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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피케티 열풍, 한국에 ‘피케티’는 없다

등록 2014-06-12 19:25수정 2014-06-12 21:03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소득 불평등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소득분배 연구가 조금씩 활성화하고 있다. 사진은 비정규직인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달 22일 새벽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소득 불평등 현상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소득분배 연구가 조금씩 활성화하고 있다. 사진은 비정규직인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달 22일 새벽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경제 쏙] ‘피케티 현상’ 들여다보니…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의 <21세기의 자본>은 ‘경제학계의 블록버스터’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현상을 분석하고, 상위 1%에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불고 있는 ‘피케티 열풍’의 배경과 피케티 같은 연구자가 나오기까지는 갈길이 먼 국내 불평등 연구의 현실을 짚어본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사진)의 <21세기의 자본>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9월께 번역돼 나온다는 소식은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미국의 온라인서점 아마존에서 영문판을 사서 읽은 이들도 적지 않다. 인터넷에는 책의 ‘해적판’ 파일이 떠돈다.

가히 ‘피케티 열풍’이라고 할만하다. 피케티가 자신의 책에서 인용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의 첫구절에 빗대면, “지금 한국에 피케티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자들에 세금을 더 매겨야 한다’는 그의 메시지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보수 성향의 언론매체들조차 그가 제시한 ‘팩트’(사실)를 중계하느라 바쁘다. 이는 ‘부와 소득이 상위 1%에 집중되고 있다’는 피케티의 명제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케티 열풍’의 핵심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의 불평등 확대 경향
장기간 데이터 분석해 실증
보수신문조차 큰 관심 보여

피케티 연구대상에 한국은 빠져
국세청이 공개하는 과세자료 빈약
기초자료 부족한 환경적 제약 커

소득분배·불평등 문제에 소홀한
주류 경제학계 무관심도 한몫
“진보·보수든 제대로 된 연구 없어”

사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지난 백여년 동안 나라별로 부와 소득이 어떻게 집중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연구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는 이매뉴얼 사에즈 미국 버클리대 교수, 영국런던정경대 교수 등을 지낸 앤서니 앳킨스와 함께 한 지금까지 이뤄진 연구의 결과를 압축해 ‘월드톱인컴데이터베이스’(World Top Income Database) 누리집(topincomes.g-mond.parisschoolofeconomics.eu)에 올려놨다. 여기서 예를 들어 일본 상위 1%의 소득이 1886년 19.14%에서 2010년 9.5%로 124년 동안 변화한 것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밖에도 구글에서 영문 검색을 하면 피케티가 동료들과 쓴 소득 분배를 주제로 한 논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미국과 일본, 중국, 영국 등이 포함돼있는 피케티의 연구 대상에 한국의 이름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700쪽에 이르는 피케티의 두터운 책에 ‘한국’은 딱 2번 등장한다. 일본, 중국, 대만 등과 함께 국내 저축을 투자로 성공적으로 이끈 국가로 소개하는 대목에서다. 월드톱인컴데이타베이스에 올라와 있는 28개국의 소득 분배 추이 통계에서도 우리나라를 찾아볼 순 없다. 이 데이타베이스에 올릴만한 연구 성과가 한국에서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피케티’가 나오기에는 갈 길이 먼 우리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피케티와 같은 방식으로 소득 분배 연구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기초자료 부족 등의 환경적 제약이다. 다른 하나는 학자들의 문제다.

