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수급 ‘주의’ 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에서 직원들이 전력량을 확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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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난 왜 해마다 반복되나
전력난 왜 해마다 반복되나
지난해 9월15일 발생한 대규모 순환정전은 우리 사회에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라는 새로운 걱정거리를 던져줬다. 올 여름 역시 폭염으로 전력 소비량이 치솟고 있다. 특히 주요 산업체들이 여름휴가를 마치고 이번주부터 공장 가동을 재개함에 따라 전력수급 불안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하루하루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전력수급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짚어본다.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 미국·일본·독일보다 적어
산업용, 가스·석유보다 싸 10년간 전기사용 63% ‘폭증’
KDI “에너지가격 왜곡 심각 국가 연간 1조원 손실 발생”
계속되는 전력수급 불안에 새 발전소 건설 탄력받지만 생태계 파괴 등 문제점 많아
전력효율 향상 시스템 개발 조명·간판 LED 교체 등 필요 “국민이 전기 낭비의 주범입니까?” “이렇게 더운데 에어컨을 틀 수밖에요.” 지난해 9월 대규모 정전사태, 올여름 전력 불안에 따른 ‘절전’ 정책에 따라 사무실과 학교, 에스엔에스(SNS) 공간에는 ‘절전 스트레스’로 인한 불만들이 터져나온다. 폭염과 열대야는 한풀 꺾였지만, 수요가 공급량의 턱밑까지 들어찬 현재의 전력수급 구조상 늦더위 한방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다. 대규모 산업체들의 집중 휴가철이 끝난 것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계획된 발전소 건설이 끝나는 2014년까지는 전력수급 불안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전력 과소비, 일반 가정의 책임?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9510㎾h로 일본(8110㎾h), 프랑스(7894㎾h)보다 높다. 일반 가정의 전력 과소비를 전력수급 불안요소로 말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통계다. 그러나 가정용 전력 소비량을 따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를 보면 1인당 가정용 전력소비량은 1183㎾h로 미국(4430㎾h), 프랑스(2639㎾h), 독일(1700㎾h), 일본(2246㎾h)보다 적다. 지난해 국내 전력소비량을 살펴보면 산업용이 55%로 가장 많고, 일반용 22%, 주택용 18%, 교육용 및 농사용 각각 2%로 뒤를 이었다. 게다가 산업용 전력은 지금까지 저렴한 값에 공급돼 왔다. 경제 성장을 위해 산업체들에 혜택을 준 것이다. 지난해 원가회수율(전력 생산비용 대비 전기요금 비율)을 보면 주택은 100원에 생산된 전기를 88.3원에, 일반건물은 92.6원에 구입했지만, 산업체는 87.5원에 구입했다. 송전·배전 비용 등의 원가 차이가 있어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지난해 한전의 1㎾h당 판매단가는 산업용의 경우 81.23원으로 주택용(119.99원)보다 싸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오이시디 국가 평균의 62%(2010년 기준)로 낮은 수준이다. 이낙연 민주통합당 의원은 “기업의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해 정부가 대기업에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한전은 지난해 전력사용량 상위 20곳 기업에 혜택을 주며 7792억의 손실을 떠안았다”고 지적했다. 한전은 “지난해 산업계에 원가보다 싸게 전력을 팔아 2조2000억원의 혜택을 줬다”고 주장한다. 산업용 전력을 비롯해 전기요금이 석유·가스 등 1차 에너지보다 싸다 보니 전력 소비는 자연스레 증가했고, 에너지 구조 자체에 왜곡을 가져왔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전기요금은 21% 올랐고, 가스와 경유는 72%, 165% 값이 뛰었다. 같은 기간 경유 소비는 27% 줄었지만 전기 사용량은 63%나 늘었다. 공장이나 농촌에 기름 대신 전력을 사용하는 설비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에너지 가격 왜곡이 심각한 대체소비를 유발하며, 국가적으로 연간 1조원의 손실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도 “철강·자동차 등 제조업 없이 우리 경제를 꾸려갈 수 없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동안 우리 산업 구조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전력을 많이 쓰는 구조로 발전해왔고,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전력 과소비의 주범은 산업계라는 결론인 셈이다. ■ 닥치고 발전소만 만든다고? 불안한 전력 수급 상황은 공급확대 요구로 이어진다. 최근 고리원전 1호기가 슬그머니 재가동된 것 또한 ‘전력수급 불안’이라는 분위기에 힘입은 바 컸다. 