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호두가 생산량 부족으로 값이 비싸, 천안의 명물을 포함해 전국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호두과자에 국산 호두가 하나도 쓰이지 못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한 시장에서 피호두가 됫박으로 팔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경제 쏙] 호두과자에 국산 호두가 없는 이유는?
지난 10월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 중인 호두과자의 원재료 원산지를 조사한 결과, 국내산 호두를 쓰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고 밝혀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호두과자를 지역 특산품으로 내세우는 천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조사 대상에 오른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167곳 중 158곳이 미국산 호두를, 9곳이 칠레산 호두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호두과자 애호가들을 허탈하게 했다.
호두과자에 국내산 호두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국내산 호두 산지가격은 깨지지 않은 통호두가 1㎏에 8만5000원, 조각호두가 5만7000원 수준이다. 1㎏에 1만1700원 수준(조각호두 기준)인 미국산 호두의 5배 수준이다. 국내산 호두가 이렇게 비싼 이유는 뭘까?
■ 고려시대에 건너온 ‘슈퍼푸드’ 호두의 원산지는 페르시아, 즉 지금의 이란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호두는 서쪽으로 유럽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전파됐고, 동쪽으로는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보면, 우리나라에 호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려 후기다. 고려 말 문신 유청신(?~1329)이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호두 묘목과 종자를 가져와 고향인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에 파종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지고 있다. 국내산 호두는 미국산에 비해 맛이 더 고소하고 덜 느끼한 게 특징이다.
유청신이 들여온 호두는 약 700년에 걸쳐 충북, 전북, 경북 지역 등으로 퍼졌지만, 생산량은 많지 않다. 산림청 통계를 보면, 2012년 호두 생산량은 단단한 껍질을 지니고 있는 ‘피호두’ 기준으로 1150t이다. 피호두에서 껍질이 차지하는 무게가 60% 이상이니 알맹이는 약 400t에 불과하다. 올해는 흉작으로 지난해에 비해 수확량이 약 3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유통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200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선정 10개 ‘슈퍼푸드’ 가운데 견과류가 포함된 이후 급증한 호두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들어 2466t의 깐 호두를 수입했다.
가구당 재배량이 적은 것도 호두 가격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2012년을 기준으로 호두를 재배하는 임가는 2050가구이다. 가구당 평균 생산량은 560㎏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규모 농장처럼 호두 까는 기계를 도입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9월이면 호두나무에 열리는 열매는 은행처럼 푸른색의 두꺼운 껍데기가 있는데, 이를 ‘청피’라고 부른다. 산지 수집상들이 여러 농가를 돌아다니며 청피 상태의 호두를 사들인다. 청피를 제거하는 작업은 기계로 한다. 청피를 제거하면 단단하고 주름진 껍질에 싸인 피호두를 얻게 된다.
피호두 형태로 유통시켜 보관하다가 먹기 직전에 껍질을 까는 게 신선도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껍질을 까는 일이 너무 번거롭다. 정월 대보름에 부럼으로 소비되는 물량 정도만 피호두 상태로 유통된다. 나머지 호두는 대부분 일일이 사람 손으로 껍질을 제거해 유통된다. 피호두를 물에 담가뒀다가 호두까기 집게로 한알씩 조심스럽게 껍질을 제거한다. 동그란 알맹이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통호두가 알맹이가 깨진 조각호두보다 훨씬 좋은 값을 받는다. 인건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1㎏에 5만7000원…미국산의 5배
작년 껍질 뺀 알맹이는 400t 수확
올해 흉작으로 수확량 30% 줄듯
수입량 2466t…국내 생산량 6배
재배량 적고 인건비 높아 ‘금값’ 호두농사, 수익 높아 매력적이나
열매 얻는 데 10년 걸려 땅값 부담
장기투자 가능한 직장인·은퇴자
