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경제연구원 차장 논문
고환율과 무역개방 확대를 뼈대로 하는 수출 위주의 성장 정책이 불평등을 확대시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4일 김승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차장(경제학 박사)이 한국경제연구학회 발간 <한국경제연구> 최근호(제32권 제1호)에 기고한 ‘무역개방·환율·금리와 소득분배의 관계’ 논문을 보면, 무역 개방도 상승과 통화가치 하락, 금리 하락은 소득분배 악화를 동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결과는 한국을 포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25개 국가의 1980~2010년 소득과 분배 지표 등 30년치 연간자료를 분석해 나온 것이다.
김 차장은 논문에서 “개방도의 확대가 소득분배의 악화를 동반하는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난다”며 “이런 분석 결과는 무역개방의 확대로 나타난 임금 상승 및 수입재 가격 하락 등 분배 개선 요인에 견줘 비교 열위 부문의 고용 위축 등 분배 악화 요인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수출과 내수 부문의 불균형 확대를 유발해 분배가 악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무역개방을 적극 추진해오면서 최근엔 세계 61.4%(체결국 영토 기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을 정도로 무역개방도가 높다.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통화가치 하락(원화의 경우엔 고환율) 정책도 소득 분배를 악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통화가치가 하락할 경우 수출 부문이 내수 부문에 견줘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므로, 비교역재 부문에서 교역재 부문으로 소득이 이전되면서 소득분배가 악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고환율로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재 가격이 올라 국내 다수 소비자와 내수 기업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되고, 수출 대기업은 이익을 보는 구조다.
논문은 특히 무역개방과 환율의 교차 효과 분석을 통해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소득분배 악화의 크기는 무역개방도가 높은 경제일수록 비례해서 확대된다”고 밝혔다. 한국은 오이시디에서 수출의존도가 가장 큰 나라 가운데 하나이자, 이명박 정부 이후 고환율 정책 기조를 유지해온 나라다.
논문은 또 “금리가 낮아질 경우 오이시디 국가 평균적으로는 분배 악화 경로가 개선 경로에 비해 강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다만, 금리가 소득분배에 끼치는 영향의 강도는 무역개방과 환율에 견줘 다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논문은 각국의 지니계수(0~1로 값이 클수록 불평등)와 1인당 소득, 인구수, 경제성장률, 무역개방도, 실질환율(물가 변동 반영), 국채금리 등 크게 7가지 기초통계를 활용했다. 김 차장은 논문에서 “분석 결과는 경제성장 자체를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간주하고 성장률 제고를 위해 거시정책 수단을 동원할 경우, 소득 양극화 등의 부작용을 수반할 위험이 높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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