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국민뜻 수렴 공약 안지켜”
환경단체 “정부, 토론회도 안열어”
산업부 “여론조사 할 계획 없다”
환경단체 “정부, 토론회도 안열어”
산업부 “여론조사 할 계획 없다”
정부가 국민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증설 계획을 내놓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두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원자력발전(원전)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사실상 파기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부정적 국민 여론이 많은데 ‘원전 증설’에서도 ‘일방통행식’ 정책 수립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해놓고도 원전 정책의 근간이 되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공론화를 위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 원전 이용’과 ‘국민 여론을 수렴, 향후 20년간의 전원 믹스를 원점에서 재설정하며,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이 확보된다는 전제 하에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2035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현재 23기에서 41기까지 늘리는 것을 뼈대로 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2013~2035년)안을 내는 과정에서 단 한차례도 국민들의 의사를 물은 적이 없다. 장 의원은 “원전 비중 시나리오와 신규 원전 증설 혹은 취소, 설계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폐쇄 여부 등에 대해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대신 발전사업자와 이들로부터 값싼 전기를 공급받으려는 산업계의 의견에 따라 결정해온 관행이 답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조만간 원전 신규 건설 추진 여부 등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 촉구 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1987년 체르노빌 사태 직후 국민투표를 통해 모든 원전의 폐쇄 및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한 바 있다. 이후 이탈리아는 전력 수요의 80%를 수입에 의존하는 등 만성적 공급 부족에 시달리면서 2008년부터 원전 건설 재개를 위한 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증폭됐고, 2011년 6월12~13일에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94.5%의 반대로 원전 건설 계획이 백지화됐다.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더라도 여론 수렴에 적극 나선 나라 바깥의 사례는 적지 않다. 일본은 2011년 원전사고를 거치면서 원자력 중심의 기존 에너지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국가전략담당대신이 의장인 ‘에너지·환경회의’에서 원전 비중 0%와 15%, 20~25%의 3가지 에너지믹스 시나리오를 들고 11개 도시에서 공청회를 여는가 하면, 의견공모와 토론형 여론조사 등을 통해 대국민 의견수렴에 나섰다. 약 8만9000건이 접수된 의견 공모에서는 81%가 즉시 원전 제로(0)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지난 10월 민관합동 워킹그룹의 권고안에는 2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을 마련하기 전에 국민적 수용성 파악을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정부안이 발표되기 전까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는 토론회도 한 차례 개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10월23일 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 계획을 한 종합일간지 광고로만 ‘조용히’ 알렸다가 돌연 토론회를 취소하기도 했다.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때 공청회 개최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 현행 법의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제남 의원(정의당)은 11일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사전 공청회 개최는 물론이고, 제시된 의견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이를 반영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날 열린 정부 공청회가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을 수용하지 않는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국토 면적 대비 원전 밀집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원전 정책에 대한 의견수렴은 더욱 중요하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견해다. 만일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 국민들에게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고리 원전의 반경 30㎞에 사는 주민은 모두 342만명에 이른다. 후쿠시마 사고 때 반경 20㎞는 출입 통제, 30㎞ 내의 지역은 주민 철수가 이루어진 바 있다. 지난 달 28일 환경운동연합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전체의 56.1%가 ‘원전 증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요구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은 없다. 에너지기본계획의 한 부분일뿐이어서 원전만 가지고 의견을 묻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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