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김치’는 부산 남구 대연동 뒷골목에서부터 시작됐다. 1980년부터 ‘구르마’를 끌고 야쿠르트를 배달하기 시작한 이서원(67)씨의 눈에 홀로 사는 노인들이 들어온 것은 구제금융사태 직후였다. 할머니들은 변변찮은 밥상이라도 차렸지만, 홀로 사는 할아버지들은 대책이 없었다. 보다못한 이씨가 집에서 담근 김치를 구르마에 싣고 다니며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김치 조금 드렸는데도 너무 극진하게 인사를 하시니까 민망하고 죄송스러워서 길을 피해 다니기도 했어요.”
2001년 이씨는 지점장에게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모여서 김장을 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자고 건의했다. 그해 겨울 부산시청 앞 광장에 야쿠르트 아줌마 500여명이 모여 김치 6000포기를 담가 2000가구에 나눠줬다.
“아줌마들이 모이니까 정말 못할 일이 없겠더라구요. 다같이 모여서 배추 다듬고 양념 버무리면서 정말 신나게 김장을 했어요.”
그렇게 시작된 김장 나누기는 매년 이어졌다. 2004년부터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됐다. 다른 기업과 단체들도 김장 나누기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한국야쿠르트가 13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진행한 김장 행사는 역대 최대 규모다. 야쿠르트 아줌마와 한국야쿠르트 임직원 1500명, 자원봉사자 1500명이 모여 6만5천포기 125톤 분량의 김치를 담갔다. ‘한 장소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김장’으로 세계 기네스 기록에 도전한다.
초대형 김장을 위한 준비는 군사작전을 방불케한다. 충남 논산 지역 30여 농가가 이 행사를 위해 배추, 무, 파를 재배한다. 재료 구입비만 10억원에 이른다. 논산 공설운동장 주차장에 수영장만한 작업장을 설치하고 연인원 3000명이 열흘 동안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만든다. 배추를 가르고 무를 써는 데 쓰이는 식칼이 300개에 달한다. 열흘 동안 혹사당한 식칼은 날이 무뎌지고 소금물에 부식돼 못쓰게 된다. 한국야쿠르트 중앙연구소 연구원들이 현장에 나와 위생 교육과 점검을 하고 절인 배추와 양념을 연구소로 가져와 대장균 등 온갖 검사를 한다. 준비된 재료는 행사 전날 밤 11톤 트럭 12대에 실려 서울로 옮겨진다.
김치국물이 흐르면 잔디가 죽기 때문에 시청광장 바닥을 비닐로 덮고 작업대 863개가 설치된다. 한국야쿠르트 본사 지하 창고에 보관된 양은쟁반 1600여개, 고무대야와 바가지 800여개도 1년 만에 빛을 본다. 양념 36톤의 포장이 일제히 열리면 시청광장에 젓갈 냄새가 진동한다.
완성된 김치는 야쿠르트 물류차 90대에 실려 전국 지점으로 운반되고, 다시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전동카트에 실려 배달된다. 올해 김치는 2만5000여 가구에 10㎏씩 전달될 예정이다. 2001년 이후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만든 김치는 모두 25만가구에 배달됐다.
이날 김장을 하러 서울에 온 이씨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골목 골목 다니니까 어려운 분들 사정을 너무 잘 알아요. 정말 작은 밀알을 뿌렸는데 이렇게 엄청난 행사가 됐구나 생각하니 더없이 흐뭇합니다”라고 말했다.
김혁수 한국야쿠르트 사장은 “매년 비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행사를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김장 규모와 인원을 축소한 적이 없다. 올해에도 정성껏 준비한 재료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해 예년보다 더욱 큰 사랑을 가득 버무려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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