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달러 빠져나갈 가능성
신흥국에 한국 수출 감소 우려
미, 내년 중반 기준금리 올릴수도
한은 금리 올려도 자본유출 불가피
신흥국에 한국 수출 감소 우려
미, 내년 중반 기준금리 올릴수도
한은 금리 올려도 자본유출 불가피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값(12월 인도분 선물 기준)은 온스(28.3g)당 1273달러40센트까지 내려갔다. 지난 6월18일 이후 최저치였다. 금값은 그 주에 2%나 떨어졌다. 달러에 견줘 엔화값도 같은 주 1.4% 하락했다. 주된 이유는 21~23일 미국 와이오밍주의 작은 휴양도시인 잭슨홀에서 열리는 한 모임 때문이었다. ‘잭슨홀 미팅’으로 불리는 이 모임에서 양적완화(QE) 종료 뒤 예상보다 빠른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통상 미국 기준금리가 오르면 달러로 표시된 자산의 수요가 늘면서 엔화와 금값 등은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는 세계 금융시장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연준이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신용경색을 막기 위해 도입한 양적완화 정책을 다음달 중에 마친다. 꼭 6년 만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찾아온 가장 큰 경제위기에 맞서 미 중앙은행이 꺼내든 전례 없던 대응 카드 하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주택저당증권(MBS) 등 회사채를 직접 매입해 신용 공급을 늘리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뜻한다.
잭슨홀 미팅을 앞두고서 금과 엔화 가치가 하락한 것은 미국의 통화정책이 ‘정상화’ 과정을 밟아가면서 나타날 수 있는 시장의 반응 가운데 하나였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동요가 거의 없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실장은 “연준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란 시장의 낙관적 심리가 지배적”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양적완화 종료 뒤 금리인상론이 불거지면 우리나라에도 결국 시차를 두고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몇몇 신흥국을 둘러싼 불안이 증폭돼 우리나라에도 불똥이 튀었다. 양적완화 출구전략(테이퍼링)에 취약한 국가로 꼽힌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예고되긴 했으나 양적완화 종료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자 달러가 신흥국에서 갑자기 빠져나가면서 빚어진 현상이었다. 이로 인해 이들 나라를 향한 우리나라의 수출에도 영향이 미쳤고, 일시적이긴 했으나 금융시장 불안정성도 커졌다.
하지만 지금은 양적완화 종료와 이후 연준의 행보가 국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낙관론이 압도하고 있다. 이에 장보형 실장은 “연준이 저금리 추세에서 쉽게 벗어나지 않겠지만, 양적완화 종료에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넘어가는 정책 변화와 맞물려 시장에 충격을 주는 등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연준의 행보를 둘러싼 이런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부동산대출 기준을 완화하는 등 건전성에서 역행한 우리 정책을 (외부에서) 어떻게 평가할지도 우려스러운데, 시장이 이런 점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준은 양적완화 종료에 앞서 오는 16~17일에 있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출구전략’ 원칙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최호상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앞으로 연준이 기준금리를 어느 시점에 올릴지, 풀어놓은 돈을 어떻게 거둬들일지, 기준금리 이외에 단기금리 정책 수단을 어떻게 활용할지 등 크게 3가지가 논의의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적완화 종료란 신규 회사채 매입 등의 중단을 뜻하지, 이미 사들인 채권의 처리는 별도의 문제다. 최 연구위원은 또 “10월 양적완화 종료 이후 언제쯤 금리를 올릴 것인지가 세계 경제에 변동성을 가져올 가장 큰 요인”이라며 “외환보유고가 충분치 않거나 금융 시스템이 불안정한 신흥국에서 자본 유출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내년 6~8월로 점쳐지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신흥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 종료에 이은 미 기준금리 인상 논의로 신흥국이 타격을 입으면 덩달아 우리나라에서도 자본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물경제에서도 신흥국으로 향하는 우리나라의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 장보형 실장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과거처럼 우리나라에서 대규모로 자금이 빠져나가지는 않겠지만, 채권 자금을 중심으로 빠져나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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