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기준 도급업체의 월 평균 임금격차
공정위 보고서…납품단가 인하에 사내 하도급인력 5배 급증
대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는 사이에 중소 하도급 업체들은 납품단가가 되레 떨어지고, 임금 역시 대기업의 최저 40%선까지 크게 떨어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대기업들이 임금 부담을 줄이고 해고를 쉽게 하려고 사내 하도급을 확대하면서 조선업종의 경우 1990년대 초에 비해 사내 하도급 노동자가 5배로 급증해 고용불안이 더욱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자동차·전자·조선업종을 대상으로 조사해 작성한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를 방지하기 위한 하도급거래 관련 정보공개’ 보고서에서 밝혀졌다.
확대된 임금격차=종업원 1천명 이상인 자동차산업 대기업의 평균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중소 부품기업의 평균임금은 96년에는 61.4였으나 2002년에는 43.0으로 더욱 떨어졌다. 전자산업도 중소 도급업체의 월 임금은 96년에는 대기업 임금의 62.7 수준이었지만, 2002년에는 45.6으로 떨어졌다. 조선 하도급 기업의 임금도 같은 기간 대기업의 75.0에서 61.1로 감소했다. 자동차·전자·조선 등 세 업종 모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하도급 단계가 1차에서 2차, 3차로 내려갈수록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 현상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차 업체의 1차 도급업체인 ㅁ사의 시간당 임금은 1만800원이지만, 2차 도급업체인 ㅈ사는 7천원, 3차 도급업체인 ㅎ사는 4500원으로 최저임금 수준까지 내려갔다. 게다가 한번 결정된 시간당 임금은 차종 개발이 끝날 때까지 동결돼 중소기업의 임금인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엇갈리는 호황과 경영난=2001년~2003년까지 현대차의 매출 기준 당기순이익률은 5.2%에서 7.0%, 기아차는 5.0%에서 5.5%, 쌍용차는 3.9%에서 18%로 모두 크게 상승했다. 삼성전자의 순이익률은 2002년 9.1%에서 2003년 13.7%로, 엘지전자도 같은 기간 3.1%에서 3.3%로 상승했다. 반면 삼성, 엘지와 거래하는 중소 전자업체 5곳의 납품단가는 2002년에는 전년도보다 평균 3.1% 떨어졌고, 2003년에도 1% 낮아졌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다섯 업체 중 세 곳은 적자로 돌아섰다.
조선산업도 사상 최대의 수주 실적을 기록하는 등 호황이지만, 저임금을 받는 사내 하도급 노동자 수를 크게 늘렸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업체 9곳의 정규직은 90년 이후 3만5000명 안팎으로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사내 하도급 업체 소속 노동자는 7360명에서 4만288명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직영 대비 하도급 고용비율은 90년 21.2%에서 2002년 111.7% 수준으로 높아졌다. 특히 삼성중공업과 한진중공업은 직영 대 하청 비율이 37 대 63, 41 대 59로 직영 노동자보다 하도급 노동자가 훨씬 많았다.
불공정한 납품단가 결정=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는 납품단가 결정단계부터 불공정한 ‘게임’이 시작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이 80% 이상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경쟁입찰제를 통해 부품 업체를 선정하더라도 추가 단가인하를 요구하고, 여기에 덧붙여 매년 단가인하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었다. 전자업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기업에서 분사된 부품업체 ㄱ사에는 모기업의 80% 시간당 임금에 해당하는 납품단가가 적용됐다. 하지만 계약조건에 5년 동안 납품단가가 동결된다는 ‘딱지’가 붙으면서, 임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전속계약 때문에 거래처를 다양하게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결국 저임금을 견디다 못한 대기업 출신 직원들은 모두 떠났고, 지금은 병역특례자를 고용하면서 겨우 꾸려가는 형편”이라고 털어놨다. 전자산업의 납품단가도 떨어지는 추세다. 종업원 50명 이하 전자부품 소기업 2727곳의 납품단가 평균 변동폭을 보면, 2001년 단가(100)를 기준으로 할 때 2002년의 평균 가격은 91.7로 조사됐다.
노동연구원의 조성재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중소 하청업체들을 상대로 원자재값 상승과 적정한 임금 등을 보장하지 않아 결국 모든 부담이 전가되는 구조”라며 “불공정한 관행에 대해 지속적이고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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