원자력발전소 확대, 신규 발전소 건설 등 공급 정책은 점점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공급 중심 정책의 한계는 명확하다. 환경·생태의 가치가 날로 커지는데다 지자체·지역주민들의 반대라는 ‘불확실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2006년 정부가 발표한 3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06~2021년)을 보면, 올해까지 준공하기로 계획됐으나 지연·취소된 발전소의 전력 설비 용량은 448만㎾에 이른다. 2013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는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2호기와 올해 12월 준공될 에스케이 이앤에스(SK E&S)의 오성복합화력발전소 외에 나머지 발전소들은 지자체나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 중부발전의 서울복합화력발전소 1·2호기 건설은 지역주민의 반대로 착공시기가 불투명 하고, 인천 송도복합화력발전소 1·2호기도 인천시의 반대에 표류중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3차 수급계획상 2010~2013년 건설 예정이었던 민간 발전설비의 82%가 취소 또는 6개월 이상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민간 발전사들이 공급에 참여하면서, 이윤의 논리에 따라 발전소 착공을 미루거나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왕왕 벌어졌다. 연료값이 올라 타산이 맞지 않게 되거나, 자금난을 겪게 되면 전력 공급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소규모 발전소를 전력 수요지에 설치해 전력 공급을 분산하는 ‘구역전기 사업’이 단적인 예다. 2004년 도입된 뒤 26개 민간 사업자가 영업을 시작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구역전기 사업자는 13곳뿐이다. 발전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으로 적자가 쌓였기 때문이다. 안현효 대구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장기적인 전력 수요 예측에서 지역의 반대와 민자 발전의 참여는 모두 리스크로 봐야 한다”며 “민자 발전을 통한 공급 중심 정책의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미워도 다시 한번, 절전 안타깝지만 전력 수급 구조와 정책 기조의 변경은 먼 이야기다. 당장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거나, 산업구조를 개편할 수 없다. 당장은 ‘절전’을 해법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화력발전소를 짓는 데는 2조~3조원이 들고, 원전의 경우 건설 비용 외에 주변 지역발전사업, 방사능물질 폐기 비용에만도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앞으로 전력 수요가 커질수록 액화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열복합발전소 건설이 촉진될 수밖에 없다. 건설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데다 석탄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자제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액화천연가스는 대표적으로 ‘비싼’ 에너지라는 점이다. 수요가 늘어 전력 공급 압박이 거세질수록 한전의 적자는 누적되고, 이는 다시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연결된다. 또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은 더딘 편이다. 결국 절전이 전력 수요를 안정시키고,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특히 여름철 냉방수요는 전체 전력수요의 21%(약 1500만kW)를 차지한다. 피크 시간대인 오후 2~3시 사이에 5분만 에어컨을 꺼도 예비전력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력효율향상 시스템 구축, 조명·간판 발광다이오드(LED) 교체 등 장기적으로 전력을 적게 쓰는 구조로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안현효 교수는 “2010년부터 한전이 5~10분 단위로 주요 건물의 에어컨 온도 조절, 전원 차단을 제어하고 보조금을 주는 원격 제어 방식을 도입했지만 대중화되지 못했다”며 “피크 시간대 수요를 관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통해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욱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도 “공급능력이 늘지 않고, 전기요금이 수요를 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번 여름은 절전을 통해 수요를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승준 노현웅 기자 gamj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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