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총수일가 불법 이자지급 개요
“빚비율 낮추기 증자참여 보상” 해명
‘형제의 난’ 불거진 이달초에야 변제
임직원 대출받아 산 주식도 위임관리
두산그룹의 박용오 전 회장과 박용성 회장 등 총수 형제간에 경영권 분쟁이 터진 가운데 두산의 주력 계열사인 두산산업개발(옛 두산건설)이 총수 일가의 증자대금 이자를 회삿돈으로 대신 납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주주 일가의 도덕성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또 검찰의 두산사건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재벌 총수 일가가 지배권 유지를 위해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유용한 전형을 보여주는 데다, 최근 2800억원대의 대규모 분식회계 고백이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회삿돈으로 이자대납 실태=1999년 당시 두산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두산 총수 일가 28명엔 3세대인 박용성·용만씨도 포함돼 있지만, ‘원’자 돌림의 4세대와 그 배우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중에는 미성년자나 20대 초반이었던 4세들도 포함돼 있다. 회사는 대주주들이 퇴출 기로에 선 회사의 증자에 참여한 데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이자를 대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은 아무런 금전적 희생도 치르지 않았다. 오히려 증자 여파로 대폭 줄어들었을 지분율을 거의 그대로 보전하는 특혜를 누렸다. 두산산업개발은 이와 관련해 “대주주들은 좋은 뜻에서 증자에 참여했지만 남들이 이상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어 최근 회사가 대신 냈던 115억원의 이자를 갚아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경영권 분쟁 틈바구니에서 대주주들이 내야 할 이자를 회삿돈으로 대신 납부한 사실이 외부에 폭로될 위험성이 높아지자 부랴부랴 수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두산의 대규모 분식회계 고백도 비슷한 맥락이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두산산업개발은 또 임직원과 퇴직자 등 1천여명의 명의로 회사 주식을 차명관리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활용했다는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두산산업개발은 이를 위해 99년 직원들의 대출을 직접 주선하고 지난 5년여간 이자를 부담해왔다. 두산산업개발은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회사 살리기에 나서고, 회사는 직원들의 희생을 이자 대납 등으로 보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내부인사의 증언은 다르다. 한 퇴직자는 “회사에서 주식구입을 하라는 문서가 내려왔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2001년엔 회사로 은행 직원들을 불러놓고 대출연장을 받도록 했고 퇴직 땐 주식포기 각서를 썼다”고 말했다. 실제 두산산업개발은 2001년 우리사주를 매입한 직원들에게 주식 처분권한 일체를 위임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배경과 전망=두산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의혹을 주장해온 박용오 회장의 측근은 이자대납 사건에 대해 “총수일가 4세들이 경영권을 세습하려면 충분한 지분을 확보·지탱해야 하는데 마땅한 주식대금 출처를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출과 이자대납이란 방식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총수 일가가 두산산업개발 주식을 먼저 사들인 뒤 주가가 올라가면 되팔아 그 차익으로 지주회사격인 ㈜두산의 주식을 사들이는 ‘경영권 세습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불거진 무리수”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경영권 세습을 위해 대주주들은 계획적으로 회삿돈을 빼돌렸고, 계열사가 이를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총수 일가는 두산산업개발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즈음에 ㈜두산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으로 인수하려다 물의를 빚기도 했다. 두산그룹과 박용성 회장은 박용오 전 회장 쪽에서 제기한 비자금 조성 및 분식회계 의혹을 완강히 부정했으나 지난 8일 2800억원대의 분식회계 자진 고백에 이어 주식대금 이자 대납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두산산업개발은 외환위기 직후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요구를 받아 유상증자가 불가피해지자 대주주들이 희생을 했다는 논리를 펴지만,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좋은기업지배연구소의 김선웅 소장(변호사)은 “자기 돈을 한푼도 넣지 않고 주식을 준다고 하면 대주주 말고도 증자에 참여할 주주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두산의 대주주들은 오히려 회사의 어려움을 이용해서 지분 확장과 세습을 도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박순빈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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