노후대비 목적으로 사업 접근도 ■ 시간에 투자하는 호두 농사 농사가 잘된 호두나무 한 그루에서 보통 청피 상태의 호두 60㎏이 열리고, 청피를 벗겨내면 약 12㎏의 피호두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단단한 껍질을 까면 약 4㎏의 통호두를 얻을 수 있다. 올해 시세를 기준으로 34만원어치다. 10그루면 340만원, 100그루면 3400만원이다. 다른 작물에 비해 호두 농사 자체에는 손이 훨씬 덜 간다. 사과 농사의 경우 제초작업만 1년에 20차례 하는데, 호두 농사는 2번이면 된다. 너도나도 뛰어들 만한 매력적인 농사지만 호두 생산량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시간에 있다. 새로 심은 나무에서 호두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데 5~6년이 걸리고, 수확을 해서 판매할 만큼 본격적으로 열리려면 10년 넘게 걸린다. 또 호두나무가 높이 20m까지 자라고,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진다. 한 그루가 차지하는 면적이 70~100㎡에 이른다. 땅값이 많이 들고, 들어간 돈을 회수하기 시작하는 데 10년 넘게 걸리는 호두농사는 ‘장기투자 상품’이다. 강원도에서 회사를 다니는 이민호(가명·43)씨는 최근 집 앞 임야 10㏊(10만㎡)를 구입했다. 벌목허가를 받아 기존 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미 호두나무 묘목 1000본을 심었고, 500여본을 더 심을 예정이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위해 녹비작물(토양에 유기물과 영양분을 공급할 목적으로 재배하는 작물)인 헤어리베치 씨앗도 뿌렸다. 어른 무릎 높이까지만 자라는 헤어리베치는 햇빛을 막아 다른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고 호두나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한다. 이씨가 정년퇴직할 즈음인 10여년 뒤면 친환경 호두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다. 장기투자라는 호두농사의 특징이 자신에게는 기회이고, 잠재적 경쟁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라는 게 이씨의 판단이다. 이씨는 “해마다 수확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일반적인 농가가 호두농사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호두가 열릴 때까지 10여년 동안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가능하다. 노후 대비를 생각하는 직장인들과, 자녀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물려주려는 은퇴자들이 호두농사를 시작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20~30명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씨는 “대부분 1000그루 이상 대규모로 호두나무를 심고 있다. 앞으로 10년 뒤부터 호두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겠지만, 국산 호두에 대한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산림정책의 전환과 호두 한국전쟁과 난방용 벌목으로 숲이 황폐화된 우리나라의 산림정책은 오랫동안 나무를 심어 숲을 늘리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1960년대부터 조림사업을 국가과제로 선정하고 그린벨트를 지정하는 등 산림 육성·보호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빠른 속도로 산림을 복구해냈다. 산림청의 2013년 임업통계연보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림률(국토면적에서 산림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6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가운데 핀란드(72.9%), 스웨덴(68.7%), 일본(68.5%)에 이어 4번째로 높다. 산림 복원에 성공을 거두면서 정부의 산림정책의 방향도 ‘보호’에서 ‘이용’으로 바뀌고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적용되는 5차 산림기본계획의 열쇳말은 산림을 통한 복지서비스 확대와 일자리 창출이다. 복지서비스 확대는 국민들이 숲을 쉼터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이씨처럼 숲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산림정책의 전환 덕분에 호두나무를 심는 이씨는 정부로부터 사업비 보조·융자 등 여러 혜택을 받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수확기에 헬리콥터를 띄워 대규모 호두농장 위로 저공비행을 하면서 강한 바람을 일으켜 열매를 떨어뜨려주기도 한다. 이씨는 “예전에는 나무를 베고 숲에 길이라도 내면 큰일 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길이 있어야 숲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다. 방치와 보호는 다른 것이다”고 말했다. “이제 숲으로 돈을 버는 ‘산림경영’에 눈을 뜨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비좁은 논밭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토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산을 잘 활용해야 도농격차 완화도 가능할 것이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지난 20일 회사원 이민호(가명)씨 소유의 임야에서 벌목꾼들이 나무를 베고 있다. 이씨는 10여년 뒤를 내다보고 이곳에 호두나무 묘목 1500여그루를 심을 계획이다. 유신재 기자
작년 껍질 뺀 알맹이는 400t 수확
올해 흉작으로 수확량 30% 줄듯
수입량 2466t…국내 생산량 6배
재배량 적고 인건비 높아 ‘금값’ 호두농사, 수익 높아 매력적이나
열매 얻는 데 10년 걸려 땅값 부담
장기투자 가능한 직장인·은퇴자
