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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전세계 농부님들, 내 농기계 발명품 잘 쓰고 계시오?

등록 2013-10-01 18:33수정 2013-10-02 17:02

타고난 농부 발명가인 이해극 대표가 자신이 1973년에 만든 자전거 식혈기(땅에 규칙적으로 구멍을 만드는 기계)를 보여주고 있다. 자전거를 밭에서 굴리면 바퀴에 달린 쇠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씨 뿌릴 구멍을 만들어 나간다. 그는 “2000원짜리 헌 자전거로 뚝딱 만든 것이다. 씨 뿌리는 데 투입되는 시간을 3~4배는 줄여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타고난 농부 발명가인 이해극 대표가 자신이 1973년에 만든 자전거 식혈기(땅에 규칙적으로 구멍을 만드는 기계)를 보여주고 있다. 자전거를 밭에서 굴리면 바퀴에 달린 쇠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씨 뿌릴 구멍을 만들어 나간다. 그는 “2000원짜리 헌 자전거로 뚝딱 만든 것이다. 씨 뿌리는 데 투입되는 시간을 3~4배는 줄여준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농부다] 이해극 한가지골농장 대표
농사는 고되다.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봐도 농부의 삶은 고단하다. 미국과 캐나다의 대농들도 한가할 틈이 없다. 억척같은 소명이 있어도, 농사로 안정적인 가계를 꾸려나가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충북 제천과 강원 평창·정선에서 유기농사를 짓는 이해극 한가지골농장 대표는 아주 특별한 농부다. 농사를 짓는 족족 성공했다. 농사를 좋아하고, 농사를 즐긴다. “복이 많아 농민으로 태어나서 행복합니다.” 그가 강연을 마칠 때 늘 하는 인사말이다.

“주위에서는 저를 보고 ‘뒷걸음을 쳐도 생쥐 잡는다’ 합니다. 저야 그저 재미나게 농사를 짓습니다. 세상에서 농사일이 가장 즐거워요. 농사에서 좀 성공했다고 외도하는 농부들 많잖아요. 안타깝습니다. 그런 사람들, 뒤끝도 온전치 못해요.” 농사일이 너무 바빠서 ‘기자 선생’ 만날 짬이 없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들 통하고 또 설득해서, 어렵게 인터뷰 시간을 잡아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금세 비닐하우스로 달려갔다. 쌈채소를 수확하던 아내를 거들어 소매를 걷어붙였다. 솥뚜껑 같은 그의 일손은 넉넉하고 빈틈이 없다.

그는 13대째 제천시 봉양읍 장평리 마을에서 살고 있다. 1973년에 시작한 1만㎡ 규모의 유기농 쌈채소 비닐하우스 또한 바로 집 곁에 길게 이어져 있다. 국내 유기농의 선구자인 그의 농장에는 해마다 수많은 농사꾼들이 ‘이해극 농사법’을 배우러 찾아온다. 20억 이상을 들여 사들인 땅에 세운 한가지골농장은 8000㎡ 규모의 연수원과 유기농식당, ‘오색미인’ 브랜드의 농산물가공공장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젊은 귀농자 가족들이 그 시설을 무상으로 빌려 사업을 운영한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빌려주다가, 얼마 전부터 매달 50만원 적립하도록 했다.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일한다. 내가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강원도 평창과 정선 땅이 맞닿은 1234m 고지에는 40만㎡의 ‘600마지기 농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1990년부터 국유지를 임차해 24년째 친환경농사(무농약)를 짓는 거대한 쌈채소 밭이다. “크게 농사지어 팔자 고치겠다고 이곳으로 덤벼드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나 말고는 3년 이상 계속 농사지은 사람이 없어요. 비료와 제초제를 마구 쏟아부으니, 비용도 감당 못하고 땅은 점차 자갈밭이 되거든요.” 그는 처음부터 다른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 해마다 녹비작물로 심은 호밀을 뿌리째 갈아엎고, 그렇게 양분을 듬뿍 머금은 땅에 씨를 뿌렸다. 그가 농사지은 쌈채소의 유기물 함량은 전국 평균의 2배를 훨씬 넘는다.

