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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이마트의 강아지, 무이자 할부 인생

등록 2012-10-26 16:11수정 2012-10-26 20:57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최근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는 반려동물 판매전문점인 ‘몰리스펫샵’에서 반려동물이 무이자 할부로 판매되고 있다. 잘 안 팔리는 품종에 대해선 50% 할인 판매도 이뤄진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국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최근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는 반려동물 판매전문점인 ‘몰리스펫샵’에서 반려동물이 무이자 할부로 판매되고 있다. 잘 안 팔리는 품종에 대해선 50% 할인 판매도 이뤄진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토요판|생명] ‘이마트 몰리스펫샵’ 동물판매 조사
▷ 대형마트는 ‘소비자 지상주의’가 구현되는 곳이다. 대형마트 안의 노동자가 장갑도 끼지 못한 채 온종일 서서 돈을 받는 사이 대형마트 밖의 사장님들은 하나둘 사라져 갔다. ‘소비 천국’의 그늘이 들춰지면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조례 등 부작용을 개선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가 있으니, 이곳에서 24시간 사는 개·고양이·햄스터·거북이들이다. 이들이 지금 ‘생명에 대한 예의’를 묻고 있다.

이마트 대표의 푸들 ‘몰리’
그 이름 따서 1호점 낸 이후
2년만에 15곳으로 매장 넓혀
동물자유연대가 13곳 조사

동물보호법이 금지한
2개월 미만 강아지도 포함
동물이 쉽고 싸게 거래되면
충동구매, 유기로 이어져
외국선 상업적 판매 금지 추세

‘6개월 무이자-6개월 분납시 매월 8만3340원’.

엎드린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 앞에 가격표가 붙어 있다. 아이들은 강아지와 고양이를 열중해 쳐다본다. 지난 22일 이마트 인천 송림점의 몰리스펫샵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이 트위터를 타고 퍼져나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생명에 대한 모독일까? 아니면 동물 역시 쇼핑 목록에 지나지 않는 걸까?

23일 이마트 경기 안산점. 개 10마리, 고양이 1마리, 햄스터 6마리 등이 투명 플라스틱 전시관 안에 갇혀 있었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 활동가가 손님인 척 물어보았다.

“시츄가 네 마리나 되네요.” “시츄는 무조건 30% 할인이에요. 엄마를 못 찾아서 엄마 찾기 프로젝트 중이예요.” “……” “오늘 당장 사시면 50%까지 해드릴게요.” “집에 가서 생각해보고요” “내일까지 오시면 50% 해드릴게요!”

동물자유연대가 26일 ‘몰리스펫샵 동물판매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9월부터 두 달 동안 이마트의 동물판매 전문점 몰리스펫샵 15개점 가운데 경기 용인 구성점과 부산 서면점을 제외한 13개 매장을 조사했다.

이날 동물자유연대는 “일부 매장에서 동물보호법을 어긴 채 생후 2개월 미만의 개를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기준을 어길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은 업체 등록을 취소하거나 6달 이하의 영업 정지를 내리게 된다.

몰리스펫샵은 이마트가 직접 운영하는 국내 최대 ‘반려동물 원스톱 멀티숍’이다. 반려동물과 사료·장남감 등 각종 사육용품을 판매하고 유치원, 병원, 미용실 등을 둔 매장도 있다. 정용진 이마트 대표(신세계 부회장)의 반려동물 푸들 ‘몰리’의 이름을 따 2010년 용인 구성점에 1호점을 낸 이래 2년 만에 전국 15곳으로 매장을 넓혔다.

동물자유연대가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대전 월평점, 대전터미널점과 경기 분당점에서 생후 2달 미만의 개가 전시·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 월평점은 조사 시점인 9월19일에 7월25일에 태어난 말티즈를 팔고 있었으며, 대전터미널점에서는 7월23일 태어난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에 대해서 바로 분양이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생후 2개월 되는 날에 앞서 미리 판매에 돌입한 것이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이기순 동물자유연대 정책기획국장이 말했다.

