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춤추는 통계
2006~2013년 역대통계청장 ‘업무추진비’ 분석
참여정부땐 없던 ‘청와대 협의’ 20차례나 등장
소득격차 등 민감한 발표 전날 비서관 면담도
2006~2013년 역대통계청장 ‘업무추진비’ 분석
참여정부땐 없던 ‘청와대 협의’ 20차례나 등장
소득격차 등 민감한 발표 전날 비서관 면담도
정부에 불리한 국가통계 발표가 잇따라 누락·지연된 지난해 통계청장이 청와대와 잦은 업무 협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한겨레>가 2006년부터 2013년 2월까지 7년여 동안 역대 통계청장이 쓴 업무추진비(업추비) 사용 내역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명박 정부 들어서 청와대 등장 횟수가 20차례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추진비 내역은 통계청장이 청와대 관계자와 만나 사용한 식비 등을 비용으로 처리한 것이다.
지난해 우기종 당시 통계청장(2011년 7월~2013년 3월)은 ‘BH(청와대를 지칭) 업무 협의 및 관계자 오찬간담회’ 명목으로 모두 4차례 151만원의 업추비를 썼다. 청와대와 업무 협의는 주로 중요한 통계 발표를 앞둔 미묘한 때에 이뤄졌다. 그가 지난해 5월17일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업무 협의를 한 바로 다음날엔 가계의 소득 동향 등을 보여주는 ‘1분기 가계동향’ 발표, 1주일 뒤엔 비정규직 비율을 보여주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또 경기 흐름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산업활동동향’(5월치) 발표를 이틀 앞둔 6월27일에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업무 협의를 했다. 취업자 수 증감 등이 담긴 고용동향(6월치) 발표를 하루 앞둔 7월10일에는 김대기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참여정부 말기와 비교하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계청장을 지낸 한 인사는 “임기 중 청장이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을 따로 만나 얘기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정책 부처가 아니라 국가통계를 생산·관리하는 게 주임무다. 업무상 정치적 중립성이 그만큼 중요할뿐더러, 통상적으로도 상급 부처(기획재정부)가 아닌 청와대와 직접 정책 협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 노무현 정부 말기 2년(2006~2007년) 동안 통계청장이 청와대 관계자와 만나 업무추진비를 쓴 내역은 전혀 없다. 유홍림 단국대 교수(행정학)는 “통계청장이 필요에 따라서는 청와대와 정책 조율을 할 수 있지만, 업무 협의가 특정 목적이나 의도로 활용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초 통계청과 청와대의 ‘밀월’은 심각했다. 당시 김대기 통계청장(2008년 3월~2009년 4월)은 무려 8차례나 청와대 경제수석 등과 업무 협의를 했다. 정권 말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산출한 ‘새 지니계수’ 발표가 누락되는 등 통계청에 대한 청와대의 압력이 집중된 시기는, 통계청장을 지낸 그가 청와대 경제수석 겸 정책실장을 지낸 때와 일치한다. <한겨레>는 우 전 청장과 김 전 수석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홍종학 민주당 의원은 “통계청장이 청와대 관계자와 수시로 만날 이유는 없다. 잦은 업무 협의를 한다는 것은 주요 통계를 먼저 보고하려는 것일 텐데,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김현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간사는 애초 예정에 없던 통계청에 대한 현안보고를 오는 24일 열기로 여야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광범위하게 진행된 통계청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 의혹을 둘러싼 <한겨레>의 보도가 계기였다.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 “청문회를 통해 엠비 정부의 통계 조작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류이근 노현웅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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