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예비전력이 순간적으로 350만㎾ 미만으로 떨어져 전력수급 경보 ‘관심’ 단계가 발령된 가운데, 서울 강남구 명동대로 전력거래소 긴급전력대책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전국에서 수집된 전력상황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김봉규 선임 기자 bong9@hani.co.kr
[경제 쏙] 전력수요 전망, 어떻게 계산하나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는 2035년까지 39기 가량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원전 증설을 이끈 첫 번째 열쇠는 전력수요 전망에 있다. 전기를 얼마나 쓸 것인지를 가리키는 수요전망에 따라 필요한 발전설비의 규모를 계산한 결과다. 과다하게 부풀려졌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전력수요 전망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걸까?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소는 2035년까지 39기 가량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원전 증설을 이끈 첫 번째 열쇠는 전력수요 전망에 있다. 전기를 얼마나 쓸 것인지를 가리키는 수요전망에 따라 필요한 발전설비의 규모를 계산한 결과다. 과다하게 부풀려졌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전력수요 전망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걸까?
‘딩동~.’
11일 새벽 4시, 어김없이 ‘전력수급 예보’ 문자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이날 최대 전력수요는 7550만㎾, 예비전력은 664만㎾로 예측됐다. ‘전력수급 이상 무’라는 뜻이다.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 전력수급 대책기간’ 동안에, 전력거래소는 매일 전력수급 예보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공무원 및 언론사 기자 등에게 보낸다. 정책 담당자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력수급 예보에 주시하게 된 데는, ‘블랙아웃’의 공포를 불러왔던 2011년 ‘9·15 순환정전’ 사태가 끼친 영향이 크다. 각종 변수에 따라 출렁이는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전력공급 부족 사태를 막는 첫걸음이다.
전력수요는 장기 예측으로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중장기 수요 전망은 추가적인 발전설비 공급계획을 짜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확정된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큰 논란을 불러온 사안도 전력수요 전망에서 불거졌다. 정부가 2035년 전력수요를 2011년에 견줘 80%가량 높게 예측하자, 야당과 에너지·환경단체 등에선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더 많이 늘리려는 정책 의도가 반영된 과다 예측이라며 날 선 공방을 벌여온 것이다.
GDP·인구 증가율·유가·산업구조
4가지 핵심변수 고려해 수요 전망 에너지 소비증가율 줄어드는데
전력부문은 늘어나 도마에
“원전 늘리려는 의도” 공방 불러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심 쏠려
“수요변화 면밀한 검증 필요” 의견 ■ 전력수요전망, 어떻게? 전력수요 전망은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 산업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의 공동 작업으로 수요 예측을 한 뒤, 산업부와 환경부 등 관계 부처 논의를 거쳐 나온다. 수요 전망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국내총생산(GDP) 및 인구 증가율, 국제유가, 산업구조 등 4가지다. 우선 경제성장률은 전망 기간(2011~2035년) 안에 연평균 2.8%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전력 소비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2008년에 나온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06~2030년)에서 전망한 3.7%에 견주면 둔화된 수치다. 인구는 통계청이 5년마다 시행하는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바탕을 둔다. 이번에 반영된 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0.17%로, 통계청이 2010년에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2005년 조사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인구 증가율이 0.03%에 그친 바 있다.
또 두바이 유가는 연평균 1.2%씩 올라 2035년에는 배럴당 14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2008년에 전망했을 때는 119달러였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올라가면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지만 석유제품 수요 감소로 인해 상대적으로 전력수요 비중은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산업구조를 살피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부문이 에너지다소비업종이냐에 따라 수요전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에너지 소비가 많은 편인 제조업의 비중은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견줘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더 커졌다. 석유화학 등 전통적인 에너지다소비업종의 성장세가 다소 둔화된 데 비해 일반기계와 자동차, 조선, 통신기기 등 조립금속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됐다.
전력수요 전망이 도마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5년 전보다 전력수요를 훨씬 더 높게 잡으면서다. 예컨대 2020년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5년 전 예측한 전력수요는 4390만TOE(석유환산톤)이지만 이번에는 5250만TOE로 많아졌다. 특히 전체 에너지 소비 연평균 증가율이 종전 1.4%에서 0.8%로 줄었는데도 전력 부문은 되레 2.2%에서 2.5%로 늘어났다.
정부는 인구 증가율이 과거 통계에 견줘 높아지고 감소세로 돌아서는 시점도 늦춰진 점 등을 수요 증가의 원인으로 들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둔화와 에너지다소비업종의 성장세 둔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수요 감소 요인도 있기 때문에 기본 전제가 되는 4대 변수만으로 전력수요 증가를 설명하긴 쉽지 않다.
