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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꼭꼭 숨기고 가짜 찍어내고…5만원권 ‘돈맥경화’

등록 2012-09-05 20:18수정 2012-09-05 22:30

검은돈으로 꼭꼭 숨기고 가짜 찍어내고…신사임당 화나시겠네
경제활력 불어넣겠다던 5만원권
29조 풀려 화폐 57% 차지하지만
지하경제로 흘러들어 ‘돈맥경화’
‘가짜돈’ 규모도 크게 늘어 골치
유통 느린 탓에 통화정책도 안먹혀

돈을 돌고 돌아야 돈값을 한다. 잘돌지 않는 돈은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준다. 자동차 내연기관의 윤활유가 어디로 새거나 오래돼 뻑뻑해지면 자동차 성능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은행에서 나오는 법정화폐 가운데 최고액권인 5만원짜리 지폐가 요즘 ‘돈값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2009년 6월23일 처음 등장할 때의 취지가 점차 무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와 한은은 화폐 발행 및 유통의 비용은 낮추면서도 편의성을 높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5만원권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는커녕 지하경제를 키우고 ‘돈맥 경화’ 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급수단으로 5만원권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한은 통계를 보면 6월 말 현재 시중에 풀려 있는 5만원권 발행 잔액은 모두 28조7981억으로 1년 만에 32.7%나 늘었다. 장수로는 5억8774장, 경제활동인구 1인당 대략 24장씩 나눠줄 수 있는 양이다. 전체 화폐발행 잔액 50조2265억원의 57.3%를 차지할 정도로 5만원권의 비중은 커졌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온몸을 거쳐 다시 심장으로 돌아와 새로운 피로 바뀌듯 한은이 공급한 돈은 경제 현장을 두루 누비다 다시 한은 금고로 흘러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5만원권에는 이런 순환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돈이 많다. 한은이 새로 공급한 화폐 대비 돌아온 화폐의 양을 뜻하는 환수율을 권종별로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올 상반기 중 5만원권 환수율은 66.4%으로 1만원권(115.3%)이나 5000원권(95.4%)과 뚜렷히 대비된다. 어딘가를 떠돌거나 잠겨 있는 5만원권이 그만큼 늘었다는 반증이다. 일부는 뇌물이나 도박자금 같은 지하경제의 ‘검은 돈’으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크다.

5만원권의 비중이 커진 뒤 위조지폐의 규모가 커졌다는 것도 골칫거리다. 올 상반기 한은이 발견한 5만원권 위조지폐는 모두 220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배 가까이 증가했다. 5만원권에는 22가지의 위조방지 기술이 들어있지만 위조 수단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가짜 돈의 증가로 법정화폐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시장경제의 토대를 위협할 수 있다. 서민중산층 사이엔 5만원권의 등장으로 “경조사비나 세뱃돈 단가만 높아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작 한은이 우려하는 5만원권의 가장 큰 부작용은 다른 데 있다. 바로 통화정책의 제약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거나 잠기는 경우가 많으면 통화승수의 하락으로 나타난다. 통화승수는 시중 유통성지표인 ‘광의통화’(M2)를 한은이 시중에 공급한 ‘본원통화’로 나눈 값이다. 공교롭게도 5만원권 발행 뒤부터 통화승수는 가파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08년 26.2배에 이르렀던 통화승수는 올해 6월 기준으로는 21.9배까지 떨어졌다.

통화승수가 떨어지면 통화정책의 유효성도 떨어진다. 경기가 나빠지면 중앙은행은 투자와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야하는데, 통화의 유통속도가 떨어져버리면 먹혀들지 않는다. 통화승수 하락은 기업이나 가계는 물론이고, 한은이 공급한 돈을 바탕으로 더 많은 신용을 창출해야 할 금융기관까지 모험심과 도전 정신, 자신감을 점차 잃고 있다는 사후적 신호다.

한은도 5만원권 발행이 통화승수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인정한다. 최근에는 5만원 발행 영향을 제외할 경우의 통화승수를 27배 수준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한은 관계자는 “통화승수의 하락은 실물경기의 둔화 등 화폐의 수급요인 이외에도 5만원권 발행에 따른 본원통화 급증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는 통화량이 아니라 금리가 통화정책의 주된 파급 경로이기 때문에 통화승수의 하락이 곧바로 통화정책의 제약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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