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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복지는 물론 동반성장 위해서도 증세 필요해”

등록 2014-09-15 20:12수정 2014-09-16 17:45

동반성장연구소장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반성장연구소장인 정운찬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람 중심 경제’로] 기획인터뷰
(4)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동반성장은 한국경제의 위기를 해결할 가장 상식적인 방법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겸 서울대 명예교수(67)는 15일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선성장·후분배의 관성과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개선 없이는 성장 둔화를 피할 길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바로 동반성장”이라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으로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주는 ‘초과이익공유제’, 대기업의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정부 조달 80% 이상을 중소기업에 발주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최근의 증세 논쟁과 관련해 “복지확대와 동반성장을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며 “증세를 좋아하는 국민과 정치인은 없지만, 학계의 합리적 연구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여야 정치권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 저성장 문제 심각
양극화 심화돼 가계부채 늘고
중소기업 부실 쌓여
내수부진·성장둔화로 이어져
또 양극화 심화되는 ‘악순환’

재벌독주 경제구조 민주화 위해
지배구조 투명하게 만들고
하도급 중소기업·비정규직 등
분배 공정히 해야 성장둔화 막아
초과이익공유제 등 도입해야

최경환 정책, 가계소득 강조 옳아
‘빚으로 부동산 부양’등은 잘못
복지 위한 증세문제
학계·시민사회도 참여해 풀어야

-한국경제가 위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보수, 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나는 한국 경제가 커다란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저성장 문제가 심각하다. 이것은 진영논리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상당히 많은 문제의 원인이라서 시급히 교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경제는 전통적으로 해외 수요에 기대 수출을 장려해서 먹고 사는 전략을 선택해 왔다. 그리고 이 정책은 지난 세기 하반기에 상당한 정도 먹혀들어갔다. 미국이 절대적인 경제강국이자 ‘세계의 시장’ 역할을 했고, 미국 경제의 힘이 빠지자 그 자리를 중국이 메워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다. 특히 중국의 성장 추세가 예전만 못하다. 중국의 노령화는 ‘한자녀 낳기 운동’ 탓에 우리사회 노령화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우리 경제에 큰 도전이다. 수출로 먹고 살기 어렵다면 내수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노년 인구가 증가하면서 한편으로는 생산이 줄고, 다른 한 편으로는 소비가 줄게 된다. 줄어드는 소비는 내수활성화를 가로막게 된다.

-저성장과 함께 양극화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 자체도 문제지만, 양극화가 저성장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있다.

“맞다. 양극화 개선 없이는 성장 둔화를 피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선성장·후분배’가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전략이었다. 수출 및 중화학공업과 같은 특정 부문을 선도 부문으로 먼저 육성하고 그 성과가 경제 전체에 파급되기를 기대하는 불균형 성장전략, 이른바 ‘낙수효과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불균형 성장의 결과 소수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가 고착됐고, 국민 대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적 관계 속에 불공정 거래를 감수해야 하는 위치로 전락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가계부문과 기업부문이 각각 양극화 심화를 경험하면서 분배문제는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회자되더니, 최근에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임금 없는 성장’의 문제를 경고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양대 문제로 자리 잡았다. 양극화 심화→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 누적→내수 부진→성장 둔화→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한국 경제에 구조화돼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서 분배의 공정성을 개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핵심적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은 지금까지도 지난 반세기 동안의 선성장·후분배의 관성 또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두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우선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고, 이와 함께 과거보다 더욱 공동체 정신, 형평의 논리를 강조해 사회갈등을 완화시켜야 한다. 이를 ‘사람 중심의 경제’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최근 몇년동안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얼마나 퍼부었나. ‘연명하는 경제’다. 세계경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너무 많이 소비해왔다. 이제 상식적인 방법으로 가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 위기를 풀 수 있는 가장 상식적인 방법이 ‘동반성장’이다. 선성장·후분배라는 20세기의 낡은 전략으로는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게 됐으므로, 이제 21세기에는 불공정 분배의 관행을 공정하게 개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성장전략이다.”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대기업 쪽, 심지어 정부 내부에서도 상당한 압력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하기도 했다.

“내가 추구하는 동반성장은 재벌 독주의 경제구조를 민주화하고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도 활성화해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자는 것이다. 있는 사람 것 빼앗아서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 전체의 파이(크기)는 크게 하되 분배는 좀 더 공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낙수효과’와 ‘분수효과’가 결합돼야 한다. 낙수효과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또 대·중소기업 간의 하도급거래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탈취 등과 같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근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수효과를 위해서는 하도급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의식적 배려와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서민층 생활을 안정시키고, 내수 확대를 통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고용과 투자를 자극해 성장을 가속화하는 간접적인 효과도 가져 올 것이다.”

-동반성장을 위해 추진해야 하는 구체적인 정책은 무엇이 있나?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신념은 여전한가.

“그렇다. 초과이익공유제를 시급히 시행해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진출, 그리고 고용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 보상적인 것이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거래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해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예컨대 80%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당장 필요하다.

이러한 방안들은 기존의 불공정한 게임룰 아래에서라면 대기업으로만 흘러갈 돈이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흘러들어가도록 교정하는 조처들이다. 중소기업에 돈이 흘러들어가면 분수효과가 생기고, 지속적 성장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지난 7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인 최경환 경제팀이 ‘가계소득 증대’를 목표로 내걸고 여러 정책들을 내놓았다. 어떻게 평가하나

“최경환 경제팀이 일정 부분 방향은 잘 잡았다고 본다. 내수를 강조하고, 가계소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 발상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 가면 과거의 고질병이 또 도지고 있는 느낌이다. 집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집 세주고 얻는 임대소득에는 분리과세 정책을 적용해서 세금을 깎아 준다. 주식부자들이 배당을 받으면 그 배당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깎아준다.

더 큰 문제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해주겠다는 것이다. 노령화와 저성장이 기본 추세인데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이 국민 앞에 정직한 정책인가? 이것 때문에 집값 올라가고 전세값 올라가면 가뜩이나 결혼 포기, 자녀 포기를 강요받는 젊은 세대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도 하도급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소득증대에 기여하는 활동에 세제 혜택이 가는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담뱃세, 주민세 등을 연이어 인상하면서 증세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증세 문제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증세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 사회복지제도의 확충을 위해서는 물론, 동반성장 시책의 충실한 집행을 위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정부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현재의 조세체계, 그리고 현 정부의 간접증세 기조만으로는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물론 증세를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들은 증세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침묵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조세부담률 또는 국민부담률을 어느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릴 것인지, 간접증세와 직접증세는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보편증세와 부자증세의 갈등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의 세목별 구성과 세율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재벌 역할에 대한 여러 논쟁이 있어왔다. 최근 들어서는 재벌 안에서도 집중도가 심해지고 있다. 재벌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재벌 문제는 옛날과는 조금 성격이 달라졌다. ