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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농사일 힘들 땐 후회도 하지만…자유를 찾았죠”

등록 2014-09-02 20:11수정 2014-09-02 22:07

8월 하순, 농부 김세영씨의 300평 남짓 뽕나무밭에는 잡초도 무성하게 올라와 있다. 김씨는 “죙일 베어줘야 한다. 그래도 또 난다”며 힘들다고 했다.
8월 하순, 농부 김세영씨의 300평 남짓 뽕나무밭에는 잡초도 무성하게 올라와 있다. 김씨는 “죙일 베어줘야 한다. 그래도 또 난다”며 힘들다고 했다.
[나는 농부다] 전직 골프 담당 기자의 귀농
“막상 해보니 농사 참 힘든 게 사실이지만, 이겨내야죠.”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경제일간지 골프담당 기자였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한국 남녀프로골프 투어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 필드를 누볐다. “굿 샷~, 나이스 버디~.” 취재 현장에서 흔히 듣는 말들이었다. 골프를 직접 칠 기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왜 사는 거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엄습해왔다. 시골 출신으로 그러지 않아도 언젠가는 귀농하겠다고 오래전에 마음먹은 터. 부모님 건강도 좋지 않다는 소식에 도시에서의 삶, 기자 직업 등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부모님이 농사짓고 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전북 정읍시 고부면 남복리 62-1. 지난 8월20일 오전, 내비게이션을 따라 차를 쌩쌩 달려 두어시간 만에 맞닿은 곳. 41살의 건장한 김세영 농부는 농업용 창고로 쓰이는 가건물 안에서 흑미·홍미·녹미·찹쌀 등 4가지 쌀로 이뤄진 추석 선물세트(개당 3만원)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순수하게 농사만 지어서는 가정살림이 잘 안되잖아요. 그래서 명절 때 이것을 하는 겁니다.” 이웃 농가나 동네 형님들이 지은 쌀들로 만든 것이다.

고부면? 1894년 2월5일 전봉준을 필두로 한 농민들이 조병갑 군수의 학정에 반발해 봉기하면서 동학혁명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 땅 아닌가? 김씨는 1973년 이곳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셈.

“기왕 시골 내려갈 거면 힘 있을 때 내려가자고 생각했어요. 농사짓다가 뼈를 다쳐도 젊었을 때는 괜찮은데, 나이가 들면 회복이 힘들잖아요. 나이 50에 뭔가 새로운 것 시작했을 때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든 법 아닌가요. 젊었을 때는 망해도 일어설 수 있잖아요.”

그런데 명함을 받아보니 ‘골프 치는 농부 김세영’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아~ 지금 골프 친다는 게 아니라 골프를 쳤던 농부죠. 골프는 흔히 있는 사람들의 스포츠로 인식되는데, 대부분의 농부는 가난하잖아요. ‘골프는 왜 도시의 부자들만 즐겨야 하는가, 농부가 즐기면 이상한 것인가, 그 어떤 직업군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은 부자들의 스포츠를 즐길 자격이 없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우리 모두 힘을 모아 부자 농부가 돼서 농한기에는 골프를 함께 치자. 굳이 골프가 아니어도 좋고….’ 뭐 이런 취지에서 붙인 겁니다.”

제초제 안쓰려 쪼그려 앉아
잡촉 뽑다가 무릎 연골 나가
고생해 일해도 남는 게 없어
그래도 애랑 놀 수 있어 좋아
부자 농부가 돼서 농한기에
이웃들과 골프치는 날 소망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탓에 5년차 농부의 삶은 다소 고단하단다. 현재 창고 뒤편에 있는 3500평 남짓 땅에서 혼자 밭농사를 짓는다. 뽕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인 오디를 비롯해 복분자, 참깨, 땅콩, 그리그 서리태 등 잡곡을 재배하고 있다. 부모와 함께는 1800평 정도 논농사도 하지만 주력은 아니다. 창고는 그동안 버려진 것을 임차해 개조해 쓰고 있다.

“시골의 삶이 다들 여유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직장인들이 더 쉬는 날이 많을 겁니다. 농부들은 농한기인 겨울 한철 쉬는데 12월 중순이나 말부터 2월 중순까지 한 60일 정도 됩니다. 전 지난 3월부터는 단 하루도 못 쉬었어요. 토요일·일요일도 쉴 수가 없어요. 그게 열심히 해도 농사는 일한 만큼 대가가 나오지 않네요.”

