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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낙하산 통로’ 임원추천위 명단도, 회의록도 ‘쉬쉬’

등록 2014-03-04 22:10수정 2014-03-14 16:13

[경제 쏙] ‘공공기관 낙하산’ 차단 어떻게

국내 공공기관 304곳 가운데,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에 따른 인사 절차를 거쳐야 하는 임원은 1000명을 훌쩍 넘긴다. 사실상 공공기관 임원 인사는 연중 내내 이루어지는 셈이다. 공공기관이 일종의 ‘보상처’로 활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임명권자(대통령)는 아무도 없었지만, 제도 개선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일단 무능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광물자원공사 감사로 적합한가요?”(전정희 민주당 의원)

“특별히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광물에 대한 전문성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건 아닙니다.”(윤 장관)

“그럼 어떤 자격이 필요한가요?”(전 의원)

“지나치게 경영에 개입하거나 부화뇌동하지 않아야….”(윤 장관)

지난달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선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를 두고 야당 의원들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문성이 결여된 정치인 출신 인사가 각 공공기관의 기관장·감사는 물론이고 비상임이사(사외이사) 자리까지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이틀 전에 임명된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홍표근 감사도 적격성 논란에 휘말린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여성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당시 후보의 당선을 도운 인물이다. 전형적인 ‘보은 인사’로 도마에 올랐다.

‘무능한 사람’은 아니라는 윤 장관의 궁색한 답변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공공기관 기관장·감사의 자격 요건에 대한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광물자원공사는 이번 인사 보도자료를 내면서 신임 감사의 어떤 이력 사항도 기재하지 않고 달랑 이름과 직함만 명시했다. 야당 의원들이 홍 감사의 업무 전문성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공사 쪽은 ‘제7대 충남도의회 건설소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제8대 충남도의회 농수산경제위원장’ 등 광물자원 분야와는 무관한 그의 경력만 장황하게 늘어놨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의 기관장·감사는 해당 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서 3~5배수의 후보를 추천하면 공공기관 운영위원회가 다시 2~3배수로 추리는 절차를 거친다. 이후 주무 부처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식이다. 2007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공운법) 제정 이후 본격 시행된 임추위는 부적절한 낙하산 인사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모호한 자격 기준과 형식적 운영 등으로 외려 낙하산이 내리꽂히는 ‘통로’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임추위의 주된 기능은 후보자 탐색 및 검증, 추천 등으로 압축된다. 우선 임추위 위원의 절반가량은 사외이사로 채워진다. 나머지는 이사회가 선임하는 외부 민간위원으로 꾸려지는데, 전체 위원 수의 절반 미만이어야 한다.

임추위의 명단 및 회의록 등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해당 공공기관들은 대체로 임명 전에는 “사전 로비 접촉 우려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 임명 뒤에는 “임추위 의결로 자료를 파쇄했다”고 일축한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 9조1항과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 17조5항, ‘임원추천위 운영규정’ 20조4항 등은 이런 비밀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조항들이다. 임원 인사 과정을 바깥에서 감시할 수 있는 통로가 제도적으로 가로막혀 있는 셈이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임명 전엔 “사전 로비 우려 있어”
나중엔 “전체 의결로 자료 파쇄”
임추위원 명단 철저히 비밀로

