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렇구나 l 미국의 ‘볼커 룰’
미국 정부가 최근 고강도 은행 규제안인 ‘볼커 룰’을 최종 승인해, 월가가 시끄럽습니다. 볼커 룰은 이 규제안을 처음 제안한 폴 볼커 전 미 연준 의장의 이름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2010년 통과된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의 핵심 하위 규정이지요.
볼커 룰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은행이 자기 돈으로 고위험 투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은행이 자기자본으로 증권 등에 투자하는 하는 관행을 ‘프롭 거래’(Proprietary trading)라고 합니다. 볼커 룰에서는 프롭 거래가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이밖에도 은행이 사모투자전문회사(private equity)와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것도 제한합니다. 볼커 룰 초안은 이미 2011년 10월에 마련됐지만, 월가의 반대와 미 정부 당국 사이의 의견 차이로 최종 승인은 늦어졌습다. 시행도 당장 하는 게 아니고, 2015년 7월부터 합니다.
볼커 룰에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몰고 온 주범 중 하나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이라는 시각이 깔려있습니다. 당시 월가 투자 은행들은 위험이 큰 증권과 파생상품에 투자를 많이 했다가 급격히 부실해졌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2008년 대형 은행들의 부도를 막기 위해,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시행하여 약 3425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했습니다. 공적자금은 결국 미 국민의 세금이니, 은행의 투기 행위 때문에 납세자들의 세금을 낭비한 것이지요.
볼커 룰은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지만, 그렇다고해서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글래스-스티걸(Glass-Steagall)법까지 다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블룸버그>는 “은행들이 조언자 또는 중간자의 역할로 돌아가라고 자극(nudge) 하는 것”이라고 볼커 룰을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볼커 룰 조항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예외가 많으며, 시행 시기가 늦어져서 미 은행들이 대비할 시간이 많아 규제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미 정부가 볼커 룰을 시행하면 국내 은행들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볼커 룰의 규제 대상은 꼭 미국 은행만이 아니라, 미국 내 현지법인·지점이 있는 외국은행에 대해서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씨티은행 같은 미국계 은행의 국내 현지법인 및 지점이나 국내 은행의 미국 현지법인과 지점에는 볼커 룰이 전면 적용됩니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 및 국내은행 등은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하면서, 볼커 룰이 국내 은행에 끼칠 영향을 연구해왔다고 합니다.
금융당국은 볼커룰이 국내은행에 적용되면 국내은행의 위험자산 투자를 억제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자기계정거래와 미국 관련 헤지펀드 투자가 제한됨으로써 국내은행들의 자산운용을 제약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국내 은행의 자기자본 거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볼커 룰이 필요할까요? 아직은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미국과는 달리 국내에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가 비교적 철저하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조기원 기자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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