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송은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은행에 개정 표준약관을 권고하면서 촉발됐다. 사진은 2012년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건물 유리창에 비친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지난해 12월 이후 28건 판결
6건은 소비자, 22건은 은행 손 들어
4년전 대법원 판례로 반환소송 촉발
지금까지 266건의 1심 재판 가운데
소비자쪽 승소한 경우는 9건뿐
2심 42건은 모두 은행이 ‘완승’
법원은 주로 ‘쌍방의 자유계약’ 판단
‘대출자가 약자인 현실 외면’ 지적도
6건은 소비자, 22건은 은행 손 들어
4년전 대법원 판례로 반환소송 촉발
지금까지 266건의 1심 재판 가운데
소비자쪽 승소한 경우는 9건뿐
2심 42건은 모두 은행이 ‘완승’
법원은 주로 ‘쌍방의 자유계약’ 판단
‘대출자가 약자인 현실 외면’ 지적도
금융소비자들이 은행권을 상대로 제기한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청구소송’에서 법원의 엇갈린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후 법원은 6건의 청구소송에 대해선 원고(채무자)의 손을 들어줬고, 22건은 피고(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결에 불복한 채무자와 은행들은 서로 항소심을 벼르는 중이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한혜진 변호사는 “근저당 소송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다르다. ‘약관이 불공정하다’는 대법원 판례에서 시작한 만큼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에서 담보 대출 때 근저당권 설정비를 채무자가 부담하도록 한 ‘불공정 약관’ 문제는 2008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설정비를 은행이 부담하도록 한 개정 표준약관을 은행 쪽에 권장하면서 들끓기 시작했다. 16개 시중은행들은 전국은행연합회와 함께 공정위에 소송으로 맞섰고, 법정 다툼 끝에 2010년 10월 대법원은 ‘공정위의 개정 표준약관 사용 권장은 정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는 지난 10년 동안 은행이 거둔 근저당권 설정비가 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부당 이득금 반환’ 공동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은행권의 ‘완승’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일 은행연합회의 집계를 보면, 1월 말 현재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송과 관련한 266건의 1심 재판 가운데 257건에 대해 법원이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 쪽이 승소한 경우는 9건에 불과했다. 2심에선 42건 모두 은행이 승소했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재판장 이원형)는 국민·우리·한국스탠다드차타드(SC) 등 은행 3곳을 상대로 제기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달 21일에는 국민·하나·신한은행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은행 쪽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왔다. 당시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재판장 여미숙)는 “근저당권 설정계약서에 따라 원고들과 피고들 사이에 체결된 비용부담 약정에 기초해 지출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약관 조항은 고객이 대출 관련 부대비용의 부담주체를 선택할 수 있는 양식을 제공하여 선택권을 부여하고 있을 뿐 부담주체를 일률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은행 책임을 묻지 않은 주된 이유는 채무자가 맺은 약정이 은행의 일방적 지시에 따라 체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쌍방 자유계약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앞서 재판에서도 법원은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금융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채무자가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대출을 받을 수 없는 현실과 관행을 외면한 결과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 출신인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법원이 형식적인 법 논리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은행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재판에서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최승록)는 황아무개씨 등 454명이 국민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상당수 대출거래에서 사실상 은행 직원의 지시에 따라 계약서가 작성되는 현실에 비춰보면 이런 표시를 고객 진의에 따른 실질적인 선택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이 재판부는 지난해 12월19일, 전국의 신협을 상대로 제기된 반환 소송에서도 “금융기관이 우월한 지위에서 대출 관련 부대비용을 고객에게 부담시켜 온 점이 인정된다”며, 원고쪽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런 하급심 판결도 항소심에서 어떻게 바뀔지 예단할 수 없다. 은행 쪽이 패소한 9건 가운데 2심 판결이 나온 1건도 은행 쪽 승소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은데다 법리 다툼 중인 사안이라 공식 반응을 내놓기가 곤란하다”며 입장 표명을 꺼렸다. 이번 ‘근저당 소송’에 대한 법원의 기류와 법리 다툼, 소송 결과 등을 종합할 때, 1심의 원고 승소 판결 중 상당수도 2심에서는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원고 쪽은 ‘약관이 불공정하다’고 본 대법원 판결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이 소송에 참여 중인 금융소비자들은 5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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