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카이스트 교수
시장진입·기술사업화 쉽게
목표가 아닌 과정의 혁신
일자리 70% 달성 등 내걸며
목표와 과정 뒤섞어놔 혼란 대기업은 사람·기술 빼가고
정부는 이걸 지켜보기만 해
한국에서 창조성의 가치는
‘소주 한잔’ 수준 못벗어나
‘공정한 룰’부터 먼저 지켜야 ‘창조경제’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웬만한 컨퍼런스나 강연회엔 ‘창조경제’란 문구가 내걸린다. 박근혜 정부가 첫 번째로 꼽는 국정과제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러나 ‘포장만 바꾼 재탕 정책’,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창조경제의 실체는 또렷하지가 않다. 그런 가운데 “창조경제의 정체성 혼란을 줄여보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이민화(사진) 카이스트 초빙교수다. 벤처기업의 ‘대부’로 불리며, 이명박 정부 시절 첫 기업호민관으로 중소기업을 대변했던 그는 2009년 ‘창조경제연구회’를 설립하는 등 일찍부터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를 주창해왔다. 그동안의 연구자료를 모아 최근엔 <창조경제>란 제목의 책도 펴냈다. 창조경제가 주목받는 만큼, 요즘 이 교수를 찾는 곳도 많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대기업 회장·사장들이 속한 경영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의 특별강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하루 2~3건의 강연을 다닌다고 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창조경제란 “한마디로 혁신이 더 쉬워지는 경제”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실천력과 효율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성이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스마트 혁명으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단순해져 ‘죽음의 계곡’(대부분의 기술이 사업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도 건너고, 앱스토어·카카오톡 같은 개방형 플랫폼을 통해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져 ‘다윈의 바다’(시간·비용 등 극심한 시장경쟁)도 건널 수 있게 됐다. “창조성이 돈을 벌” 멍석은 깔린 셈이다. 큰 밑그림은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다르다. “지금 정부가 내놓는 창조경제 실현계획들은 혼합 비빔밥이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혁신경제’나 이명박 정부의 ‘녹색경제’는 목표였지만, 창조경제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을 혁신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런데 정부가 목표와 과정을 뒤섞어놨다”고 말했다. 기술사업화나 시장 진입을 쉽게 하도록 과정을 바꿔야 하는데, ‘일자리 70% 달성’ 따위의 목표를 내걸어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벤처기업인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모는 ‘창업자 연대보증제도’ 완전폐지나, 특허·엔젤투자기업 등의 창조성을 거래할 ‘혁신시장’ 마련 등의 내용이 정부 정책에서 빠져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이 교수는 “실패를 전제로 하는 ‘창조’와는 거리가 먼 조직 특성상 정부가 창조경제를 주도하긴 어렵다”며 “다 열어놓고 민간과 더불어 창조경제를 만들어갈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특히 그는 정부와 대기업이 ‘공정한 룰’을 지켜야만 창조경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고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하듯이 대기업들이 정당한 벤처 인수·합병(M&A)을 통해 창조성을 더해나가야 하는데, 한국 대기업들은 사람 빼가고 기술 탈취하고 정부는 이걸 지켜보기만 한다. 이렇게 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창조성의 가치는 ‘좋은 아이디어 제공해주면 소주 한 잔 사줄게’ 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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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아닌 과정의 혁신
일자리 70% 달성 등 내걸며
목표와 과정 뒤섞어놔 혼란 대기업은 사람·기술 빼가고
정부는 이걸 지켜보기만 해
한국에서 창조성의 가치는
‘소주 한잔’ 수준 못벗어나
‘공정한 룰’부터 먼저 지켜야 ‘창조경제’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웬만한 컨퍼런스나 강연회엔 ‘창조경제’란 문구가 내걸린다. 박근혜 정부가 첫 번째로 꼽는 국정과제에 ‘코드’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러나 ‘포장만 바꾼 재탕 정책’,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창조경제의 실체는 또렷하지가 않다. 그런 가운데 “창조경제의 정체성 혼란을 줄여보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이민화(사진) 카이스트 초빙교수다. 벤처기업의 ‘대부’로 불리며, 이명박 정부 시절 첫 기업호민관으로 중소기업을 대변했던 그는 2009년 ‘창조경제연구회’를 설립하는 등 일찍부터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를 주창해왔다. 그동안의 연구자료를 모아 최근엔 <창조경제>란 제목의 책도 펴냈다. 창조경제가 주목받는 만큼, 요즘 이 교수를 찾는 곳도 많다. 지난 18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대기업 회장·사장들이 속한 경영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의 특별강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하루 2~3건의 강연을 다닌다고 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창조경제란 “한마디로 혁신이 더 쉬워지는 경제”다. 지금까지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 실천력과 효율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성이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스마트 혁명으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단순해져 ‘죽음의 계곡’(대부분의 기술이 사업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도 건너고, 앱스토어·카카오톡 같은 개방형 플랫폼을 통해 시장 진입 문턱이 낮아져 ‘다윈의 바다’(시간·비용 등 극심한 시장경쟁)도 건널 수 있게 됐다. “창조성이 돈을 벌” 멍석은 깔린 셈이다. 큰 밑그림은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다르다. “지금 정부가 내놓는 창조경제 실현계획들은 혼합 비빔밥이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혁신경제’나 이명박 정부의 ‘녹색경제’는 목표였지만, 창조경제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을 혁신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런데 정부가 목표와 과정을 뒤섞어놨다”고 말했다. 기술사업화나 시장 진입을 쉽게 하도록 과정을 바꿔야 하는데, ‘일자리 70% 달성’ 따위의 목표를 내걸어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벤처기업인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모는 ‘창업자 연대보증제도’ 완전폐지나, 특허·엔젤투자기업 등의 창조성을 거래할 ‘혁신시장’ 마련 등의 내용이 정부 정책에서 빠져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이 교수는 “실패를 전제로 하는 ‘창조’와는 거리가 먼 조직 특성상 정부가 창조경제를 주도하긴 어렵다”며 “다 열어놓고 민간과 더불어 창조경제를 만들어갈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특히 그는 정부와 대기업이 ‘공정한 룰’을 지켜야만 창조경제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고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하듯이 대기업들이 정당한 벤처 인수·합병(M&A)을 통해 창조성을 더해나가야 하는데, 한국 대기업들은 사람 빼가고 기술 탈취하고 정부는 이걸 지켜보기만 한다. 이렇게 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창조성의 가치는 ‘좋은 아이디어 제공해주면 소주 한 잔 사줄게’ 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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