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얼라이언스시스템㈜은 지난해 8월 삼성에스디에스로부터 일방적인 하도급 계약 취소 통보를 받았다. 대구은행의 전산시스템 개선과 관련해 삼성으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넉달째 작업 중이었다. 대구은행 건과는 무관한 다른 하도급 계약과 관련해 삼성 요구를 거절한 데 대한 일종의 ‘보복성’이었다. 그러나 원-하청업체 사이의 해묵은 불공정 관행에 따라 구두계약만 맺고 일을 해 자칫 손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공정위는 21일 삼성에스디에스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삼성에스디에스가 얼라이언스시스템에 18억5천만원어치의 추가발주를 약속하는 협약을 해놓고 이행하지 못했는데도 약속을 지켰다는 확인서를 요구했고, 별도 계약건에 얽힌 검찰 고소를 포기한다는 각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며 “대구은행 계약건을 이런 이유로 취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시스템 구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통합(SI) 업계의 하도급 실태에 대해 처음으로 조사를 벌여 2003년부터 올해 초까지 계약서 미교부, 하도급 대금 미지급과 가격 후려치기 등 수천건의 부당 하도급 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삼성에스디에스, 엘지씨엔에스, 에스케이씨앤씨, 오토에버시스템즈, 포스데이타, 한전케이디엔, 현대정보기술, 대우정보시스템, 쌍용정보시스템 등 9개 대기업에 하도급법 위반행위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사인 시스템통합 업체들이 발주물량을 따오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한데다 하도급 관계를 맺는 중소업체들은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불공정 계약이 일반화돼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들 대기업이 1841개 중소업체한테 계약서도 없이 하도급 업무에 착수하게 한 사례를 7106건 적발했다. 공정위는 “중소업체들은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대기업이 무리하게 단가를 깎는 등 부당 요구를 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계약서 사전 미교부는 모든 불공정 행위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기업들은 중소업체와의 296건 계약에 대해 5억7200만원의 하도급 대금과 지연이자를 미지급하거나 185건의 계약에서 7200만원의 선급금 지연이자를 주지 않고 있다가 적발됐다. 이들 대기업은 대부분 재벌 계열사여서 중소기업과의 협력과 상생 경영을 강조해온 게 무색하게 됐다.
에스케이씨앤씨는 동국대 경주병원 등의 의료영상관리 시스템 사업을 엠디솔루션즈에 의뢰한 뒤 1억1700여만원을 일방적으로 깎았고, 대우정보시스템은 대우자동차 쪽 사업을 따낸 뒤 대금을 제대로 못 받자 하도급업체에 손실분을 일부 떠넘기는 식으로 560여만원을 깎았다. 또 삼성에스디에스도 이글루시큐리티에 정통부 사업을 위탁하면서 4800여만원을 일방적으로 깎았다. 공정위는 “시스템통합 업계의 하도급 불공정 행위가 광범위하다는 판단에 따라 첫 실태조사를 벌여 시정 계기로 삼았다”며 “사전 계약서 작성 의무를 일깨우고, 입찰 참가용 제안서 작성도 별도 계약을 통해 중소업체에 적절한 보상을 하도록 소프트웨어사업 표준하도급 계약서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는 적발 업체들에 일체의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아 솜방망이 제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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