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10년 11월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신한은행 고소·고발 사건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내부문건 뜯어보니
차명예금-차명증권계좌 오가며
주식세탁…대출…가족 우회증여…
회장 비서팀·본점 영업부서 관리
창구직원은 가족 대출편의 챙기기 검찰·금융당국은 ‘봐주기’ 일관
금감원 마지못해 뒷북조사 나서자
거래내역 폐기…조직적 은폐조작
고소소동 일으켜 초점 흐리기도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선도한다고 자평해온 신한금융그룹에서 최고경영자의 20여년 장기집권은 온갖 불법과 비리의 온상을 만들어버렸다. <한겨레>가 입수한 신한금융지주 내부 문건들에는 금융계 일각에서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라응찬 왕국’의 흉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신한금융 내부에선 조직적으로 은폐·조작이 버젓이 자행됐는데도 검찰이나 금융당국은 ‘봐주기’로 일관했다. ■ 불법·편법 자금거래 유형의 백화점 주요 경영사항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융기관 임원의 차명 주식거래는 시장질서와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불법행위다. 내부정보를 이용해 쉽게 부당이득을 챙길 수 있는데다 차명계좌를 통한 작전성 거래로 주가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 전 회장은 계열 증권사의 임원 경력까지 갖춘 고향 후배에게 모두 5개의 차명 증권계좌를 맡겨 자금을 운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유무상 증자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따른 헐값 주식 취득이 차명계좌로 이뤄지고, 차명예금에서 빼낸 돈으로 다른 차명증권계좌를 통해 신한지주 주식 4만주를 매입한 다음, 다시 다른 두명의 증권계좌로 주식을 옮겨 2년여 만에 약 12억원의 평가이익을 얻기도 한다. 자금출처 추적을 피하려고 실물주식을 그대로 차명계좌끼리 이동시키는 등 근대적인 ‘주식세탁’ 수법을 동원한 흔적도 있다. 차명계좌를 통한 대출은, 신용도가 높은 재일동포 주주 2명 명의의 계좌로 돈을 빌린 다음 나중에 다른 외부의 차명계좌 두곳에서 인출한 돈으로 상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빌린 돈의 최종 행선지는 라 전 회장과 그의 세 아들의 주머니였다. 고객에게 대출편의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은행 창구직원들은 회장과 그 가족들 대출편의 챙기기에 바빴다. ‘특정경제범죄 등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5조에는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 또는 기타 이익을 얻거나 요구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차명거래 내역을 기록한 문건을 보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라 회장의 장남 17억원을 비롯해 세 아들은 모두 31억9000만원을 차명계좌를 통해 받는다. 2006년 3월에는 사업을 하는 라 회장 둘째의 동업자라는 김아무개(61)씨의 계좌에 14억원이 입금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우회증여 수법이다. ■ 조직적 은폐와 당국의 감싸기 2010년 7월 중순 금융감독원은 당시 라응찬 지주 회장의 차명계좌 운용에 대한 현장조사 방침을 발표한다. 국회의 잇단 의혹 제기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들어가는 ‘뒷북 조사’였다. 이마저도 신한의 조직적인 은폐·조작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현장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신한은 단지 관행에 불과한 ‘5년 보존기한’을 명분으로 내세워 차명계좌 거래내역을 대부분 폐기해버리고 전산조회도 차단시켰다. 차명계좌 관리와 자금운용은 회장 비서팀과 본점 영업부 직원들이 맡았으며 담당자들에게는 감독원 질문에 가급적 ‘회장님 개인정보에 관한 사항이라 답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답을 회피하는 게 필요함’을 주지시킨다. 감독원의 강도 높은 현장조사가 시작되고 1주일여 만에 갑자기 신한금융에 ‘핵폭탄’이 터졌다. 당시 이백순 신한은행장 쪽이 신상훈 지주 사장 등을 배임·횡령으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증거는 허술했고 당사자들한테는 단 한차례의 소명 절차도 주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그룹의 1인자인 라응찬 회장을 겨냥한 금융당국의 칼끝을 흐리려는 ‘기획고소’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검찰의 힘을 빌려 2인자를 제거하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꼼수라는 추측도 무성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애초 신한의 고소 내용에 대해 거의 대부분 무죄 판결을 내렸다. ■ 재일동포 주주 “대한민국 법이 뭐 이러나?” 금융기관의 임직원은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부터 직접이든 간접이든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이다. 신상훈 전 사장과 이백순 전 행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도 재일동포 주주에게서 2억원, 5억원을 각각 받아서다. 그러나 라응찬 전 회장은 똑같은 혐의를 받고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검찰이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전 사장에게 문제의 2억원을 준 재일동포 주주는 최근 <한겨레>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은행장 비서실장을 통해 내 돈 3억원을 빌려가 자기 변호사 비용으로 쓴 라응찬 전 회장은 아직까지도 돈을 갚지 않고 있다. 법정에 나가 이를 증언하기도 했다. 반면에 내가 환전을 부탁하며 2억원을 맡긴 신 전 사장의 경우 20여일 만에 환전을 해서 돈을 돌려줬는데 이게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뭐 이런 법이 다 있냐?”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라응찬은 누구 재일동포 주주들 전폭적 지지 업고
회장 4연임…‘오너’ 수준 영향력 행사
‘이상득에 3억’ 치매 이유로 소환불응
라응찬(75)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게는 ‘최초’ ‘최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금융권에서 가장 오랫동안 은행에 몸담은 뱅커(51년)이자, 최장수 최고경영자(19년), 최초의 4연임 회장으로서 신한금융은 물론 한국 금융의 신화로 자리매김했다.
