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케이티(KT)는 또 빠졌다.
11월2~9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방문을 수행하는 경제사절단 얘기다. 10월2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배포한 67명 규모의 경제사절단 명단에는 케이티 김홍진 사장이 포함됐었다. 하지만 22일 검찰이 배임 등 혐의로 이석채 회장 집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빠지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전경련과 산업부 쪽에서 ‘상황이 이런데 갈 수 있겠느냐?’라는 문의가 많아 스스로 철회했다는 게 케이티 쪽의 설명이다.
포스코는 처음부터 사절단에 참여할 뜻이 없었다고 한다. 회사 쪽은 “유럽에서는 크게 사업을 하는 게 없어서 아예 사절단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포스코는 유럽 차 강판 시장 진출에 꽤 공을 들여왔고, 계열사인 포스코엘이디(LED)와 포스코건설 등도 유럽시장 진출 시도를 해왔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포스코와 케이티는 재계 서열(공기업 제외) 6위와 11위 그룹으로, 한때 정부가 대주주였으나 현재는 민영화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10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군 가운데 ‘유이’한 비재벌사다. 그런데 두 회사는 공교롭게도 최고경영자(CEO)와 청와대의 관계가 껄끄럽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보자면 정준양·이석채 회장은 엠비(MB) 정권에 줄대 내려간 ‘낙하산’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경제관료는 “정 회장과 이 회장은 본인들이 잘나서 그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전 정권의 낙하산인 만큼) ‘그 사람들과 같이 갈 이유는 없다’는 청와대의 신호는 일관적이다”고 말했다. 정준양·이석채 회장을 상대로 한 청와대의 ‘왕따 작전’은 지난 6월 박 대통령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최 국빈 만찬에 제외되면서 만천하에 공개됐다. 8월 말 청와대에서 열린 10대 그룹 총수와의 만남 때도 정준양 회장은 제외됐다. 포스코를 상대로 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나 검찰의 케이티 수사도, 이런 정권 차원의 분위기와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있다.
수사를 받는다는 이유로 제외된 케이티와 대조되게, 총수가 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이 내려진 재벌 대기업들은 대거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다. 항소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최태원 회장의 에스케이(SK)에서는 박봉균 에스케이에너지 대표이사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중인 김승연 회장의 한화는 홍기준 한화케이컬 부회장이 사절단에 포함됐다. 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현 회장이 이끄는 씨제이(CJ)는 이채욱 부회장이 사절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대기업 가운데서는 삼성은 강호문 부회장, 현대자동차는 정진행 사장이, 엘지(LG)는 김반석 엘지화학 부회장과 김대훈 엘지씨엔에스 사장이 사절단에 이름을 올렸다. 재벌사 오너 가운데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참여한다. 10대 재벌 가운데서는 롯데와 현대중공업그룹만 사절단에서 빠졌다. 롯데 쪽은 “중국과 미국 순방 때는 수행했지만, 유럽 쪽엔 사업장이 없어서 참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참석자도 있다. 네이버 김상헌 대표가 대표적이다. 네이버는 대통령 순방 수행 등에 참여한 바가 없다. 하지만 ‘온라인 골목상권을 침해했다’며 조·중·동·매와 정치권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혹독한 여름나기를 거친 뒤 태도를 바꿨다. 비즈니스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지난달 초 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방문 때 처음으로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번은 두번째 참여다. 회사 쪽은 “사절단 참여는 메시징 서비스 ‘라인’의 유럽 진출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국내용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라인’ 진출과 관련해 대표가 유럽에 직접 가서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국내 규제로 인한 역차별 등이 더 문제가 된다. 결국, 사절단과 동행하는 정부나 청와대 관계자들과 접촉 면을 늘리고, ‘라인 등 국내 인터넷서비스 산업의 갈 길이 멀다.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읍소성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는 성격이 더 커보인다.
60여명 규모의 경제사절단 가운데 절반가량은 중견·중소기업 경영자들이다. 이 가운데서는 패션그룹 형지 최병오 회장이 맨 위에 이름을 올렸는데, 지금까지 있었던 박 대통령의 네차례 해외 순방 때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동행해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의류산업협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 회장은 이번 동행으로 박 대통령 순방을 다섯차례 수행한 유일한 경제인이 된다고 한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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