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통계가 우선 마련돼야 한다. 2012년 9월12일 경기 고양시 대화동 킨텍스에서 열린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취업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현장등록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부, 광역시도 위주 통계
기초단위선 취업자수도 몰라
시군구 일자리정책 집행 난항
충남도 등 예산들여 자체 조사
서울시 마포구는 2010년 고용노동부에서 주는 일자리대책 최우수상을 받았다. 일자리 창출은 구청장의 5대 핵심 공약 가운데 첫번째에 해당할 만큼 중요하게 추진되고 있다. 구청은 2010~2014년 4만개가 넘는 일자리 창출 목표를 세워두고, 그에 맞춰 매년 목표치와 실적치를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마포구는 고용노동부의 일자리공시제에도 참여한다.
마포구를 포함한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시·군·구)의 100%가 일자리공시제에 참여한다. 의무가 아닌 상황에서 시·군·구의 이런 뜨거운 호응은 일자리 사업이 지방정부의 가장 핵심 정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자리공시제는 자치단체장이 일자리 창출 목표를 제시하면 중앙정부가 그 성과를 평가해 예산 지원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정책이 정작 ‘엉뚱한’ 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시제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인 취업자수 증감이 시·군·구별로 정확히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마포구의 경우에도 전체 취업자수와 그 증감, 고용률, 실업률 등 일자리 정책의 큰 틀을 짜는 데 필요한 기본적 고용통계가 없다. 고용통계가 광역시·도 위주로 돼 있어서다. 현재 기초자치단체가 밝히고 있는 일자리 창출은 자치단체가 예산을 투입하거나 지역 일자리센터 등을 통해 매개되는 것을 위주로 포착된다. 이명성 마포구청 일자리진흥과장은 “지자체의 고용률과 취업자수는 광역시·도 기준으로 제공된다. 그래서 중앙정부에 기초자치단체별로 자료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주요 고용지표가 없는 상황에서 기초자치단체는 지역에 일자리가 얼마나 부족한지, 청년 및 고령자 일자리는 몇 개인지 등을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 내려보내는 중앙정부의 일자리 예산도 필요에 맞게 정확히 배분되지 못한다. 정부가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실업대책을 펴는 데도 시·군·구 단위로 실업자가 몇 명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이뤄졌다. 그런 상태에서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감’(느낌)과 인구 비례 등으로 예산을 쪼개 내려보내야 했다. 심상완 창원대 교수는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광역시의 구 단위는 여전히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고용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지역노동통계 체계의 문제점 및 개선과제’란 책에서 고용·노동·임금 분야 통계 41종 가운데 시·군·구 기준으로 공표되는 것은 달랑 2개(2011년 11월 기준)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나마 도에 속한 시·군 통계는 일부 제공되지만, 광역시에 속한 구 관련 통계는 없다. 현실이 시·군·구 기준으로 많은 일자리 정책이 집행되고 있지만, 그 정책에 맞는 세부 통계는 거의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지역 노동통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 단위에서 세분화된 통계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복지 등 기초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펴는 정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최희갑 아주대 교수는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는 단위는 읍·면·동인데 그 수준까지 수혜자 만족도 등의 통계가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통계의 부족은 예산의 낭비를 불러오고 있다. 충청남도가 2011년 자체 예산을 들여 ‘충청남도 고용통계 구축’ 사업을 한 것도, 중앙정부의 지역 통계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충남도 관계자는 “통계청 조사로는 시·군·구별로 고용시장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도 차원의 고용통계를 구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이유로 자체 조사를 실시하는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가 적지 않다. 고용·복지 등 지자체 정책 차원의 통계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지역이 필요로 하는 통계의 생산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지역 단위에서 쓸만한 통계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국가통계 원자료, 국책기관 연구원도 접근 어렵다
해당부처에 요청해도
1~2년 늦게 제한적 공개
미국선 일반인도 내려받아 국책 연구기관에서 정부의 노동정책 수립을 돕는 김성일(가명) 박사가 부딪히는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정부로부터 통계를 얻는 일이다. 그는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자패널조사’(비정규직 이동경로 조사) 보도자료를 보고, 기존에 가졌던 상식과 많이 다른 조사결과를 직접 검증하고 싶었다. 곧바로 해당 부서에 이른바 통계 분석을 위한 기초자료인 마이크로데이터(원데이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우회로를 택해야 했다. 아는 국회의원실을 통해서 원했던 통계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정부에서 했으니 국민들은 그냥 믿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박사의 고충은 대부분의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이 공통으로 겪는 일이다.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책연구기관조차 중앙 부처 중심의 폐쇄된 통계에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민간 기관과 학자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통계청은 ‘국가통계 기본원칙’에서 국가통계를 “필수적인 공공재”로 언급하면서 “모든 이용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접근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부 통계를 공개하더라도 이런저런 항목을 임의로 뺀 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개 시점도 1~2년씩 늦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의 경우 일반인들조차 손쉽게 무료로 원데이터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을 수 있다. 정부는 “자료 남용”을 통계 접근제한의 표면적인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김유선 소장은 “그건 연구자의 책임 아래 맡겨둘 일”이라고 말한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정부가 마이크로데이터의 공개를 꺼리는 진짜 이유는 검증받고 비교당하기 싫어서다”라고 말했다. 제때 제대로 된 통계를 얻지 못하면 정책 연구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정부로부터 원데이터를 얻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할까봐 침묵한다. 통계를 갖고 있는 정부와 연구자가 ‘갑을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류이근 기자
기초단위선 취업자수도 몰라
시군구 일자리정책 집행 난항
충남도 등 예산들여 자체 조사
국가통계 원자료, 국책기관 연구원도 접근 어렵다
해당부처에 요청해도
1~2년 늦게 제한적 공개
미국선 일반인도 내려받아 국책 연구기관에서 정부의 노동정책 수립을 돕는 김성일(가명) 박사가 부딪히는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정부로부터 통계를 얻는 일이다. 그는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형태별 근로자패널조사’(비정규직 이동경로 조사) 보도자료를 보고, 기존에 가졌던 상식과 많이 다른 조사결과를 직접 검증하고 싶었다. 곧바로 해당 부서에 이른바 통계 분석을 위한 기초자료인 마이크로데이터(원데이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우회로를 택해야 했다. 아는 국회의원실을 통해서 원했던 통계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정부에서 했으니 국민들은 그냥 믿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박사의 고충은 대부분의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이 공통으로 겪는 일이다.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책연구기관조차 중앙 부처 중심의 폐쇄된 통계에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민간 기관과 학자의 어려움은 더욱 크다. 통계청은 ‘국가통계 기본원칙’에서 국가통계를 “필수적인 공공재”로 언급하면서 “모든 이용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접근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부 통계를 공개하더라도 이런저런 항목을 임의로 뺀 채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개 시점도 1~2년씩 늦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의 경우 일반인들조차 손쉽게 무료로 원데이터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을 수 있다. 정부는 “자료 남용”을 통계 접근제한의 표면적인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김유선 소장은 “그건 연구자의 책임 아래 맡겨둘 일”이라고 말한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정부가 마이크로데이터의 공개를 꺼리는 진짜 이유는 검증받고 비교당하기 싫어서다”라고 말했다. 제때 제대로 된 통계를 얻지 못하면 정책 연구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정부로부터 원데이터를 얻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할까봐 침묵한다. 통계를 갖고 있는 정부와 연구자가 ‘갑을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류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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