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 등 민간연구소 보고서
총수요 부진 따른 저물가에
저성장·가계부채 양상 ‘닮은꼴’
총수요 부진 따른 저물가에
저성장·가계부채 양상 ‘닮은꼴’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주요 민간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물가 하락을 수반하는 경기침체인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높게 전망하는 보고서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낮은 소비 증가율 등으로 인한 총수요 부진과 주택거래 침체, 대규모 가계부채 등이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달 31일 ‘한국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우리경제가 저물가·저성장 기조가 심화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우려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장기불황 가능성이 주목되던 2012년 당시에는 금융부문의 부실이나 충격 흡수력 등에서 과거의 일본에 비해 장기불황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며 “그러나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수출 증가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데다 저물가 기조가 심화돼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도 2.2%보다 더 낮은 1.3%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0.8%)을 제외할 경우 소비자물가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65년 이래 최저치다. 전례 없는 소비증가율 둔화 추세로 보면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저물가는 공급 측면에서 소비자한테 긍정적 의미로 볼 수 있지만, 총수요 부진이 강하게 작용하는 지금 상황은 경제에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낮은 소비증가율과 대규모 가계부채와 함께 앞서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일본과 인구 구성, 부동산가격 하락 등도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앞서 엘지(LG)경제연구원도 “현 경제상황이 과거 일본이 장기 디플레이션에 진입하기 직전과 비슷하다”는 우려섞인 보고서를 내놨다. 강중구 책임연구원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불러온 저성장·저물가 장기화, 구조적 내수저하, 통화가치의 고평가 현상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화 당국인 한국은행 쪽의 생각은 이와 좀 다르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농산물과 석유류를 뺀 근원인플레이션율이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편이라는 이유를 들어, 디플레이션 우려는 지나치다고 밝혔다. 김 총재는 지난달 18일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일반적으로 물가 상승률은 근원인플레이션율로 수렴한다는 것이 과거의 경험”이라며 “인플레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는 점을 보면 디플레를 우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한은은 소비자의 기대인플레이션이 3%에 가깝다는 점을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낮은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과거 움직임을 보면 기대인플레이션은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가 아닌데다 둘 사이의 괴리도 컸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분석실장은 “최근 1~2년 간 변화를 보면 수요와 공급 모든 측면에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점차 높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런 방향성이 가까운 시일 내 반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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