라 전 회장은 신한금융의 역사이기도 하다. 1982년 점포 3개, 임직원 279명으로 출발했던 신한은행을 30여년 만에 은행·카드·보험사를 망라한 대형 금융그룹으로 키워냈다. 지분 0.04%를 가진 전문경영인인데도, 재일동포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1991년 이후 19년 동안 신한금융의 최고경영자로서 ‘오너’ 수준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 역시 짙었다. 라 전 회장은 차명계좌를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으로 여러 차례 수사선상에 올랐다. 권력 실세와 유착돼 있다는 소문에 자주 휩싸였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를 벌이던 중, 2007년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이 송금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검찰은 ‘금융실명제법 위반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라며 불기소 처분했다. 라 전 회장은 이듬해인 2010년 초 금융권 최초로 4연임에 성공한다.
그는 2010년 9월 신한은행이 신상훈 지주회사 사장을 배임·횡령 혐의로 고소한 이른바 ‘신한 사태’를 주도했다가, 역풍에 휘말려 뱅커 인생 51년을 불명예 퇴진으로 마감했다. 검찰 수사 도중에는 라 전 회장의 지시로 이상득 전 의원에게 3억원이 전달됐다는 ‘남산 3억원’ 진술이 터져나왔다. 검찰은 고 이희건 명예회장의 경영자문료에서 3억원을 빼낸 혐의(횡령) 등으로 이백순 전 행장과 신상훈 전 사장을 기소했지만, 막상 이를 지시했다는 라 전 회장은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라 전 회장이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이유로 세 차례에 걸친 소환 요구에 불응하자, 증인신청을 철회하고 추가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라 전 회장은 최근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직접 운전대를 잡는 등 건강한 모습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돼 논란을 빚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설범식)는 16일 신 전 사장과 이 전 행장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라응찬이 헬스를 하거나 개인 사무실에서 책을 보는 등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앞서 2011년에는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에서 그의 차남(46) 주도의 재개발 사업에 20억여원이 흘러간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라 전 회장이 신한금융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는 이사회의 지원을 받아 ‘신한 3인방’ 가운데 유일하게 스톡옵션(20억여원)을 행사하기도 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이동흡, 공금 2억8천만원 펀드 계좌로 이체시켜
■ 인수위 ‘들러리’ ‘4시 법칙’ 논란
■ 부산 최대 조직 폭력 ‘칠성파’ 조직원 무더기 구속
■ 오바마 ‘퍼스트 패밀리’ 패션도 시선 집중
■ “선불카드 결제하면 주유상품권 할인” 신용카드 사기보
주식세탁…대출…가족 우회증여…
회장 비서팀·본점 영업부서 관리
창구직원은 가족 대출편의 챙기기 검찰·금융당국은 ‘봐주기’ 일관
금감원 마지못해 뒷북조사 나서자
거래내역 폐기…조직적 은폐조작
고소소동 일으켜 초점 흐리기도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선도한다고 자평해온 신한금융그룹에서 최고경영자의 20여년 장기집권은 온갖 불법과 비리의 온상을 만들어버렸다. <한겨레>가 입수한 신한금융지주 내부 문건들에는 금융계 일각에서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라응찬 왕국’의 흉한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신한금융 내부에선 조직적으로 은폐·조작이 버젓이 자행됐는데도 검찰이나 금융당국은 ‘봐주기’로 일관했다. ■ 불법·편법 자금거래 유형의 백화점 주요 경영사항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융기관 임원의 차명 주식거래는 시장질서와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불법행위다. 내부정보를 이용해 쉽게 부당이득을 챙길 수 있는데다 차명계좌를 통한 작전성 거래로 주가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 전 회장은 계열 증권사의 임원 경력까지 갖춘 고향 후배에게 모두 5개의 차명 증권계좌를 맡겨 자금을 운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유무상 증자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에 따른 헐값 주식 취득이 차명계좌로 이뤄지고, 차명예금에서 빼낸 돈으로 다른 차명증권계좌를 통해 신한지주 주식 4만주를 매입한 다음, 다시 다른 두명의 증권계좌로 주식을 옮겨 2년여 만에 약 12억원의 평가이익을 얻기도 한다. 