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상속세·종교인 과세 등
국회 논의과정서 ‘흐지부지’
금융소득 세혜택 되레 늘려
국회 논의과정서 ‘흐지부지’
금융소득 세혜택 되레 늘려
정부의 내년 세법개정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입김에 휘둘리며 흐지부지되고 있다. 각종 비과세·감면 정비안이 흔들리고 공평과세와 조세형평을 높인다는 취지로 도입된 개편안도 보류되거나 대폭 후퇴하는 선에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가계부 이행에 필요한 재원 확보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25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산하 조세소위원회는 최근 가업상속 세공제 대상 기업을 정부안보다 더 늘리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매출 2000억원 이하 기업’의 지배주주 상속재산 가운데 최대 300억원까지 공제해주고 있다. 정부는 이를 ‘매출 3000억원 이하’의 중견기업까지 혜택을 주는 안을 제시했는데, 새누리당 쪽에서 ‘매출 5000억원 이하’로 대상 기업을 더 넓히고 공제 상한선도 최대 1000억원까지로 추가 상향하는 수정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안이 관철되면, 국내 46만여개 법인 가운데 주식 등 상속재산 과세 대상은 고작 600여곳으로 줄어들게 돼 사실상 법인 상속에 대한 과세 제도가 있으나 마나 한 꼴이 된다.
40년 이상 묵은 과제인 종교인 과세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종교단체와 논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내년 상반기로 논의를 미뤘다. 종교인 과세는 정부가 지난 8월 세법개정안을 발표할 때 과세 기반 확충의 상징처럼 내세운 바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종교인의 수입을 ‘기타소득’으로 간주해 2015년부터 4.4%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는데, 정치권의 종교계 눈치보기 행태를 봐서는 언제 시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카지노·경마장·경륜장 등 사행사업장 입장료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 인상안도 강원랜드와 강원 지역의 반대 여론을 이유로 후퇴했다. 애초 정부안은 내년부터 두 배로 올리는 것이었으나, 국회에선 2015년에 50%, 2016년 이후부터 80% 올리는 것으로 합의됐다.
정부는 증세 없이 세수를 늘리는 핵심 방안으로 비과세·감면제도의 대대적인 정비·축소를 제시했으나, 창조경제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조세소위에선 일부 금융투자 소득에 대해선 세제 혜택을 더 확대하는 법안에 줄줄이 합의했다. 개인의 벤처기업 출자 투자액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고위험·고수익 펀드의 배당소득에 대한 세제지원 신설 등이다. 채이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공인회계사)은 “우리나라는 원래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기반이 취약한 만큼 별도의 추가적인 조세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의 조세 개편이 국회 논의를 거치며 애초 취지가 퇴색하는 바람에 중장기 세수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추계에 따르면, 비과세·감면 정비안이 애초 정부안대로 관철된다 해도 내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세수 증대 효과는 8조6537억원으로 정부가 공약가계부에서 제시했던 목표액 10조6339억원보다 2조원가량 모자란다. 조세소위 소속 박원석 의원(정의당)은 “지금까지 처리된 법안들은 정부의 조세 개편 방향과 맞지 않고 공평 과세와 조세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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