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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크라우드펀딩’ 물 주니 ‘힐링푸드’ 영그네

등록 2014-05-27 19:14

조관희씨가 쌀농사를 짓는 논은 마치 습지 같아서 가재와 논장어 등이 살고 있다. 조씨는 31일 이곳에서 자신에게 월급과 자금을 지원하는 농사펀드 사람들과 모내기를 할 예정이다.
조관희씨가 쌀농사를 짓는 논은 마치 습지 같아서 가재와 논장어 등이 살고 있다. 조씨는 31일 이곳에서 자신에게 월급과 자금을 지원하는 농사펀드 사람들과 모내기를 할 예정이다.
[나는 농부다] 자연농법 조관희 농부
“중학교 때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읽고 그거에 완전히 꽂혀버렸어요. ‘다른 것 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남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수작골의 ‘고래실논’(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에 만들어진 논)에서 자연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조관희(59)씨. 그는 자신은 천생 농부라고 했다. 인근 하황리 자신의 고향 집에선 ‘남산골 농원’을 운영하며 시래기·무청·산양삼·곶감 등도 생산하고 있다. “중2 때부터 쟁기질을 했어요. 아버지가 마을 이장이셨는데 일할 새 없이 바쁘셔서…. 그때부터 4H 운동에도 빠져들었고요.”

지난 19일 마을 입구에 도착해 오래전 폐교된 것으로 보이는 장암중학교를 둘러보고 있는데, 그가 작은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학교 운동장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어린 학생들이 뛰어놀았을 농구장에는 농구 골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학교 건물도 다 낡아 떨어진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공부시킬 애들이 없으니 그렇게 된 겁니다. 폐교된 지 한 5~6년은 된 것 같은데…. 이게 우리 농촌의 현실입니다. 군에 예산이 없으니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농촌체험을 하는 곳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은데….”

그의 트럭을 따라 공사가 한창인 산을 꼬불꼬불 곡예하듯 얼마 동안 올라가니 그가 경작하는 고래실논 부근에 당도했다. 그런데 논까지 가는 길은 다른 사람이 경작하는 밭에 막혀 있었다. “몇백미터는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논은 하나도 인위적으로 손을 댄 것 같지 않은 자연 그대로였다. 모두 6개로 나뉘어 있었다. “이곳은 습지여서 1년 내내 1급수가 솟아납니다. 1급수라는 것은 가재가 산다는 것이죠. 개구리와 미꾸라지는 물론 우렁이와 가재, 논장어까지 살고 있습니다.”

조씨는 3년 전 임대한 2200평(11마지기) 남짓의 이곳 논에서 아주 특별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펀드의 자금 지원을 받고 저농약조차 쓰지 않는 완전 자연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그가 농사펀드로부터 900평에 한해 매월 50만원씩 인건비까지 꼬박꼬박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내기에 앞서 이미 430만원가량도 지원을 받았다. “굳이 빚내서 농사지을 필요가 없게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조씨가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쌀.
조씨가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쌀.

1만~30만원 십시일반 모아
소농에 영농자금으로 지원
1급수 솟는 ‘골짜기 논’에서
현미 등 ‘치유 농산물’ 생산
시래기·서리태·참기름 등
투자액수만큼 돌려줘
“농사의 패러다임 바꿔야죠”

이런 농사펀드는 몇년 전 그가 참여하는 재능기부 모임인 ‘우문현답’(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에서 처음 얘기가 나왔고, 지난해 처음 시험적으로 운영됐다. 그들이 구상한 농사펀드를 정리하면 이렇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다수가 소농한테 투자를 하기 위해 적게는 1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까지 돈을 낸다.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불특정 다수한테 기금을 모으는 것)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모아진 투자액은 소농한테 영농자금으로 지원된다. 소농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자연농법으로 쌀을 생산해 시래기, 서리태, 참기름, 들기름 등과 함께 투자액만큼 투자자한테 돌려준다. 소농은 굳이 영농자금을 빌릴 필요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도시 사람들은 그다지 부담되지 않는 돈을 들여 친환경 안전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농촌기획자 박종범, ㈜쌈지농부 기획자 천재박, 소셜벤처 ‘둘러앉은 밥상’의 한민성, 문화기획자 공기대, 그린디자이너 김승연, 그리고 조은아씨 등 서울지역 20~30대 자원봉사 활동가들은 지난 4월30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조씨에게 필요한 영농자금을 지원해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모두 1269만원의 크라우드펀드가 형성됐다. 애초 목표 금액은 760만원. 호응이 좋아 167%까지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다. 모두 157명이나 참여했다. 30만원을 낸 사람은 11명, 10만원 53명, 5만원 71명, 2만원 17명, 1만원 5명 등이다. 펀드 투자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농사 과정을 지켜보며 손 모내기, 허수아비 만들기, 벼 베기 등 연 3회(5월, 7월, 10월) 교류행사에도 직접 참가할 수 있다.

“지난해 농사펀드를 통해 결과물을 받으신 분들이 모두 다 뒤로 자빠졌어요. 너무 좋다고….” 조씨는 당시 A형인 20만원짜리에 투자한 사람들한테는 현미 쌀 20㎏과 시래기·서리태·참기름·들기름을 줬다고 했다. B형인 5만원을 낸 사람들한테는 쌀 5㎏이 돌아갔다. 조씨는 당시엔 임금(인건비) 없이 600만원 정도 지원을 받았고, 400평(2마지기) 정도 쌀농사를 지었다.

조씨는 농사펀드 같은 방식으로 “농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꿈이다. “농산물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해야 서로 이익이 됩니다. 제가 쌀농사를 지어주지만 소비자들은 자기가 먹을 쌀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윈윈 하는 상생농법이지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아예 쓰지 않는 자연농법을 고집하다 보니 조씨는 1년 전부터 퇴비를 준비해야 하는 등 할 일도 적지 않다. “미래의 농업은 힐링푸드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힐링푸드는 자연농업이 아니면 안 되고요. 소비자들이 먹어서 치유가 되는 농산물을 생산해 공급해줘야 합니다. 소비자 수준에 맞추도록 농민들 의식이 바뀌어야 해요.”

조씨는 농사의 수익성도 강조한다. “작년에 관행농법으로 생산한 쌀은 한 가마(80㎏)에 17만원 정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어렵게 하다 보니 그보다 더 많이 받습니다. 농사는 생명산업이고 미래산업이며 수익성이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아무리 귀농정책을 펼쳐도 수익성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와서 농사를 짓지요.”

조씨는 관행농업으로 농사를 짓을 때 200평(한 마지기) 기준으로 수익률이 27만원밖에 안 된다며 열악한 농촌 현실을 꼬집었다. 그가 자연농업을 고집하는 이유다. 과거 농약 중독으로 관행농사의 심각성을 스스로 깨달은 것도 자연농법을 택하게 된 이유다. “저는 식물에서 추출한 (해충)기피제마저도 쓰지 않아요. 그렇게 생산된 현미는 힐링푸드입니다. 당뇨병·고혈압·과체중은 다 현미로 치유할 수 있어요. 현미를 자연농법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힐링푸드를 만들기 위해 농사펀드도 하는 것입니다.”

조씨는 31일 자신의 고래실논에서 진행되는 올해 모내기 행사에 농사펀드 기획자와 투자자와 그 가족까지 합쳐 40~50명 정도는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미꾸라지·개구리를 보면서 가재도 잡고 생태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도 아이들이 와서 가재 잡으며 너무 좋아했어요.”

부여/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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