“1995년에는 쌈채소 값이 4.5t 트럭 한대에 1300만원 할 때 애초 계약했던 200만원에 그대로 납품했습니다. 아무도 계약을 지키지 않을 때였죠. 그랬는데도 저는 지금까지 망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신뢰가 결국 어려울 때 농부를 살린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쌈채소를 납품할 때 공급받는 쪽에서 알아서 가격을 매기도록 한다. 그래도 그는 풍요를 누린다. 신뢰와 자부심이 농부 이해극의 생명이다.

제천서 친환경 농사 40년
신나게 일하니 성공이 따라왔다
해마다 3천명이 찾아와
‘이해극 농사법’을 배워 간다

비닐하우스 자동개폐기와
감전방지용 약전압 원동기는
그가 만들어 세계로 수출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농부가 원하는 건 농부가 알지”

이해극의 다른 이름은 ‘발명가 농부’이다. 그가 세상의 농부를 이롭게 만든 최고의 히트상품은 ‘비닐하우스 자동개폐기’이다. “1991년에 만들었어요. 비닐하우스가 고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악성노동을 요구해요. 제일 힘든 게 온도와 습도에 따라 비닐하우스의 창을 여닫는 일인데, 그게 여자들 몫이죠. 어느날인가 아내가 하소연하더군요. 너무 힘들어 팔목 인대가 늘어났다고요. 그날 하루 궁리해 자동개폐기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자동개폐기는 지구촌 악성노동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농부의 가려운 곳을 세심하게 긁어준다. 안개와 이슬비, 소낙비까지 구분해 감지한다. “내가 농부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소낙비 올 때만 창이 닫히면 되거든요. 고온경보 때는 60초 정도 짬을 두고 서서히 작동해요. 온도가 너무 급하게 변하면 작물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농가마다 기후와 지역환경, 재배작물에 따라 개폐장치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는 농부가 농사에 필요한 기계를 제일 잘 만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 “목마른 사람이 샘 파듯이, 농사일에 힘들어하는 농부가 꼭 필요한 기계를 만들지요. 불문가지 아닌가요?”

그의 자동개폐기가 도입된 뒤로 국내의 비닐하우스 재배면적이 몇배로 늘어났다. 농사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이해극표 자동개폐기는 국내시장을 석권했을 뿐 아니라, 8개국으로 한해 10만대 이상(700만달러) 수출된다. 기계 종주국인 일본과 독일은 물론이고, 중국으로도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자동개폐기를 생산하는 우성하이텍은 100억원 매출 규모로, 신용등급이 AAA+이다. 대주주인 두 동생이 경영을 맡고, 그는 농사짓는 틈틈이 개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농부가 천직인 그는 회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그가 개발한 또하나의 야심작은 자동개폐기에 들어가는 24~27V의 약전압 원동기다. 전세계로 한해 100만개 이상 수출된다. “30V 아래의 약한 전압으로 구동되는 원동기를 개발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30V 이상이 치사전압이어서, 약전압을 쓰면 감전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거든요.” 물도 만지고 전기도 만지는 농부들은 항상 감전사고에 노출돼 있다. 감전사고로 죽는 농부가 한해 200명을 넘은 적도 있었다. “농부 이해극이 감전사고로 죽을 전세계 농부를 구했다, 그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는 지금도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1999년부터 10년 동안 남북농업협력사업을 하느라 북한에서 지낸 날이 600일을 넘는다. 금강산 근처에서 4만㎡의 ‘고성남새온실’을 설계하고 시공하고 재배를 총괄했다. “북한 사람들한테 지성을 다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갑자기 아무것도 못하게 됐어요. 옛날부터 먹을 것 가지고 내세우는 것을 가장 비열하다 했습니다. 받는 사람의 체면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잖아요. 넌지시 주면 저쪽에서 알아서 나올 텐데….” 그는 “서로 신뢰가 쌓이고 이심전심 공감하면, 우리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으로 연해주와 만주에 거대한 북방농장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천생 농부다. 일에 이골이 났다. 하루종일 앉아서 일해도 무릎 아플 새가 없고, 지금까지 아스피린 하나 먹어본 적이 없다. 최근에는 농업계 최고 권위의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5000만원 상금을 받으면 북한 농부들의 교육 재원으로 보내주고 싶다고 소망한다. “저는 행복한 농부입니다. 평생 고향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을 갖추었잖아요.”

제천/글·사진 김현대 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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