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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공동체 의식 되살리는 도시 스토리텔링

등록 2013-11-05 19:36수정 2013-11-05 20:37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회적 경제] 이봉현의 소통과 불통
10여년 전 금강산에 갔을 때 명산의 자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만, 경치가 좋다 싶으면 어김없이 붉은 글씨로 ‘주체’니 ‘조선 노동당 만세’니 하는 글이 바위에 새겨진 것이 보여, 생경함을 넘어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자연석에 글을 새긴 것을 ‘각석’(刻石)이라고 한다. 모든 금석문이 그렇듯 산속 바위에 새겨진 글들도 풍화를 견디며 수백년을 내려온다. 그 앞에 서서 이끼 낀 바위를 응시할 때, 우리는 상상 속의 역사의 뒤안길로 날아가 바위를 쪼고 있던 이들에게 말을 건네게 된다. 다시 수백년이 흘렀을 때 금강산의 각석 역시 격동의 20세기를 살아낸 반도인의 추함이든 위대함이든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한양 정도 600년, 한성백제까지 거슬러 올라 2000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 주변에는 각석들이 널려 있다. 특히 서울의 궁성을 둘러싼 인왕산과 북악산의 풍광 좋은 곳에는 명필 각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종로구 부암동에는 ‘무계동’(武溪洞)이란 각석이 있는데, 이곳은 세종의 왕자인 안평대군이 도원에서 노는 꿈을 꾼 뒤 무계정사를 지었던 터여서 그의 필적으로 추정된다. 종로구 청운동의 ‘백세청풍’(百世淸風)과 ‘백운동천’(白雲洞天)이란 각석은 이곳 지명의 유례를 짐작하게 한다. 도봉산 연주암 계곡에는 “스승을 모시어 받들었다”는 뜻의 ‘문사동’(問師洞)이란 각석이 있다. 청와대 경내에는 “천하에 제일가는 복을 받은 땅”이란 뜻의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란 조선시대 작가 불명의 각석이 있어 묘한 느낌을 준다.

서울 주변의 각석은 그동안 서울시가 발굴, 탁본해 서울금석문대관 1집(1987), 2집(1992), 3집(2000)에 담아두었다. 이 중 21개를 최근 서울연구원이 편집해 한 권의 책으로 발간했다. 앞으로 각석들을 엮어 수학여행이나 외국인 관광 코스로 개발하는 등 본격적인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다.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는 인간이 이야기하는 본성이 있음을 나타낸 말이다. 이야기는 인간에게 정체성을 확인케 하고 행동에 질서를 부여해주는 기능을 한다. 고대의 신화나 설화의 기능도 그런 것이었다. 근래의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이런 스토리텔링 능력을 훨씬 자유롭고 밀도 있게 만들어준다.

이야기가 서울 같은 대도시에 필요한 것은 엷기만 한 공동체 의식을 되살려주는 밑그림이자 실뿌리이기 때문이다. 압축성장을 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 도시민들은 대부분 뿌리가 뽑힌 듯한 심리 상태로 살아간다. 이는 시민과 그가 사는 도시가 공유할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늘 거기 있던 담벼락일 뿐인데 ‘1박2일’ 팀의 이승기가 두 팔을 한번 펴고 가면 관광명소가 되는 것만 봐도 도시인들이 얼마나 이야기에 목마른지 알 수 있다. 내가 사는 동네, 골목골목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삭막한 도시를 행복한 공동체로 만드는 길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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