체적인 정책입안 단계에 가면 엄청난 위기로는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며 “대관 업무는 지금까지 강화해왔는데 앞으론 더욱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산업팀 종합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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