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용품 증가 등 전기화 영향
한겨울에도 전력수요 피크 비상
고통분담 호소 ‘구시대적 대책’
하루 40억 투입등 만만찮은 비용
“전기수요 줄이는 근본정책 필요”
전문가 ‘공급위주 대책 한계’ 지적
한겨울에도 전력수요 피크 비상
고통분담 호소 ‘구시대적 대책’
하루 40억 투입등 만만찮은 비용
“전기수요 줄이는 근본정책 필요”
전문가 ‘공급위주 대책 한계’ 지적
“사이렌을 울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더라. 등줄기에선 진땀이 흘렀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올 한 해 최악의 순간으로 8월11일을 꼽았다. 이튿날(8월12일) 예비전력이 -200만㎾로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예비력이 200만㎾ 미만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발령할 수 있는 ‘경계’ 경보가 내려지면 전국적으로 민방위 사이렌이 울린다. 전력수요는 사상 최대로 치솟고 있는 반면에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로 원전 3기가 가동이 중단되면서 공급은 달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기업체 의무절전 등 전국민에게 ‘절전 스트레스’를 주면서 706만㎾를 확보했다. 그제야 윤 장관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19일 산업부는 ‘겨울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발표했다. 예비전력이 넉넉하니 지난여름 시행한 강제절전 규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월 넷째주로 예상한 전력수요 피크 시점의 예비력(545만㎾)은 멈춰 있는 원전 3기의 재가동을 전제로 한 것이다. 수급 불안이 잠재해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해마다 임기응변식 비상대책에 의존하기보다 근본적으로 전기 소비를 줄이는 정책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 2009년 이후 겨울 전기소비가 여름 눌러 한국전력거래소는 매일 실시간으로 전력수급 현황을 공개한다. 운영예비력이 100만㎾ 이하로 떨어지는 ‘심각’(Red) 경보가 발령되면, 정부가 강제로 전력을 차단한다. 여기서 운영예비력은 전기를 제한없이 쓰고도 남는 전력공급량을 말하는데, 긴급 상황에서 두 시간 이내(동·하계 수급대책 기간은 20분 이내)에 확보할 수 있는 용량을 기준으로 한다.
전기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블랙아웃’(전국적 대정전)이다. 한국전력공사의 ‘송변전백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한 것은 1971년 9월27일, 단 하루뿐이다. 당시에는 전력계통이 간단해서 1시간10분 만에 복구가 됐다. 전국적 정전에도 이튿날 신문에는 이런 사실이 보도되지 않았다. 전력보급이 확산되지도 않았고 기술적 문제 등으로 정전이 잦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한 귀퉁이에 박혀 있던 블랙아웃에 대한 공포가 성큼 현실화한 것은 2011년 ‘9·15 순환정전’ 사태를 겪으면서다. 순환정전 사태가 벌어진 당시만 해도 전력당국의 예비력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당장 돌릴 수 없는 발전기의 용량까지 예비력에 포함돼 있었다는 것을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간부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법원 판결로 확인된 바 있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력수급 상황이 그리 위태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근 몇 년 새 전력수요가 피크를 기록할 즈음마다 떠들썩한 비상대책을 마련하게 된 배경엔 2000년대 중반 이후 두드러진 ‘전기화’(유류 등 다른 에너지를 전기로 대체하는 것) 현상이 있다. 한 예로, 과거에는 해마다 한여름에만 최대 전력수요에 대비한 대책을 세웠지만, 요즘은 한겨울에도 전력수요 피크에 대비해야 한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묶어두면서 전기난방이 급증한 데 따른 결과다. 2009년 이후로는 겨울철 최대 전력이 여름철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2009년 8월 여름 피크가 6321만㎾였는데, 그해 겨울 피크에 해당하는 2010년 1월에는 6896만㎾를 기록했다.
■ 해마다 반복되는 단전 공포…전기화의 부메랑 사상 최대 전력난으로 불린 올여름 전력수요 피크는 8월19일 오후 3시에 있었다. 이날 전력수요 수치는 7402만㎾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강제절전 등 비상대책이 가동되지 않았을 경우엔 8008만㎾까지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상대책으로 600만㎾의 전기소비를 줄인 것이다.
절전으로 고통분담을 호소하는 ‘구시대적’ 정책에는 만만찮은 비용이 뒤따른다. 올해 전력사용을 줄이는 대가로 기업에 지급한 절전보조금 등 비상수급조절 예산은 모두 2400억원이나 된다. 올여름 전력난이 한창일 때는 하루에만 4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전력당국의 전력수급대책은 여전히 공급대책 위주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는 이번에 수급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년에 새로 가동되는 발전소 현황을 공개했다. 공급이 넉넉하니 안심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전력공급이 부족하다 싶으면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좀 남는다 싶으면 규제를 풀어버리는, 일관성 없는 정책이 문제다. 노후한 원전이 많아지면서 갑작스런 발전 정지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어 근본적으로 전기수요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시행했던 것처럼, 일회성 전기요금 인상만 할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요금 인상 계획을 제시해 산업계 등에 강력한 신호를 주는 식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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