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당선이 되면 무슨 일이든 다 해결해 줄 것처럼 약속한다. 하지만 똑똑한 정치인이나 공무원, 전략가 몇명이 팔을 걷어붙인다고 뚝딱 해결되는 사회문제는 이제 거의 없다. 고령화, 기후변화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복합적인 문제도 적지 않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사회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사회혁신’이 일찍부터 주목받아왔다. 발상의 전환이 기업에 혁신을 가져오듯, 사회혁신은 사회문제를 정의하고 접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초 서울혁신기획관을 만들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혁신이 한국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한 셈이다. 박 시장은 사회혁신을 확산해 서울을 세계적인 사회혁신 수도로 만들고자 한다.
“사회혁신이야말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아시아미래포럼 첫째날인 16일 오후 종합세션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사회혁신이란 화두를 던진다. 박 시장의 생각을 전자우편 인터뷰로 들어봤다.
박 시장은 사회혁신이 지향할 최우선 가치로 ‘협력’을 꼽았다. “사회혁신은 참여, 공유, 개방, 협력의 정신을 가진 웹 2.0과 맥을 같이한다”며 “사회혁신을 위해서는 국가와 시장, 사회의 경계를 넘어선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협력은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다고 박 시장은 강조한다. 예컨대 종전까지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은 사회공헌활동으로, 정부는 복지정책으로, 시민사회는 자활운동으로 접근했다. 이제는 뚜렷한 전략 아래 이런 자원을 결합하는 통합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시장이 그리는 사회혁신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조는 민간이 주도하고, 관은 지원하는 형태이다. 영국에서 사회혁신이 발달한 이유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관의 신뢰가 크지 않고 협력 경험이 일천하기에 단계적인 신뢰회복과 관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민관의 협력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서울시는 정책수립, 집행, 평가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최대한 장려하고 있다. 시민의 의견을 듣고 정책을 마련하는 ‘청책워크숍’, 500억원 규모의 예산 사용처를 주민들이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 시민복지의 기준선을 주민 눈높이에 맞춰 결정하는 ‘1000인 원탁회의’ 등이 그런 것이다. 박 시장은 “시민들은 정책의 소비자나 수혜자에서 한걸음 나아가 원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바꿔가는 생비자(프로슈머)로 변해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소통과 신뢰가 증가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며, 삶의 질은 높아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가 사회혁신을 확산해가는 데 풀어가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박 시장은 사회혁신의 개념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가장 큰 걸림돌로 생각한다. 그러나 박 시장은 “시작은 힘이 들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우리 사회는 역동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공감대가 형성되면 사회혁신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기존의 법과 제도에도 걸림돌이 많다. 사회혁신은 새로운 방법이므로 기존의 법규와 상충하거나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회혁신 정책의 하나인 ‘공유도시 서울’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법적 정비와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법률도 검토해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박 시장은 또 사회혁신이 퍼져 나가려면 무엇보다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자본시장에서도 사회투자가 증가하겠지만 현재는 공공부문의 투자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며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회투자기금이 조성되면, 사회혁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시장의 발표 뒤 도시재생에 성공한 스웨덴 말뫼의 일마르 레팔루 시장과 스페인 빌바오의 아레소 이본 부시장이 함께 토론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간 경험을 공유하고,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이끌어내게 된다. <끝>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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