자금출처 추적을 피하려고 실물주식을 그대로 차명계좌끼리 이동시키는 등 근대적인 ‘주식세탁’ 수법을 동원한 흔적도 있다. 차명계좌를 통한 대출은, 신용도가 높은 재일동포 주주 2명 명의의 계좌로 돈을 빌린 다음 나중에 다른 외부의 차명계좌 두곳에서 인출한 돈으로 상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빌린 돈의 최종 행선지는 라 전 회장과 그의 세 아들의 주머니였다. 고객에게 대출편의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은행 창구직원들은 회장과 그 가족들 대출편의 챙기기에 바빴다. ‘특정경제범죄 등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5조에는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 또는 기타 이익을 얻거나 요구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차명거래 내역을 기록한 문건을 보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라 회장의 장남 17억원을 비롯해 세 아들은 모두 31억9000만원을 차명계좌를 통해 받는다. 2006년 3월에는 사업을 하는 라 회장 둘째의 동업자라는 김아무개(61)씨의 계좌에 14억원이 입금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우회증여 수법이다. ■ 조직적 은폐와 당국의 감싸기 2010년 7월 중순 금융감독원은 당시 라응찬 지주 회장의 차명계좌 운용에 대한 현장조사 방침을 발표한다. 국회의 잇단 의혹 제기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들어가는 ‘뒷북 조사’였다. 이마저도 신한의 조직적인 은폐·조작 때문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현장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신한은 단지 관행에 불과한 ‘5년 보존기한’을 명분으로 내세워 차명계좌 거래내역을 대부분 폐기해버리고 전산조회도 차단시켰다. 차명계좌 관리와 자금운용은 회장 비서팀과 본점 영업부 직원들이 맡았으며 담당자들에게는 감독원 질문에 가급적 ‘회장님 개인정보에 관한 사항이라 답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답을 회피하는 게 필요함’을 주지시킨다. 감독원의 강도 높은 현장조사가 시작되고 1주일여 만에 갑자기 신한금융에 ‘핵폭탄’이 터졌다. 당시 이백순 신한은행장 쪽이 신상훈 지주 사장 등을 배임·횡령으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증거는 허술했고 당사자들한테는 단 한차례의 소명 절차도 주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그룹의 1인자인 라응찬 회장을 겨냥한 금융당국의 칼끝을 흐리려는 ‘기획고소’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검찰의 힘을 빌려 2인자를 제거하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꼼수라는 추측도 무성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애초 신한의 고소 내용에 대해 거의 대부분 무죄 판결을 내렸다. ■ 재일동포 주주 “대한민국 법이 뭐 이러나?” 금융기관의 임직원은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부터 직접이든 간접이든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이다. 신상훈 전 사장과 이백순 전 행장이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도 재일동포 주주에게서 2억원, 5억원을 각각 받아서다. 그러나 라응찬 전 회장은 똑같은 혐의를 받고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검찰이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전 사장에게 문제의 2억원을 준 재일동포 주주는 최근 <한겨레>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은행장 비서실장을 통해 내 돈 3억원을 빌려가 자기 변호사 비용으로 쓴 라응찬 전 회장은 아직까지도 돈을 갚지 않고 있다. 법정에 나가 이를 증언하기도 했다. 반면에 내가 환전을 부탁하며 2억원을 맡긴 신 전 사장의 경우 20여일 만에 환전을 해서 돈을 돌려줬는데 이게 금융지주회사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뭐 이런 법이 다 있냐?”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라응찬은 누구 재일동포 주주들 전폭적 지지 업고
회장 4연임…‘오너’ 수준 영향력 행사
‘이상득에 3억’ 치매 이유로 소환불응
■ 이동흡, 공금 2억8천만원 펀드 계좌로 이체시켜
■ 인수위 ‘들러리’ ‘4시 법칙’ 논란
■ 부산 최대 조직 폭력 ‘칠성파’ 조직원 무더기 구속
■ 오바마 ‘퍼스트 패밀리’ 패션도 시선 집중
■ “선불카드 결제하면 주유상품권 할인” 신용카드 사기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