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팜 직원들이 2012년 캄보디아 이삭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양광 발전설비를 구축하며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에너지팜 제공
[사회적 경제] 해외로 가는 청년 소셜 벤처(상)
경제적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벤처기업인 소셜벤처. 2000년대 후반 창업한 1세대 소셜벤처 중에선 해외에서 성과를 거두는 곳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다국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창업하는 글로벌 소셜벤처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들을 2세대라 부른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전지구적으로 행동하는 소셜벤처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약 70㎞ 떨어진 타께오주에 이삭학교가 있다. 10년 전 한국 종교인이 농업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비정규 학교다. 적정기술 소셜벤처인 에너지팜(energyfarm.kr)은 2011년 7월부터 이삭학교에 적정기술을 보급하고 교육해왔다. 사회공헌의 일환이었다. 에너지팜 직원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캄보디아로 날아가 타께오 청년들에게 태양열 조리기와 가정용 태양광발전 설비를 만드는 기술을 전수했다. 그 성과로 지난해 봄 이삭학교 출신 청년 10여명으로 구성된 소셜벤처 ‘에코솔라’가 설립됐다.
그러자 공공기관·대기업·비영리기관에서 해외지원사업 문의가 쏟아졌다. 지난해 에너지팜은 에코솔라와 함께 태양열 조리기 100대와 가정용 태양광발전 설비 60기를 제조해 설치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야자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을 졸여 사탕을 추출하기 위해 장작을 사용하는 바람에 산림 황폐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에코솔라는 장작 대신 태양열 조리기를 사용해 ‘태양열 팜슈가’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면서 에너지팜에 “처갓집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놓아 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캄보디아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처갓집에 가정용 태양광발전 설비를 선물하고 싶다는 사연이었다. 이런 사업들을 진행하면서 에너지팜은 최근 국제사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8년 1인기업으로 시작해 2011년 에너지팜을 설립한 김대규 에너지팜 대표는 “자전거 발전기만 해도 한국에서는 체험과 교육장비로 국한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학교 기숙사에서 야간조명을 위해 실제로 사용하는 등 적정기술에 대한 현실적 절박함이 있다”며 “한국 정부가 에너지 산업을 대기업 위주로 진흥하면서 우리 같은 소셜벤처가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 국제사업을 주력으로 할지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소셜벤처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는 국경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1세대 소셜벤처들이 5년 정도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업적 전문성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추면서 성과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공감만세(fairtravelkorea.com)는 공정여행사다. 하지만 다른 공정여행사와 달리 국제개발협력 시민단체(NGO)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공감만세는 창업한 2010년 초부터 필리핀에서 ‘카투아완 카미’라는 이름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필리핀 마닐라의 극빈지역 아이들을 위해 지역빈민조직 및 국제기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무료 공부방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여행상품 매출의 90%를 여행이 이뤄지는 지역사회에서 일으키고, 이익의 10%는 환경단체에 기부하며, 지역주민 10명을 직간접 고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항공을 제외한 교통수단과 숙소 등 모든 여행 인프라도 대중교통이나 시민단체 등 현지 주민의 것을 이용한다.
국내서 경험 쌓은 1세대 창업자들
전문성 바탕 진출해 잇따라 성과 캄보디아에 농업기술 학교 세우고
태양광발전회사 설립한 ‘에너지팜’
사업이익 태반 지역사회 환원하고
공부방 운영하는 여행사 ‘공감만세’
‘에코준’ 개발한 옥수수 플라스틱은
해외서 먼저 주목받은 뒤 국내 입지 지난해 말에는 필리핀 루손섬 북부 이푸가오 지역 최초의 도서관인 ‘아시아 평화도서관’을 열었다. 이 지역의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유명하지만, 워낙 가난한 지역이라 도서관 하나 없었다. 경제난으로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유지되기 어려워지면서 계단식 논마저 훼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공감만세는 이푸가오 지역 청년조직인 시트모(SITMo), 주정부, 주관광청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컨소시엄 기관들은 이푸가오 지역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의 지원을 받아 도서관을 마련했다. 이 도서관은 이푸가오 지역의 전통문화 수집, 연구사업, 전통문화교실 운영, 공정여행 가이드 양성, 이푸가오 관광객을 위한 공정여행 정보센터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타이 치앙마이에서도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여행을 통해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사업을 하면 할수록 지역재생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며 “사업의 무게중심이 자연스레 국제개발협력으로 옮겨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에코준컴퍼니(ecojun.com)는 국외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국내에서 입지를 다진 경우다. 이준서 에코준컴퍼니 대표는 2010년 ‘다음 세대를 위한 디자인’을 내걸고 옥수수 플라스틱으로 ‘오리지널 그린 컵’을 개발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하나에 1만원대인 가격이 문제였다.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에서 외국 유명 디자인 시상식이 전환점이 되었다. 2012년부터 ‘레드닷’ ‘iF어워드’ ‘IDEA’ 등 세계적인 디자인 시상식에서 오리지널 그린 컵이 각종 상을 받은 것이다. 뜨거운 물을 부어도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환경성과, 자연에서 100% 생분해되는 폐기물 감소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티백이 컵 안으로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한 실용성이 단순한 디자인에 가미된 점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창의도시전에 전시됐으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입점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외에서 성과를 거두자 국내 반응도 달라졌다. 