■ 과다수요 논란, 왜? 이런 의문에 대해 산업부는 2008년 전력수요 전망을 한 이후 지난 5년간 전력소비 실적이 크게 증가한 점이 주된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전력수요 전망의 구체적인 수치는 에너지경제연구원이 개발한 ‘장기 에너지·온실가스 전망시스템’을 통해 나오는데, 모형을 돌리는 과정에서 ‘과거 실적치’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2년 전력소비 실적치(466.6TWh)는 2008년 1차 계획 때 나온 2012년 전망치(427.7TWh)보다 이미 9.1% 높은 소비량을 보였다.
이에 대해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최근 몇 년간의 비정상적인 전기요금 체계에 의한 비정상적 전기수요 급증을 그대로 미래 수요 전망에 반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전기요금 인상을 지나치게 억제한 결과로 철강 및 조립금속업종의 설비투자가 대거 늘어나는가 하면 석유 등 다른 에너지원에서 전기로 소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가속화했는데, 그 추이를 비중있게 반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산업부도 자체 분석 자료를 통해, 2009~2011년 상반기까지 전기소비 급증세가 두드러진 점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에서 최근 몇 년 새 전력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돌면서 감소세로 전환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정반대 현상을 보인 것이다. 한 예로, 2009년 1분기 경제성장률은 -2.1%인 데 비해 전력소비 증가율은 2.0%를 기록했다. 장우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력소비량의 연평균 증가율은 1982~1992년에 11.8%, 1992~2002년 9.2%, 2002~2012년 5.3% 등으로 추세적 하락세를 나타내왔다. 수요전망(BAU)은 과거 추이가 지속된다는 단순한 가정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인데 추정기간이나 가중치 등에 대한 합리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 근원적으로 향후 경제성장의 정책 방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창훈 환경정책평가연구원 환경전략연구실장은 “전력수요 전망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경제성장률 전망이 잠재성장률에 기반해 높게 나타나고 이 성장률 목표를 맞추려면 수출지향적 제조업 중심 정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높은 경제성장과 환경오염, 원전 증설에 따른 사고 위험’을 안고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낮은 경제성장과 환경보전, 원전 위험 감소’ 등을 택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데 이런 의사결정은 수요 전망을 내는 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발전사 등 관련 업계에서는 거꾸로 수요 전망이 나올 때마다 과소 예측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왔다.
■ 엇박자 수요전망, 재산정될까? 이런 분위기는 이미 지난달 각기 국무회의를 통과한 산업부의 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환경부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상의 전력수요 전망이 엇박자를 보인 데서 극명하게 드러났다.(<한겨레> 1월29일치 16면 참조) 올해 연말까지 확정될 예정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수요 전망이 어떻게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 계획에는 전력수요 전망에 따라 석탄화력과 원전, 가스 등 각 발전설비를 얼마나 늘릴지가 핵심적으로 담긴다. 김창섭 가천대 교수는 “다른 발전설비에 비해 (건설 및 운영기간이) ‘롱텀’인 원전은 수요 예측에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3~4월께 수요 예측을 담당할 소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시동을 건 만큼, 향후 (전력)가격 조정이 수요에 미칠 영향 등이 수요 전망에도 적극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내고 있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전력가격 현실화와 석탄에 매기기로 한 세제 효과 등에 따라 수요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정부가 한 기관의 분석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기관이 제시한 수요 예측 관련 연구 결과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4가지 핵심변수 고려해 수요 전망 에너지 소비증가율 줄어드는데
전력부문은 늘어나 도마에
“원전 늘리려는 의도” 공방 불러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심 쏠려
“수요변화 면밀한 검증 필요” 의견 ■ 전력수요전망, 어떻게? 전력수요 전망은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 산업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의 공동 작업으로 수요 예측을 한 뒤, 산업부와 환경부 등 관계 부처 논의를 거쳐 나온다. 수요 전망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는 국내총생산(GDP) 및 인구 증가율, 국제유가, 산업구조 등 4가지다. 우선 경제성장률은 전망 기간(2011~2035년) 안에 연평균 2.8%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전력 소비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2008년에 나온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06~2030년)에서 전망한 3.7%에 견주면 둔화된 수치다. 인구는 통계청이 5년마다 시행하는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바탕을 둔다. 이번에 반영된 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0.17%로, 통계청이 2010년에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2005년 조사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인구 증가율이 0.03%에 그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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