노후대비 목적으로 사업 접근도 ■ 시간에 투자하는 호두 농사 농사가 잘된 호두나무 한 그루에서 보통 청피 상태의 호두 60㎏이 열리고, 청피를 벗겨내면 약 12㎏의 피호두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단단한 껍질을 까면 약 4㎏의 통호두를 얻을 수 있다. 올해 시세를 기준으로 34만원어치다. 10그루면 340만원, 100그루면 3400만원이다. 다른 작물에 비해 호두 농사 자체에는 손이 훨씬 덜 간다. 사과 농사의 경우 제초작업만 1년에 20차례 하는데, 호두 농사는 2번이면 된다. 너도나도 뛰어들 만한 매력적인 농사지만 호두 생산량이 쉽게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시간에 있다. 새로 심은 나무에서 호두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데 5~6년이 걸리고, 수확을 해서 판매할 만큼 본격적으로 열리려면 10년 넘게 걸린다. 또 호두나무가 높이 20m까지 자라고,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진다. 한 그루가 차지하는 면적이 70~100㎡에 이른다. 땅값이 많이 들고, 들어간 돈을 회수하기 시작하는 데 10년 넘게 걸리는 호두농사는 ‘장기투자 상품’이다. 강원도에서 회사를 다니는 이민호(가명·43)씨는 최근 집 앞 임야 10㏊(10만㎡)를 구입했다. 벌목허가를 받아 기존 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미 호두나무 묘목 1000본을 심었고, 500여본을 더 심을 예정이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위해 녹비작물(토양에 유기물과 영양분을 공급할 목적으로 재배하는 작물)인 헤어리베치 씨앗도 뿌렸다. 어른 무릎 높이까지만 자라는 헤어리베치는 햇빛을 막아 다른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고 호두나무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한다. 이씨가 정년퇴직할 즈음인 10여년 뒤면 친환경 호두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다. 장기투자라는 호두농사의 특징이 자신에게는 기회이고, 잠재적 경쟁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라는 게 이씨의 판단이다. 이씨는 “해마다 수확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일반적인 농가가 호두농사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호두가 열릴 때까지 10여년 동안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면 가능하다. 노후 대비를 생각하는 직장인들과, 자녀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물려주려는 은퇴자들이 호두농사를 시작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20~30명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씨는 “대부분 1000그루 이상 대규모로 호두나무를 심고 있다. 앞으로 10년 뒤부터 호두 생산량이 많이 늘어나겠지만, 국산 호두에 대한 수요가 워낙 크기 때문에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산림정책의 전환과 호두 한국전쟁과 난방용 벌목으로 숲이 황폐화된 우리나라의 산림정책은 오랫동안 나무를 심어 숲을 늘리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1960년대부터 조림사업을 국가과제로 선정하고 그린벨트를 지정하는 등 산림 육성·보호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 빠른 속도로 산림을 복구해냈다. 산림청의 2013년 임업통계연보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림률(국토면적에서 산림면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6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가운데 핀란드(72.9%), 스웨덴(68.7%), 일본(68.5%)에 이어 4번째로 높다. 산림 복원에 성공을 거두면서 정부의 산림정책의 방향도 ‘보호’에서 ‘이용’으로 바뀌고 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적용되는 5차 산림기본계획의 열쇳말은 산림을 통한 복지서비스 확대와 일자리 창출이다. 복지서비스 확대는 국민들이 숲을 쉼터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이씨처럼 숲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산림정책의 전환 덕분에 호두나무를 심는 이씨는 정부로부터 사업비 보조·융자 등 여러 혜택을 받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수확기에 헬리콥터를 띄워 대규모 호두농장 위로 저공비행을 하면서 강한 바람을 일으켜 열매를 떨어뜨려주기도 한다. 이씨는 “예전에는 나무를 베고 숲에 길이라도 내면 큰일 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길이 있어야 숲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다. 방치와 보호는 다른 것이다”고 말했다. “이제 숲으로 돈을 버는 ‘산림경영’에 눈을 뜨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비좁은 논밭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토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산을 잘 활용해야 도농격차 완화도 가능할 것이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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