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2조2500여억원을 들여 개통한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의 서해로 이어지는 아라뱃길 컨테이너 부두에 물동량이 없어 부두가 텅 빈 채 26일 저녁 해가 지고 있다. 김포/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원하는 결과 도출 때까지
건교부, KDI에 계속 수정 요청
여의치 않자 외국업체에 용역
이명박정부 들어서자 결국 첫 삽 개통 1년여뒤 예측대비 물동량 5%
반대쪽 수요예측 0.274와 비슷
매해 유지관리비 60억 세금 낭비
2조원짜리 배 안뜨는 운하 전락 국내에서 사업의 정당성을 찾기 어려워진 건교부는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렸다. 2004년 8월 네덜란드의 운하 전문 컨설팅 업체 데하베(DHV)에 20억원을 주고 용역을 맡겼고, 2007년 3월 1.76이라는 비용편익분석을 받아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8년 한국개발연구원은 데하베의 보고서를 재검증해 1.065의 비용편익분석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전초전으로 아라뱃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 각 기관의 수요예측 신뢰성은 상처를 입을 만큼 입었다. 사업 분석 기관에 따라 비용편익분석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데다, 건교부의 분석 조작 사실마저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의 구체적인 항목을 뜯어봐도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먼저 보고서는 아라뱃길에 대한 이용자 선호도 조사를 생략한 것으로 드러났다. 운하를 이용한 물류수송을 할 것인지 각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기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따왔다는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경민 교수(도시계획)는 “사업이 되게 하려는 정치권과 관료 집단이 계속해서 ‘되는 결과’를 요구하면 사소한 항목 하나 바꿔도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며 “아라뱃길 수요예측 보고서는 전문가적인 양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보고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보고서에서 예측된 경인운하의 2011년 물동량 수요는 컨테이너 29만4000TEU, 바닷모래 633만t, 철강재 50만t, 여객 60만명 등이었다. 이 가운데 서해에 위치한 인천터미널의 물동량이 컨테이너의 80%, 바닷모래의 53%에 이르렀다. 운하를 통과하지 않는 물동량이 고스란히 아라뱃길의 수요예측에 포함된 것이다. 편익이 부풀려졌다면, 비용은 축소됐다. 아라뱃길의 시초는 굴포천의 방수로를 뚫는 사업이었다. 방수로를 한강과 연결해 경인운하로 활용할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동안, 이미 부평·계양 지역의 굴포천 수량을 서해안으로 보내는 방수로는 80m 너비로 완성됐다. 향후 운하 개발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여기에 들어간 사업비는 모두 4790억원.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은 이 사업비는 아라뱃길 사업과 별개의 것이라며 비용편익분석에서 제외했다. 민주당 문병호 의원은 “운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애초 40m 폭 방수로로 족했다”며 “비용은 축소하고 수요는 부풀린 전형적인 왜곡 보고서가 8차례나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수요예측이 사업 추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개통 1년여가 지난 아라뱃길의 현실은 암담하다. 수요예측 대비 물동량은 5% 남짓이고, 무료로 변경된 수변도로 보상비 3000억원과 매해 유지관리비 수십억원이 세금으로 지원되고 있다. 사업성에 회의를 느낀 경기 김포시와 인천시는 지자체 관리 몫인 수변공원 등의 인수조차 거부하고 있다. 특히 아라뱃길의 물동량 수요는 부평 구의회 의원, 학계 전문가 등이 구성한 아라뱃길 재검증 위원회에서 만들었던 비용편익분석 0.274와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수자원공사는 “사업성을 판단한 수요예측에는 문제가 없었다. 모든 항만은 개통 초기 2~3년 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돼 세계 물동량 자체가 줄어든 탓도 크다”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한 교수는 “수요예측 용역 자체에 드는 돈은 억원대 수준으로 몇조원에 이르는 공사비에 비하면 껌값에 불과하다. 사업 추진의 명분을 얻기 위해 수요예측을 반복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경인운하 보고서에서 부풀려진 수요와 줄어든 비용을 보면 전문가적 양심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그룹이 만든 수요예측 보고서는 힘이 셌다. 20년 넘게 경인운하 반대 활동을 했던 가톨릭환경연대 권창식 사무차장은 “각종 공청회 등에서 반대론을 제기해봤자, 당시 건교부와 건설사들은 네덜란드 데하베가 운하 분야에서는 전세계에서 최고다. 너희들이 뭘 안다고 까부느냐는 답만 돌아왔다”며 “전문가들이 이름을 빌려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쟁을 벌이기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부평에서 태어난 기자는 아라뱃길을 잉태한 1987년의 수재민 수만명 가운데 한명이었다. 이불을 포개놓은 장롱까지 휩쓸고 간 흙탕물의 공포와 깔깔한 군용 모포의 감촉, 위문품 라면을 끓인 그릇을 받아들고 환호성을 질러 어머니께 꿀밤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또 초등학생이었던 기자는 학교 문집 <굴포천 아이들>에 ‘고려시대부터 추진된 경인운하의 역사와 필요성’이라는 산문을 싣기도 했다. 경인운하가 만들어지면 집값이 오를 거라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이 은연중 배어든 것이었다. 그땐 그 결과물이 2조2500억원을 들인 ‘배가 뜨지 않는 운하’일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이슈4대강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