상위 1% 소득 집중도 나라별 비교
상위 1% 소득 집중도 나라별 비교
피케티 연구 방법론의 핵심엔 국세청의 과세 자료가 있다. 과세 자료는 일종의 연구 ‘인프라’(기반)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세청에서 공개하는 과세 자료는 빈약한 편이다. 국세청은 <국세통계연보>란 책자 형태로 과세 자료를 공개한다. 이 연보엔 피케티가 쓰는 상위 1%, 상위 10% 등 이른바 분위(소득 크기에 따라 등분)별로 나와 있는 게 아니라, 임의로 소득규모를 나눠 공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서 가장 최근에 나온 2012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원천세 가운데 근로소득세의 과세대상 근로소득 규모별로 ‘1천만원 이하’에서 ‘10억 초과’까지 15개 구간에 과세 대상자 1061만명의 각 구간별 인원과 총급여 등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서는 분위별 소득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분위별 소득분배 현황은 지난 2012년 <한겨레>가 국회를 통해 국세청의 근로소득 등 소득세 100분위 자료를 받아서 공개한 게 처음이었다. 이후 홍종학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근로자 보수에 매기는 근로소득세와 사업소득·이자·배당·임대소득 등에 매기는 종합소득세 자료의 중복을 제거한 이른바 ‘통합소득’ 과세자료를 국세청에서 받아 공개하면서 소득분배에 대한 보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득 불평등 연구에 활용되는 주요 자료들
득 불평등 연구에 활용되는 주요 자료들
그러나 이마저도 국세청 누리집 등을 통해 일반인이나 학자, 연구자 등이 볼 수 있도록 공개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한겨레>가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바탕으로 중위소득(소득크기 순서대로 줄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값을 보도하자, 통계청에서는 기자에게 자료를 요청해왔다. 정부 안에서조차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국세청에서 통계청에 과세 대상자 표본(샘플)을 뽑아서 지난해부터 제공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제때 제공되지 않은 등 업무 협조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국책 경제연구소의 박사는 “우리나라 소득분배 연구가 미진한 것은 국세청이 과세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세 대상자의 샘플을 추려 이름을 가린 채 공개하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런 표본 자료를 제공하고 있고, 영국에선 이미 1911년 전체 인구의 약 0.05%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의 ‘슈퍼 부자’에 대한 구체적인 납세자료를 공개했다.

우리나라에서 소득 분배와 불평등 문제 연구가 본격화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실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비정규직의 증가, 부동산값 폭등,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 등 복합적 요인들로 소득 불평등은 더욱 심해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가 2010년 펴낸 <불평등의 경제학>에는 당시까지의 불평등 개념과 이론, 연구 성과와 방법론 등이 잘 정리돼 있다.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듯, 과거 소득분배 연구는 과세 자료가 아닌 주로 통계청과 노동부 등의 조사 자료에 크게 의존했다. 현재 약 9000가구를 샘플로 하는 동계청의 ‘가계동향조사’(식민지 말기부터 조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조사는 조사 대상자의 대답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령 타워팰리스 등에 사는 최상위 부자들이 조사에 아예 응하지 않거나 소득을 숨기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피케티는 이런 조사 방식을 바탕으로 뽑아낸 지니계수(0~1 사이에서 표시되며 높을수록 불평등도가 큼)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토마 피케티
토마 피케티
주류 경제학자들의 소득 분배 문제에 대한 무관심도 한국판 피케티 보고서의 출현을 늦춰온 원인 가운데 하나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과)는 “주류 경제학계에서 불평등 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보수 성향 학자임에도 2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의 장기 추세를 분석한 연구를 선보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소득 분배 문제는 거시 경제학에서 거의 언급이 되는 일이 없는데,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고 말한다.

진보적 사회학자들이 중심이 돼서 불평등 문제를 연구해온 게 사실이지만, 이들은 주로 한계가 큰 가계동향조사 등의 자료를 이용해왔다. 또 사회학자는 아무래도 경제학자보다 국민계정(국민총소득 등의 지표)과 과세 자료 등 경제적 기초자료를 갖고서 소득 분배 실태를 연구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김낙년 교수는 “진보든 보수든 불문하고 소득분배를 제대로 연구해온 학자가 없었다. 피케티가 뜨니까, 다들 이제와서 얘기한다. 단순히 관심 갖는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역량 있는 연구자가 1년 가량 ‘올인’(전력투구)해서 봐야 (연구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소득 분배에 대한 그의 연구 결과는 조만간 월드톱인컴데이타베이스에 실릴 예정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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