특정인 지도교수가 민간위원 포함
유력 후보에 맞춰 구성하기도

관료 출신들로 민간위원 임명 많아
‘독립성 견지’ 제도 취지 무색

‘회의록 공개’ 법개정안 국회 계류
임원 자격요건 구체화 움직임도

4일 <한겨레>가 우윤근 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추천위 현황 자료를 보면, 공사 쪽은 지난 1월10일 이사회를 열어 사외이사 4명에다 외부 민간위원 2명을 참여시킨 추천위를 구성했다. 민간위원 가운데 한 명은 옛 상공자원부 국장 출신이고, 또다른 한 명은 공사 지역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미 사외이사 중에도 전·현직 산업부 간부가 포함돼 있다. 독립성을 견지하는 차원에서 별도로 선발하는 외부 위원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추천위는 지난 1월14일과 24일, 28일 세 차례 회의를 거쳐 9명의 응모자 가운데 3명을 추렸다. 이 가운데 2명이 새누리당 출신이고 나머지 1명은 공사 간부 출신이다. 나머지 지원자 6명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지난달 21일 청와대는 새누리당 출신 가운데 한 명인 이상권 전 의원을 새 사장에 임명했다.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인천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이 사장은 2010년 보궐선거로 18대 의원이 됐지만, 19대 선거에서 민주당에 패한 바 있다. 공사 쪽이 제출한 신임 사장의 전문성에 대한 설명자료에는 ‘극심한 노사분규로 소용돌이치던 1988년부터 6년간 노동 전담 검사로 재직하면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경력이 도드라진다.

이런 ‘정치적 임용’을 걸러내지 못하는 데는 구체성이 결여된 모호한 임원 자격 요건 규정이 일조하고 있다. 현행 공운법을 보면, 기관장 후보는 ‘해당 기관 업무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최고경영자의 능력을 갖춘 사람’을, 감사 후보는 ‘업무 수행에 필요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을 추천하도록 돼 있다. 또다른 낙하산 논란을 부른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사장(김성회 전 새누리당 의원 임명) 추천위에 참여한 바 있는 한 외부 위원은 “3~5배수를 추천하게 돼 있어 세밀하게 검증해 걸러내기가 어렵다. 특정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업무 전문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후보 추천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임추위 구성 단계에서부터 특정 지원자에게 유리하게 맞춰지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한국무역보험공사가 김제남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사장 추천위(2013년 12월 기준) 명단을 보면, 김영학 신임 사장(당시 지원자)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 오아무개씨가 외부 위원으로 포함돼 있다. 옛 지식경제부(현 산업부) 차관을 지낸 김 사장은 임추위 구성 초기부터 유력 후보로 입길에 오른 바 있다. 추천위에 포함된 사외이사 6명 가운데 3명이 산업부 등의 관료 출신인데다, 오 교수 외에 나머지 외부 위원 3명 가운데 2명이 산업부 및 유관기관의 현직 간부다. 전관예우 차원에서 이뤄지는 ‘관료 낙하산’으로 지목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추천위가 꾸려지면 위원들에게 특정 후보를 밀어달라는 개별 접촉이 들어가는 식이었는데, 최근에는 청와대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이후에 추천위가 구성된다”고 말했다.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두고 임추위를 구성하라는 주문이 들어온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도로공사 사장 추천위는 사장이 된 김학송 전 새누리당 의원을 포함하지 않은 후보자 명단을 올렸다가 이례적으로 퇴짜를 맞기도 했다.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반수를 차지하는 사외이사의 결정권이 강력한데, 공공기관 실태조사를 해보면 이들이 애초 기대와 달리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위원 선정도 이사회 결정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치적 임용에 대한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낙하산 인사 방지라는 애초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임추위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국회 기획재정위 법안심사소위에는 임추위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공운법 개정안(이인영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계류돼 있다. 우윤근 의원도 5년 이상 관련 업무 경력 등 공공기관 임원의 자격 요건을 구체적으로 공운법에 명시하는 법안 발의를 준비중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의 이수진 입법조사관은 “임추위의 실질적 독립성 확보를 위해, 영국 공공인사감독관실(OCPA)과 같은 민간위원 인력 풀을 구성해 임원 추천 때마다 파견하는 방안을 참고할 만하다. 또 자격 요건 구체화와 관련해서는 학력 기준과 계량화된 업무 경력 외에 기업 지배구조, 사업 개발 및 산업에 대한 지식, 재무 및 관련 분야 전문성 등을 요건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0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공공기관의 임원 직위별로 세부 요건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관련 내용이 빠지며 힘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미 기재부는 지난해 7월에도 임추위 기능을 강화하는 등 유사한 내용의 대책 마련을 공언했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수진 조사관은 “제도 개선을 하더라도 인사권자가 이를 회피하려고 하면 (낙하산 인사를) 막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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