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산업개발 99년 증자때 “경영권 강화” 대출받아…
두산그룹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 및 세습을 위해 계열사 유상증자 납입자금의 마련을 직접 주관하면서 128억원의 대출 이자까지 회삿돈으로 대신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재벌 총수 일가가 회삿돈을 빼돌려 소유지배권 확장을 위해 쓴 것으로, 한국 재벌체제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않을 전망이다.
<한겨레>가 9일 단독으로 입수한 두산산업개발(옛 두산건설) 내부자료를 보면, 박용성 그룹회장과 박용만 ㈜두산 부회장 등 총수 일가 28명은 1999년 11~12월 두차례에 걸쳐 실시된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293억원을 대출받았는데, 2000년 이후 최근까지 5년여 동안 발생한 이자 128억원을 회사가 대신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산산업개발은 이와 관련해 “지난 5년간 대주주들의 이자비용을 해마다 20억~30억원씩 대납했다”면서 “이 돈 역시 대주주의 동의를 받아 회사 명의로 대출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산업개발은 회삿돈으로 총수 일가의 이자비용을 대신 낸 이유에 대해 “당시 회사 부채비율을 낮추지 않으면 퇴출을 당하는 상황에서 대주주들이 대출을 받아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박용성 회장 등 두산 총수 일가는 회삿돈으로 이자를 낸 게 탈이 날 것 같자 지난 5일 뒤늦게 115억원을 회사에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총수 일가의 증자대금 이자를 대신 내준 것은 두산산업개발이 ㈜두산, 두산중공업과 함께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를 지탱하는 핵심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와 4세로의 세습을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증자에 참여한 박용오 전 그룹회장의 둘째 아들 박중원(37)씨는 “인감을 맡겨놓으면 그룹차원에서 이자 납부 등 모든 걸 알아서 했다”며 “99년 당시엔 유학 중이라 증자 등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두산산업개발은 직원들에게도 각각 수천만원의 대출을 받게 해 회사주식을 사들이도록 한 뒤 주식 처분권한 일체를 회사에 위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주식을 차명관리하면서, 직원 대출의 이자 역시 대신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두산산업개발은 “임직원들도 회사 살리기에 동참했기 때문에 회사가 보상차원에서 이자를 대납했다”며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지급보증도 섰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두산 총수 일가들이 주식매입 대금의 이자를 회삿돈으로 내게 한 것은 명백한 횡령으로 보고 있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변호사)은 “대주주 일가의 주식매입자금에 대한 이자를 회사가 대납했다면 횡령으로 볼 수밖에 없고 당시 등기이사로 있거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만한 자리에 있었던 총수 일가나 경영진들에게는 배임죄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또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회사가 낸 대출금 이자가 모두 128억원이기 때문에, 횡령금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에 해당하는 ‘특정경제 가중처벌법’까지 적용된다. 특경법상의 횡령에 대해서는 최고 무기징역이라는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다. 또 두산산업개발과 등기이사들에게는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과의 금전대차거래를 숨긴 데 따른 증권거래법상의 공시위반 혐의도 있으며, 총수 일가들은 세금포탈 여부도 조사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재 두산그룹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와 관련된 고발사건을 조사 중이다.정세라 박순빈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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