“새끼는 면역력도 낮고 전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2개월 미만 판매 금지 규정이 만들어진 거죠.”

새끼들은 귀엽다. 쇼핑객들의 관심을 끈다. 몰리스펫샵 앞에는 항상 어린이들이 몰려 있다. 이 국장은 “당장 팔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시 효과를 노리고 2개월 미만의 개를 갖다 놓은 매장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양재점, 의정부점 등은 2개월 미만의 새끼를 전시했지만, ‘파느냐’는 조사팀의 문의에는 아니라고 답했다.

동물보호법상 사육시설 기준도 어긴 매장도 발견됐다. 동물자유연대는 서울시 문정동 가든파이브점의 경우에는 토끼 사육장이 딱 한 마리 앉아 있을 정도로 좁아 토끼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동물판매점의 전시실은 최소한 동물의 체장(코부터 꼬리까지)의 2배 이상의 길이와 1.5배 이상의 너비를 요구한다.

대형마트는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데다 조명이 밝아 동물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번 조사에서도 동물복지적 문제점이 지적됐다.

대전 월평점에서는 햄스터가 계속해서 벽을 긁는 이상행동이 관찰됐고 밥을 먹지 않는 도마뱀에게 억지로 급여하는 현장 또한 포착됐다. 대전터미널점에서는 햄스터 15~20마리가 좁은 사육장에서 밀집 사육됐으며, 거북이 약 20마리가 한 수조 안에서 한데붙어 살았다. 동물이 쉴 수 있는 쿠션이나 물을 마시는 급수기, 구경꾼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은신공간(집)을 제공하지 않은 매장도 다수였다. 어린이들이 벽을 쳐도 제지하지 않고, 배설물이 제때 치워지지 않아 개가 먹고 있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고 동물자유연대는 밝혔다. 조사 당시 고양이에게 장난감을 제공한 매장은 서울 자양점이 유일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을 손쉽게 사고파는 행위를 반대한다. 자유경쟁 시장에 맡기면 가격경쟁으로 인해 동물이 싼값에 거래되면서, ‘대량 번식-대량 소비’ 체제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동물을 만들고 그렇게 생산된 동물을 즉흥적으로 사서 버리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는 우리처럼 반려동물을 일상적으로 사고파는 문화가 없다. 혈통을 중심하는 일부 개 품종에 대해서만 전문 브리더(사육업자)가 존재하는 정도다. 가정에서 동물이 새끼를 낳으면 지인에게 입양시키거나 동물보호센터나 동물병원으로 보낸다. 대부분 사람들은 유기견이 모이는 동물보호센터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게 일반적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사설 동물 판매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동물보호단체 등에서 구조한 동물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안이 심의 중이다. 인위적 번식과 새끼 판매로 이어지는 상업적 동물 판매가 전면 금지되는 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웨스트 헐리우드 등 일부 카운티와 텍사스 오스틴시, 캐나다 리치몬드시 등도 사설 매장의 동물판매를 금지시킨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대형 유통업체가 동물을 ‘미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고 이기순 국장은 비판한다. 지난 여름에는 현대백화점 등 일부 유통업체가 경쟁적으로 동물체험전까지 열면서 ‘백화점 동물원’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동물의 ‘대량 번식-대량 소비 체제’는 우리나라가 유일해요. 대형마트에서 동물을 무이자 할부·특별 할인 판매하는 나라도 우리 밖에 없고요.”

26일 이마트 관계자는 “직영점이 아닌 업체가 들어와서 하는 일부 매장에서 생후 2달 미만의 개가 판매된 것으로 확인했다”며 “바로 시정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무이자 할부 판매에 관해서도 정서적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므로 앞으로 광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동물자유연대는 이마트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마트에게는 몰리스펫샵에서 동물 판매를 중단하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라고 주장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서울시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조례 제정에 맞춰 대형마트에서 동물 판매를 금지하는 조항을 조례에 추가하는 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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