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컨설팅업계 불황 맞자
사회경제·공공부문으로 영역 확장
시장원리 적용에 공공성 훼손 우려
공적인 정보 통째로 가져가는데도
어디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길없어
사회경제·공공부문으로 영역 확장
시장원리 적용에 공공성 훼손 우려
공적인 정보 통째로 가져가는데도
어디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길없어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에서 ‘컨설팅’은 약동하는 비즈니스였다. 특히 매킨지, 베인앤컴퍼니, 비시지(BCG) 등 외국계가 주도하는 전략 컨설팅은 지식·서비스 산업의 꽃이었다. 미국·유럽의 명문 경영대학원(MBA)을 나온 컨설턴트들은 20대에 억대 연봉을 받았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이들은 기업의 신사업 진출, 사업 분할, 인수합병(M&A) 등에 대한 전략 자문은 물론이고, 힘 잃은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하며 영향력을 넓혔다. 1997년 말 나온 미국 컨설팅업체 부즈앨런해밀턴의 ‘21세기를 향한 한국 경제의 재도약’ 보고서는 기업인과 정치인, 공무원의 필독서였다. 은행과 대기업들이 앞다퉈 컨설팅을 받겠다고 몰렸다. 외국계는 외환위기 직후 17개 은행의 컨설팅 비용 2982억원 중 74%(2199억원), 10억원 이상 경영자문 753억원어치(33건) 가운데 94%를 휩쓸어갔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2008년 이후 컨설팅 업계를 표현하는 단어는 ‘저가 수주, 적자, 감원’ 등이다. 운영이나 정보기술(IT) 컨설팅은 약간 사정이 낫지만, 전략 쪽은 특히 어렵다. 예전에 서로 영역을 존중하던 로펌, 회계법인, 컨설팅 업체가 지금은 “원스톱으로 다 해주겠다”며 수주전을 펼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단기간에 일을 해치우다 보니, 가중된 업무 강도에 컨설턴트들의 이직이 빈발한다. 예전엔 기업에서 임원으로 데려갔지만, 요즘은 차장도 쉽지 않다. 지난주 사원총회에서 부대표를 제명한 국내 2위 업체 삼정케이피엠지(KPMG)의 내분도 밑바닥에는 전략 컨설팅 분야의 깊어진 불황이 자리잡고 있다. 삼정은 인건비 부담으로 2011년 190억원 적자에 이어 2012년에도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컨설팅 업계의 추락은 시장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먼저 경영 관련 지식이 많이 범용화됐다. 예전엔 해외파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제 해외 엠비에이 졸업생이 기업에 넘쳐난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글로벌 환경에 맞춰 새로운 이론으로 수요를 창출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외국계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한재중 회계사는 “운영 컨설팅 쪽만 봐도 ‘활동기준 원가계산’(ABC), ‘균형전략 실행체제’(BSC) 이론 이후에 새로운 상품이 나오지 않아 시장 개척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웅진(극동건설 인수), 금호아시아나(대우건설 인수), 에스티엑스(STX) 등 공격 경영을 펼치다 최근 어려워진 기업들이 글로벌 컨설팅 업체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 아니냐는 막연한 불신도 퍼져 있다.
이렇게 업황이 어려워지자, 이들은 과거에는 수수료가 낮아 소홀히 했던 공공부문이나 대안 영역인 사회적 경제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매킨지가 지난 4월 “(한국이)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 같다”는 내용의 ‘신성장공식’ 보고서를 냈듯이, 이들은 사회적 의제를 던지면서 공공부문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시장을 만들어 보려 한다. 올 3월 서울시가 매킨지에 30억원을 주고 연말까지 조직 구조, 업무 프로세스 등 경영 진단을 받기로 한 것이 최근의 수주 사례다.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사회 혁신 같은 사회적 경제 영역의 용역 발주에도, 대형 컨설팅 업체들의 입찰 참가가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공공부문이나 시민사회 영역도 실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실제 외국에선 정부가 컨설팅 업체의 가장 큰 고객이다. 다만, 이들 전략 컨설팅 업체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선별해 적용하는 안목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비싼 돈을 들여 한 것이니 억지로 적용하거나 외부의 입을 빌려 구조조정의 빌미로 활용하는 일이 기업·정부 할 것 없이 과거에는 많았다.
서울시의 한 산하 기관장은 “이들의 진단과 제언이 유용한 것도 있지만 분사, 아웃소싱, 국제화 같은 고정된 포맷을 적용해 공공부문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해법도 많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 훼손이 우려되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매킨지는 도시철도공사, 서울연구원 등 서울시 산하 기관에 적자 해소 등을 위해 인력을 외부로 용역하거나 시에서 독립해 글로벌 영업을 하라는 등의 중간 보고를 해, 해당 기관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관리의 중립성에 대한 논란도 따라온다. 컨설팅 업체는 엄격한 ‘칸막이’를 강조하지만, 기업들은 내 정보가 경쟁사에 의해 활용될 가능성을 늘 우려했다. 공공기관 컨설팅은 우려가 한층 클 수 있다. 정부나 공기업에서 ‘캐비닛째로’ 받아가는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는 컨설팅 업체만 안다. 기우일 수 있지만 글로벌 전략 컨설팅 업체가 하는 일이 워낙 많아서 우려하는 것이다. 부즈앨런해밀턴만 해도,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의 자회사로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국방부 등을 단골 삼아 안보 서비스를 주요 사업으로 한다. 지난 6월 미국의 무차별적인 도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도 이 업체의 직원이었다. 앞서 언급된 서울시 관계자는 “자신들은 중간 보고서마저 설명회가 끝나면 다 걷어간다. 정보 투명성 면에서 상당히 불균등하다”고 말했다.
언론 자유를 소중히 여긴 미국의 건국자들은 시장에 그 임무를 맡겼다. 1970년대 초의 워터게이트 특종 같은 위업은 시장에 바탕을 둔 미국 언론시스템의 진가가 발휘된 것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가중되는 상업성의 압박은 공적 제도로서 미국 언론의 책임의식을 거의 증발시켜 버렸다. 컨설팅도 언론처럼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좌우하는 산업이다. 시장 원리가 공공 및 사회영역으로 파고들 때 고유의 소중한 무언가를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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