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 @hani.co.kr
[경제 쏙] 한국전력공사 강남 부지 운명은…
국토교통부가 이낙연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공공기관 부지 이전 현황 자료를 보면, 본사 부지를 매각 중이거나 매각할 예정인 곳은 총 51곳이다. 그중에서도 세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곳은 한국전력공사 부지다. 일명 강남의 ‘노른자위’ 땅인 이곳, 삼성동 167번지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국토교통부가 이낙연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공공기관 부지 이전 현황 자료를 보면, 본사 부지를 매각 중이거나 매각할 예정인 곳은 총 51곳이다. 그중에서도 세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곳은 한국전력공사 부지다. 일명 강남의 ‘노른자위’ 땅인 이곳, 삼성동 167번지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1986년 11월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167번지에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1961년 중구 남대문로에 첫 둥지를 틀었던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여의도, 을지로, 청담동 등을 전전하다 삼성동 사옥을 완공한 날이다. 총 7만9324㎡(약 2만4000평)의 부지에 지상 22층(지하 3층)으로 지어진 본관과 지상 5층(지하 3층)의 별관, 지상 4층의 후생관(지하 1층)이 ㄷ자 형태로 지어졌다. 당시만 해도 주변은 황량했다.
만 27년이 흐른 뒤, 이 곳은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땅으로 변모했다. 한전은 오는 11월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긴다. 혁신도시특별법에 따라, 내년 11월까지 본사 매각도 완료해야 한다. 장부가액(2010년 1월 기준)만도 2조원을 넘는 한전 부지는 강남의 ‘노른자위’ 땅으로 불린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서울에서 개발이 가능한 마지막 부지로 이 곳을 지목할 정도다. 국내 최대 업무·상업지역인 테헤란로 및 코엑스와 연계한 대규모 단위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전과 소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 땅의 처분을 두고 몇 년째 고심만 거듭하고 있다. 헐값 매각이나 특혜 시비 없이 제값을 받아야 하는 데다, 개발을 하더라도 공공기여도를 높여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 돼버린 탓이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고경영자(CEO)로선 리스크가 굉장히 큰 문제”라고 털어놨다.
■ 용산개발 따라 하려다 제동 첫번째 관전 포인트는 매각 방식이다. 한전 본사 이전은 2005년 참여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방침에 따라 결정됐으나, 한전 본사 부지가 ‘노른자위’ 땅으로 부각돼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2011년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김중겸씨가 한전 사장으로 오면서 ‘자체 개발’ 추진에 군불을 땠다. 당시 한전에 꾸려진 본사매각팀은 코레일이 직접 지분 참여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을 본따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전 관계자는 “용산 개발이 ‘꿩’(매각대금)도 먹고 ‘알’(개발이익)도 먹는 것처럼 여겨지던 때다. 민간기업 출신 사장들이 특히 ‘용산 스타일’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물가안정 차원에서 전기요금을 묶어놓으면서 불어난 막대한 부채를 개발이익으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나왔다.
법적으로도 출구가 열리는 것처럼 보였다. 2010년 국회에선 한전의 부동산 개발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한전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본사 부지도 개발 대상으로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긴 했지만, 지식경제부 장관(현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가능하도록 법이 고쳐졌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런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공공기관 부지 매각을 총괄하는 국토해양부가 공공기관이 부지를 ‘자체 개발’할 수 없도록 못박은 것이다. 코레일의 용산 개발이 사업비만 축내고 좌초되면서 ‘제2의 용산 사태’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대신 국토부는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자산유동화(ABS), 리츠(부동산투자신탁)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놨다. 경쟁입찰 등 단순한 일반 매각만 허용하면 헐값에 부지를 넘겨야 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가운데 피에프브이(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아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페이퍼컴퍼니)는 용산 개발에서 활용된 기법이지만, 코레일처럼 공공기관이 직접 개발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허용됐다. 정 안팔리면 매입 공공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사들여 개발하도록 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무렵부터 사실상 매각 방안이 원점에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한전은 아직 매각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두번째 관전 포인트인 매각 시기에 대한 압박이 더해졌다. 지난해 11월 이후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일환으로, 부채가 많은 기관에 대해 강도 높은 감축 요구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한전은 지난해 9월 2017년까지 부채 규모를 70조3000억원 수준(2012년 55조원)으로 억제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 1월29일 5조8000억원의 빚을 더 줄이는 추가 감축방안을 기재부에 냈다. 본사 부지 등 자산매각으로 줄이겠다고 한 금액만 1조5000억원 가량이다. 지난 20일 기재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 부동산 헐값 매각 방지를 위해 ‘매각 후 재임대’(Sale & Lease Back)를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한전 11월 나주로 본사 이전
코엑스·테헤란로 연계개발 쉬운
2조원 규모 삼성동 부지 8만㎡
내년 11월까지는 매각 완료해야 헐값 매각·특혜 논란 피하고
정부 빚감축 압박 제값 받아야…
