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0회 저축의 날 기념식’에서 야구선수 이대호(왼쪽 셋째) 등 국무총리 표창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25년전 24.7% 이르던 가계 저축률
작년 3.4%로 급락…OECD 평균 밑
소득 정체·부채 증가로 여력 없어
장기적인 성장에 부정적 요인 우려
“사회보장제도 더 절실해져” 의견
작년 3.4%로 급락…OECD 평균 밑
소득 정체·부채 증가로 여력 없어
장기적인 성장에 부정적 요인 우려
“사회보장제도 더 절실해져” 의견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저축이 미덕’이라는 말은 옛날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예금은행들도 반세기를 맞은 ‘저축의 날’(10월29일)이 반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자금을 굴릴 때도 마땅찮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임원은 “저축의 날을 기념한다고 해서 높은 이자를 줘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예금을 유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저축의 위상 추락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가계 저축률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24.7%를 정점으로 하락한 가계 저축률은, 1990년대 평균 16.1%에서 2000년대 5.8%를 거쳐 지난해 3.4%로 급락했다. 가계소득 가운데 저축하는 돈이 4%도 채 안 된다는 말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를 크게 밑도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 등을 제외하면 최저 수준이다.
지금은 오히려 소비가 대접 받는 시대라고 하지만, 소비 여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가계 저축률의 가파른 하락세는 산업 발전에 투입할 투자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주는 등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를 낳는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은 “소비가 일어나야 내수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지나치게 낮은 가계 저축률은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가계 저축률 하락은 소득 정체와 부채 증가로 가계 살림이 팍팍해진 게 주된 이유다. 가계가 저축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말이다. 투자와 소비의 원천인 저축 여력이 떨어진 이면에는 기업과 가계 소득의 양극화가 깔려 있다. 가계 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1990년대 12.7%에서 2000년대 6.1%로 낮아진 반면, 기업 소득은 4.4%에서 25.2%로 크게 늘어났다. 임일섭 실장은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가계 소득과 기업 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가계 저축률 하락과 기업 저축률 상승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가계 저축률의 또다른 하락 원인으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 부담의 증가가 꼽힌다. 사회보험 부담금 증가는 가계 저축률 하락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정부 저축률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실제로 가계가 부담하지만 통계상 정부의 저축으로 계상되기 때문이다. 기업 소득과 사회보험금 증가에 힘입어 기업과 정부 부문의 저축률이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총저축률은 30% 초반을 나타내고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가계 저축률이 하락하는 대신 기업 저축률이 늘어나 그 갭을 메우고 있고, 총저축률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기업이 여유자금을 투자 용도로 쓰지 않은 채 쌓아놓고 있는 것은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 가계의 소비 여력 감소는 내수를 악화시킨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대기업과 부유한 가계를 빼면 일반 서민가계는 부동산에 눌리고 가처분소득이 떨어져 저축할 여력이 없어지고 있다. 길게 보고 미래를 담보할 사회보장 제도를 충실히 만들어 시스템 안정을 꾀하는 게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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