여러 기업에서 기념품으로 대량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준서 대표는 “지금은 국내 기업 대상 매출이 절반 이상”이라며 “전지구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벤처라면 해외시장 동향을 먼저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에코준컴퍼니는 최근 알약 모양을 한 물병 ‘퍼블릭 캡슐’을 내놓으면서 하나 팔릴 때마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하루치의 말라리아 치료약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폐기물에 창의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 소셜벤처 터치포굿(touch4good.com)도 올해 초 환경교육을 위한 교재로 ‘나비드 고양이 디아이와이(DIY) 키트’를 출시하면서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시작했다. 불량품으로 버려진 양말과 실 뭉치들을 활용해 직접 마우스 손목패드나 고양이 인형을 만들 수 있는 이 제품의 수익금 일부는 국제구호단체에 기부된다. 하지만 국내 소셜벤처들이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도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문제와 소외계층이 많으니 지금은 국내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혹은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소셜벤처를 육성하는 사업은 지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도 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 소셜벤처 네트워크 모임 ‘아이리스’(IRIS)를 운영하는 김동훈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나눔사업부문 부장은 “정부와 대기업의 소셜벤처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민족적인 측면이 있는데,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에서 보면 직접사업보다 현지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며 “한국에 에너지팜이 있고, 캄보디아에 에코솔라가 있으면 전체를 다 합쳐서 하나의 다국적 소셜벤처로 간주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anni@hani.co.kr
에코준컴퍼니의 오리지널 그린 컵. 에코준컴퍼니 제공
전문성 바탕 진출해 잇따라 성과 캄보디아에 농업기술 학교 세우고
태양광발전회사 설립한 ‘에너지팜’
사업이익 태반 지역사회 환원하고
공부방 운영하는 여행사 ‘공감만세’
‘에코준’ 개발한 옥수수 플라스틱은
해외서 먼저 주목받은 뒤 국내 입지 지난해 말에는 필리핀 루손섬 북부 이푸가오 지역 최초의 도서관인 ‘아시아 평화도서관’을 열었다. 이 지역의 계단식 논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유명하지만, 워낙 가난한 지역이라 도서관 하나 없었다. 경제난으로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유지되기 어려워지면서 계단식 논마저 훼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공감만세는 이푸가오 지역 청년조직인 시트모(SITMo), 주정부, 주관광청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컨소시엄 기관들은 이푸가오 지역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의 지원을 받아 도서관을 마련했다. 이 도서관은 이푸가오 지역의 전통문화 수집, 연구사업, 전통문화교실 운영, 공정여행 가이드 양성, 이푸가오 관광객을 위한 공정여행 정보센터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타이 치앙마이에서도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여행을 통해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사업을 하면 할수록 지역재생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며 “사업의 무게중심이 자연스레 국제개발협력으로 옮겨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에코준컴퍼니(ecojun.com)는 국외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국내에서 입지를 다진 경우다. 이준서 에코준컴퍼니 대표는 2010년 ‘다음 세대를 위한 디자인’을 내걸고 옥수수 플라스틱으로 ‘오리지널 그린 컵’을 개발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하나에 1만원대인 가격이 문제였다. 국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에서 외국 유명 디자인 시상식이 전환점이 되었다. 2012년부터 ‘레드닷’ ‘iF어워드’ ‘IDEA’ 등 세계적인 디자인 시상식에서 오리지널 그린 컵이 각종 상을 받은 것이다. 뜨거운 물을 부어도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환경성과, 자연에서 100% 생분해되는 폐기물 감소성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티백이 컵 안으로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한 실용성이 단순한 디자인에 가미된 점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3월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창의도시전에 전시됐으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입점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외에서 성과를 거두자 국내 반응도 달라졌다. 여러 기업에서 기념품으로 대량 주문하기 시작했다. 이준서 대표는 “지금은 국내 기업 대상 매출이 절반 이상”이라며 “전지구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벤처라면 해외시장 동향을 먼저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에코준컴퍼니는 최근 알약 모양을 한 물병 ‘퍼블릭 캡슐’을 내놓으면서 하나 팔릴 때마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하루치의 말라리아 치료약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폐기물에 창의력을 불어넣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 소셜벤처 터치포굿(touch4good.com)도 올해 초 환경교육을 위한 교재로 ‘나비드 고양이 디아이와이(DIY) 키트’를 출시하면서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시작했다. 불량품으로 버려진 양말과 실 뭉치들을 활용해 직접 마우스 손목패드나 고양이 인형을 만들 수 있는 이 제품의 수익금 일부는 국제구호단체에 기부된다. 하지만 국내 소셜벤처들이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에도 해결하지 못한 사회적 문제와 소외계층이 많으니 지금은 국내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혹은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소셜벤처를 육성하는 사업은 지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도 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 소셜벤처 네트워크 모임 ‘아이리스’(IRIS)를 운영하는 김동훈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나눔사업부문 부장은 “정부와 대기업의 소셜벤처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민족적인 측면이 있는데, 국제개발협력의 관점에서 보면 직접사업보다 현지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며 “한국에 에너지팜이 있고, 캄보디아에 에코솔라가 있으면 전체를 다 합쳐서 하나의 다국적 소셜벤처로 간주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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