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가까이 파업을 하고 있는 해태제과 노조원들이 한가위 연휴도 잊은 채 1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본사의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장기파업-기습적 구조조정 ‘맞불’
해태노조 “크라운 불매운동 착수”
‘파업복귀자 반성문’ 물의 빚기도 크라운제과가 과자의 명문인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고용안정을 통한 노사협력으로 제과업계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으나 노사간 정면대립으로 오히려 위기에 빠지게 됐다. 노조의 단체협상 요구에 회사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면서 서로 장기파업과 기습적인 인력 구조조정으로 맞서고, 급기야 노조의 불매운동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됐다. 19일로 파업 84일째를 맞은 해태제과 식품일반 노동조합(영업·일반직)은 “추석 귀향길에 나섰던 조합원들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21일부터 ‘크라운제과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된다”며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이 각 지역 주요 할인점 등에서 불매 시위를 주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크라운제과는 지난 1월 외국자본인 유비에스컨소시엄에게 해태제과를 인수한 뒤, 해태의 독립경영과 함께 3년간의 고용보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6월 해태제과 노조가 회사쪽의 무성의한 단체협상 태도에 반발해 파업에 돌입한 뒤 노사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해태제과는 9월초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파업 중이던 과자영업 부문 사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노조는 “회사가 빙과부문 등은 빼고 파업에 참여한 과자영업 부문에서만 희망퇴직을 받았다”며 “노조활동을 와해시키려는 시도로 보고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제소했다”고 밝혔다. 또 회사가 1200여명의 영업부문 사원 가운데 400여명을 줄이려는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울서부지방노동사무소 관계자는 “희망퇴직이 ‘파업 흔들기’ 차원이 아니라 ‘경영상의 이유’라면 영업루트 조정 등 장기적인 계획서가 있을 것이라 보고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면서 “사용자 쪽으로부터 ‘과자영업의 생산성이 떨어져 400명 정도를 구조조정 하려 한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400여명의 구조조정 계획은 ‘3년 고용보장’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해태제과는 ‘400명 구조조정’ 발언을 부인하고 있다. 회사는 “과자영업의 비효율성이 가장 크기 때문에 새 영업 시스템 도입으로 20%의 영업매출 향상을 계획 중”이라며 “새 시스템에선 남는 인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발적’ 희망퇴직을 받았을 뿐 강요나 권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노조는 크라운제과가 해태제과 인수를 계기로 시너지 효과는 커녕 ‘불매운동’ 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은 전근대적 노사관과 경영행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해태제과는 2001년말 이후 외국계 자본에 의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왔으나 크라운이 인수한 뒤에는 윤 회장과 사위인 신정훈(35)씨가 대표이사로 나서고, 윤 회장의 부인 육명희(56)씨가 여성담당 고문으로 들어서는 등 ‘가족경영’ 체제로 탈바꿈 했다. 노조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 때는 매달 전직원을 대상으로 경영설명회가 이뤄지는 등 투명경영을 위한 노력이 기울여졌으나 모두 사라졌고, 노조를 무시하는 전근대적인 노무관리로 불신이 깊다”고 말했다. 해태제과는 파업 복귀자들에게 사실상 ‘노조활동 반성문’을 제출받아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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