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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씨없는 검은 수박’ 이유있는 인기

등록 2013-07-02 08:25수정 2013-07-02 08:36

경남 함안군 광일영농조합 박분연 대표가 ‘씨없는 검은 수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200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 이 수박은 일반적인 수박과 달리 장마철에도 당도가 떨어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유신재 기자 <A href="mailto:ohora@hani.co.kr">ohora@hani.co.kr</A>
경남 함안군 광일영농조합 박분연 대표가 ‘씨없는 검은 수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2004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간 이 수박은 일반적인 수박과 달리 장마철에도 당도가 떨어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장마철에도 수박 당도 안떨어져
매년 판매 급증…올 100만통 예상
함안 농가-이마트 새품종 ‘윈윈’
이마트 품질 보증된 수박 확보
농가들은 수익 20%이상 증가
장마가 시작된 지난주 찾아간 경남 함안군 법수면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특별한 수박 수백통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적인 수박과 달리 껍질의 색깔이 진해 검은색 줄무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광일영농조합 박분연 대표가 수박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우리는 비가 오면 더 좋아요. 다른 수박들은 비를 맞으면 당도가 확 떨어지지만 우리 수박은 안 그렇거든.”

과일 중에서도 수분 함량이 가장 높은 수박은 비가 오면 물을 흡수해 당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심지어 썩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박 산지 가운데 하나인 경남 함안군 농업기술센터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다양한 수박 종자를 물색해왔다. 그러다 2004년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제약회사 바이엘 계열 종묘기업 누넴과 ‘씨 없는 검은 수박’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종자는 줄기와 잎이 강해 무더위나 비 등 악조건에서도 잘 견디고 과실의 영양분을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또 씨가 없기 때문에 씨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과육에 그대로 남는다.

문제는 유럽에서 온 이 종자를 심는다고 당장 유럽에서 나는 것과 같은 수박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기후나 토양, 농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시험재배에 나선 다섯 농가는 실패를 거듭했다. 충분한 크기로 키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충분히 컸다 싶으면 당도가 떨어졌고, 당도가 높다 싶으면 과육이 물렀다. 농업기술센터가 농사에 실패해도 100% 보상해주기로 했지만 판로가 없는 상황에서 시험재배를 계속 밀어붙이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시험재배로 키운 수박을 싣고 서울 가락시장에 가봤지만 ‘이것도 수박이냐’는 비웃음을 당했다.

이마트가 가세한 게 이즈음이었다. 2007년 이마트 과일 담당 바이어가 함안군 농업기술센터를 찾아왔다. 장마철 당도가 떨어지는 것과 함께 수박이 너무 많이 익으면 씨 주변 과육이 무르는 것이 이마트 바이어의 고민이었다. 유럽 출장까지 다녀온 이마트 바이어의 결론이 누넴의 ‘씨 없는 검은 수박’이었다. 이마트는 함안의 광일영농조합과 씨 없는 검은 수박을 전량 구입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누넴의 수박 종자 값은 개당 약 600원으로 보통 수박의 2~3배 수준이다. 게다가 수박은 종자 1개를 심어 수박 1통을 수확하고 끝나는데다, 1통 값이 1만원에 이른다. 섣불리 새 품종으로 갈아탔다가 큰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이마트의 전량 구입 계약이 새로운 수박 농사를 망설이던 농가들을 움직였다.

이마트는 누넴과도 독점 계약을 맺었다. 이마트 납품용 수박을 재배하는 농가에만 새로운 종자를 공급하기로 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박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브랜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누넴의 판단이었다. 누넴의 기술진이 매주 한두번씩 산지를 방문해 수박 농사를 점검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소비자 선호도에 대한 정보였다. 이마트와의 협업으로 농가와 누넴 모두 소비자들의 반응을 정확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미세하게 성질이 다른 몇몇 종자들로 시험을 거듭하다 지금의 종자가 최종 선택됐다. 박학수 한국누넴종묘 개발·영업총괄부장은 “한국 소비자들은 수박의 당도뿐만 아니라 과육이 얼마나 단단한가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유럽의 소비자들과 다르다. 정확한 피드백 덕분에 상품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씨 없는 검은 수박은 이제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2008년 3만통을 시작으로, 2009년 10만통, 2010년 20만통, 2011년 45만통, 2012년 65만통으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올해에는 모두 100만통이 팔려 이마트 전체 수박 판매량 가운데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수박을 재배하는 함안 지역 농가도 2004년 5곳에서 시작해 지난해 250곳으로 늘었고, 농가들의 소득은 20% 이상 올랐다.

씨 없는 검은 수박의 경우처럼 대형마트가 새로운 품종 개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우리 농업 현실에서 의미가 크다. 품종 개발은 농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핵심 과제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전략수출 품종 20개 이상을 개발해 종자 수출 2억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골든시드 프로젝트’ 사업을 지난해 발표했다.

새로운 품종 개발에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누넴종묘 박학수 부장은 “과거에는 가락시장이 신상품 개발을 이끌어갔지만, 이제 대형마트 바이어가 신상품 개발의 중심세력이다. 우리도 초기에 씨 없는 검은 수박을 가지고 가락시장에 가봤지만 워낙 반응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 박기환 박사는 “국내 종자기업들이 워낙 영세하기 때문에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데, 유통자본이 판로를 확보해주면 종자기업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외국산 종자가 아니라 국산 종자에 대해 이번과 같은 시도가 이뤄진다면 농산물뿐 아니라 종자 수출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함안/글·사진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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