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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제과·시멘트 승승장구…금융업 집착하다 몰락

등록 2013-10-03 19:28수정 2013-10-0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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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 흥망성쇠
‘삼성-삼호-개풍-대한-락희-동양.’

1960년대 우리나라 재벌그룹들의 순위다. 당시만 해도 동양그룹은 10대 재벌에 이름을 올렸다. 해체 위기에 몰린 동양그룹의 요즘 상황에선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과거의 ‘영화’다. 지난해 자산 기준 재계 38위(공기업 제외)인 동양은 부채비율이 무려 1233%(2012년 기준)에 이른다.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갚지 못해 핵심 계열사 5곳이 무더기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등 그룹은 붕괴 위기에 처했다. 동양은 어쩌다가 끝간데없는 추락의 길로 들어선 걸까.

■ 시멘트·제과로 창업…보기 드문 사위경영 동양그룹의 창업주는 고 이양구 회장이다. 함경도 함주 출신인 그는 1947년 서울로 내려와, 중고 자전거 한 대로 과자 행상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설탕왕’으로 명성을 떨쳤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제일제당이 만든 설탕을 독점 판매하기도 했다.

그룹의 모태가 되는 동양제과와 동양세멘트(현 동양시멘트)를 설립한 건 각각 1956년과 1957년이다. 동양제과는 일제 강점기부터 유일하게 과자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풍국제과를 인수해 만든 회사다. 건빵처럼 딱딱한 과자 대신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운 질감의 과자를 새롭게 개발하면서 업계를 공략해 나갔다.

이에 비해 시멘트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주변의 우려가 적잖았다. 당시만 해도 제대로 가동되는 공장이 거의 없어 해외에서 시멘트를 사들여 오던 시절이었다. 동양이 인수한 삼척시멘트도 연간 생산량이 5만t에 불과했다. “고철 더미를 샀으니 망할 것”이라는 걱정이 쏟아졌다. 그러나 주변의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동양시멘트는 개도국에 주는 차관융자를 받아 설비를 늘리고 생산량을 100만t까지 끌어올리면서 승승장구했다.

고 이양구 회장, 자전거행상 발판
50년대 ‘동양제과·세멘트공업’ 설립

창업주 이회장 별세 뒤 ‘사위경영’
2001년 동양-오리온 계열 분리

외환위기로 금융계열 타격 이어
2008년 경기침체로 시멘트 연타
회사채 돌려막다 내리막길 걸어

금융업 진출은 1984년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을 인수하면서 본격화했다. 이후로 동양은 현재 금융 계열사 6곳(동양증권·동양생명·동양인베스트먼트·동양파이낸셜·동양자산운용·티와이머니)을 거느릴 정도로 금융 쪽 사업 확장에 공을 들여왔다. 1989년 창업주 이 회장의 별세로, 장녀 이혜경씨의 남편인 현재현 회장이 취임하면서 이런 행보에 가속도가 붙었다.

동양은 재계에서 보기 드문 ‘사위 경영’으로 가업을 승계한 그룹이다. 창업주 이 회장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부산지검 검사 출신인 현 회장은 그룹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이때부터 금융업에 대한 야망을 키웠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창업주의 둘째 사위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차녀 이화경씨의 남편)과는 한 그룹 내에 있다가 2001년 계열 분리했다. 당시 동양제과를 중심으로 16개 계열사가 오리온으로 넘어갔다. 그룹 분리 무렵만 해도 동양그룹의 매출이 4조원대 이상인 반면 오리온 쪽은 1조원에 채 못 미쳤다. 하지만 식품 및 미디어 부문에서 탄탄한 사업을 이끌어온 오리온은 자금난에 허덕여온 동양에 견줘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최근 동양그룹은 자매그룹인 오리온에 주식 담보 제공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 금융왕국 집착·더딘 구조조정에 발목 동양그룹은 1971년에 첫 시련을 맞는다. 경쟁업체 난립으로 경영 사정이 악화한 것이다. 당시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 신청에 이를 만큼 어려움을 겪었지만, 채권단의 만기 연장과 이듬해 정부의 ‘8·3 사채동결조치’로 위기를 모면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동양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주인 있는 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없다”는 정부의 강경 방침에, 그룹 쪽은 퇴출 직전에 내몰린 금융 계열사 구하기에 꽤 큰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된서리를 경험하고서도 현 회장은 금융 쪽 사업에 대한 ‘의욕’을 버리지 못했다. 2007년 6월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으면서 현 회장은 “머지않아 동양을 한국의 골드만삭스로 만들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미 그룹 전체에서 금융사 비중은 매출액 기준으로 70%, 자산 기준으로는 80%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류승협 한국신용평가 기업·그룹평가본부 실장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부문을 끊어내는 구조조정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그룹이 좌초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동양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동양메이저(현 동양과 동양시멘트)가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며 동양증권과 동양캐피탈(현 동양인터내셔널)을 지배하는 비교적 단순한 지배구조를 보이고 있었지만, 금융부문 지배력 강화를 꾀하면서 현재의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만들어버렸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금융사들이 어려울 때마다 비금융 쪽에서 지원에 나섰지만, 거꾸로 비금융 쪽도 사업이 부진하면서 양쪽이 모두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속화된 건설경기 침체는 그룹의 주력사업인 시멘트에 큰 타격을 줬다. 과거 시멘트 사업은 그룹의 ‘캐시카우’였지만, 2005년 이후 공급과잉과 가격경쟁, 건설경기 둔화로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한 시멘트업체 관계자는 “시멘트 가격이 2000년대 중반에 엄청나게 하락하면서 생산을 많이 해온 업체일수록 손해가 컸다. 동양도 그로 인한 누적 적자가 컸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복잡한 순환출자로 재무구조는 악화하고 주력사업이 부진했음에도 신속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면서 그룹의 부실은 한층 곪아갔다는 게 동양 사태를 관전하고 있는 재계와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돈이 될 만한 핵심 자산은 계속 붙들고 있고 나머지를 팔려고 하니 제대로 진척되는 게 없었다. 오너 경영진의 독단적 오판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자산 매각 과정에서 나중에 지분을 되사오려는 ‘콜옵션’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 매각에 실패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회사채 돌려막기’로 부실을 가리다 몰락의 길로 들어선 꼴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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