허가권 쥔 서울시는 ‘공공성’ 비쳐
매각까진 고려해야 할 사항 많아 삼성·현대차 등 부지매입 ‘눈독’
한전, 처분놓고 몇년째 고심중 ■ 인·허가권 쥔 서울시 핵심 변수 한전 부지에 눈독을 들이는 대기업으로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거론된다. 삼성그룹은 이미 인근 옛 한국감정원 부지를 매입하는 등 관심을 드러내왔다. 2009년에는 삼성물산과 포스코 컨소시엄이 한전 부지 일대를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제안서를 강남구청에 내기도 했다. 그룹 쪽은 삼성생명을 통해 투자시기를 조율중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뚝섬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지으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가세한 경우다. 양재동 본사 사옥이 비좁아진 현대차그룹은 성동구 뚝섬 일대에 110층 규모의 사옥을 지으려다 규제에 걸려 포기한 바 있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가 핵심 변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전 부지 매각에 있어서, 가장 주목해야 할 마지막 관전 포인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10월25일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에서 ‘서울 관광·마이스(MICE)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마이스는 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 관광(Incentive Travel),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국제회의 및 전시회를 기반으로 한 산업을 가리킨다. 2020년까지 한전 부지와 서울의료원, 한국감정원, 잠실종합운동장 부지 등을 코엑스와 연계 개발해, 마이스산업 복합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5월께 발표될 예정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공공개발센터 관계자는 “개발 계획에 대한 밑그림이 나오면 도시계획 변경 사전 협상 제도를 통해 부지 용도 변경 등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전 부지의 95%는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설정돼 있다. 용적률이 최대 300%를 넘기면 안된다. 개발에 나서려면 용적률을 300~1300%로 올릴 수 있는 일반상업지역으로의 용도 변경이 불가피하다. 서울시와의 협의 과정에서 결정될 용적률과 기부채납(개발 과정에서 지자체에 기부해야 하는 재산·도로나 공원 등) 비율 등은 수익성과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민간 대기업과 투자자 등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울시 쪽은 기부채납 비율이 전체 부지의 40% 이하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용도변경에 필수로 따르는 기부채납을 하고서도 단순 일반 매각 때보다 매각 대금이 더 많이 남지 않으면 곤란하다. 계산기를 두들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한전 부지에 들어설 시설에 대한 공공기여도를 높여서 개발 이익을 시민들에게 최대한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고, 너무 낮게 떨어뜨리면 특혜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코엑스·테헤란로 연계개발 쉬운
2조원 규모 삼성동 부지 8만㎡
내년 11월까지는 매각 완료해야 헐값 매각·특혜 논란 피하고
정부 빚감축 압박 제값 받아야…
허가권 쥔 서울시는 ‘공공성’ 비쳐
매각까진 고려해야 할 사항 많아 삼성·현대차 등 부지매입 ‘눈독’
한전, 처분놓고 몇년째 고심중 ■ 인·허가권 쥔 서울시 핵심 변수 한전 부지에 눈독을 들이는 대기업으로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거론된다. 삼성그룹은 이미 인근 옛 한국감정원 부지를 매입하는 등 관심을 드러내왔다. 2009년에는 삼성물산과 포스코 컨소시엄이 한전 부지 일대를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제안서를 강남구청에 내기도 했다. 그룹 쪽은 삼성생명을 통해 투자시기를 조율중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뚝섬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지으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가세한 경우다. 양재동 본사 사옥이 비좁아진 현대차그룹은 성동구 뚝섬 일대에 110층 규모의 사옥을 지으려다 규제에 걸려 포기한 바 있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태도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가 핵심 변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전 부지 매각에 있어서, 가장 주목해야 할 마지막 관전 포인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10월25일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에서 ‘서울 관광·마이스(MICE)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마이스는 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 관광(Incentive Travel),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국제회의 및 전시회를 기반으로 한 산업을 가리킨다. 2020년까지 한전 부지와 서울의료원, 한국감정원, 잠실종합운동장 부지 등을 코엑스와 연계 개발해, 마이스산업 복합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5월께 발표될 예정이다. 서울시 도시계획국 공공개발센터 관계자는 “개발 계획에 대한 밑그림이 나오면 도시계획 변경 사전 협상 제도를 통해 부지 용도 변경 등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전 부지의 95%는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설정돼 있다. 용적률이 최대 300%를 넘기면 안된다. 개발에 나서려면 용적률을 300~1300%로 올릴 수 있는 일반상업지역으로의 용도 변경이 불가피하다. 서울시와의 협의 과정에서 결정될 용적률과 기부채납(개발 과정에서 지자체에 기부해야 하는 재산·도로나 공원 등) 비율 등은 수익성과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민간 대기업과 투자자 등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서울시 쪽은 기부채납 비율이 전체 부지의 40% 이하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용도변경에 필수로 따르는 기부채납을 하고서도 단순 일반 매각 때보다 매각 대금이 더 많이 남지 않으면 곤란하다. 계산기를 두들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한전 부지에 들어설 시설에 대한 공공기여도를 높여서 개발 이익을 시민들에게 최대한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고, 너무 낮게 떨어뜨리면 특혜시비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