지난해 한해 그가 순수하게 농사로 번 돈은 1000만원 정도. “농사는 그만큼 벌었다고 다 내 돈이 아닙니다. 종자나 비료, 퇴비 사고 나면 남는 게 크게 없어요. 농자재도 사야 합니다. 올해는 모든 농산물 폭락해 더 힘들어요.” 그는 “올해는 1000만원은 꿈도 못 꾼다”고 한숨을 내쉰다. 특히 올해는 주 수입원인 오디와 복분자 재배가 너무 힘들었다. “오디와 복분자 1년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는 200만원밖에 집에 못 갖다 줬습니다. 그동안 가져다 쓴 돈까지 하면 마이너스나 마찬가지예요.”

명절 때 판매하고 있는 흑미·홍미·녹미·찹쌀 등 4가지 쌀로 이뤄진 유색미 선물세트.
명절 때 판매하고 있는 흑미·홍미·녹미·찹쌀 등 4가지 쌀로 이뤄진 유색미 선물세트.
그는 수확기에는 혼자 일할 수 없어 사람을 써야 하는데 하루 1인당 인건비로 6만~7만원은 줘야 한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10명 이상 써야 하는데 인건비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죠. 현찰로 줘야 하는데다 두 끼 식사까지 챙겨줘야 합니다. 1인당 8만원씩 잡아도 하루 인건비만 80만원이 나가는 셈이죠. 힘들어요.” 지난해에는 오디로만 썩 괜찮은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신통치 않다. 제대로 했으면 8t 정도 수확할 수 있었는데 3.5t만 따고 나머지는 버렸다. 인건비 부담도 컸고, 가격이 지난해보다 40% 정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농협에서 원해 수매했는데 농협도 재고가 많으니 수매를 하지 않았어요. 오디 수요도 줄었고…. 오디나 복분자는 보관하려면 냉동창고 있어야 하는데 없는 농부가 많아요. 하루 이상 놔두면 안 되니 싼 가격에 시장에 뿌릴 수밖에 없고 자연 가격이 떨어지는 거죠.”

농사가 힘들 때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고, 귀농을 후회하기도 한다. “시골에 내려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농촌의 현실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젊은 나이에 귀농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농산물 가격이 과거나 지금이나 뻔합니다. 옛날에 쌀 한가마 16만원이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정부는 쌀 등 농산물 가격 폭등하려고 하면 외국산 수입해 안정화시키죠. 그런데 가격이 떨어지면 관여 안 합니다. 이래서 농민들이 먹고살겠어요.”

하소연은 이어진다. “요새 제 나이에 대기업 다니면 연봉 700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합니다. 1년 내내 농사 지어봤자 월급쟁이 두달 월급도 안 됩니다. 농사 잘못 지으면 한달 월급도 안 되는 셈이죠. 그렇다고 몸이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니고…. 2년 전부터 제초제 안 쓰고 쪼그려 앉아 잡초 뽑다가 무릎 연골까지 나갔어요.” 시골은 오히려 건강 안 좋아진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노인들이 훨씬 건강해요. 시골 사람들 허리·무릎 고질병 있어요. 저도 육체적 노동 하다 보니, 재작년 허리 삐끗해 좋지 않아요. 일은 안 할 수도 없고, 항상 복대 가지고 다닙니다.”

김세영 씨의 캐리커처.
김세영 씨의 캐리커처.
정부 농업정책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가 귀농하라고 권장하는데, 사실은 대농이나 농업회사법인 위주로 갑니다. 앞에서는 시골 인구 늘리기 위해 귀농하라고 하지만, 사실 농업법인 위주로 지원하고 있어요. 자유무역협정(FTA) 등 영향 때문에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대농 위주로 지원하는 셈입니다. 농업회사법인은 사실은 개인 회사가 많아요.”

물론 농부로서의 삶이 좋은 점도 많단다. “제가 하고 싶을 때 하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직장인과 달리 제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해 애랑 놀아주는 시간 많으니 좋습니다.”

김씨는 “직장 은퇴 뒤 전원생활을 위해 귀농귀촌하는 것은 괜찮지만, 젊었을 때 직업을 위해 시골로 내려오려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농업 현실이 그렇게 만만치 않아요. 귀농하면 단순히 농사만 지을 게 아니라, 농산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자기만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농업에 미래가 있습니다.”

아내와 4살 난 아들과 살고 있는데 아내가 2년 전부터 “다시 서울 가면 안 되냐”고 해서 난감한 상황이기도 하다. 처음엔 귀농을 크게 반대하지 않은 아내였지만 남편이 별로 가져다주는 게 없으니 변했다는 것이다. 그가 사는 남복리에는 30여 농가가 있는데 김씨가 가장 어리다. 바로 위도 57살이다. 김씨는 “벌여놓은 게 많아 농업을 포기하기 쉽지 않다. 나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번듯한 농부로 우뚝 설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정읍/글·사진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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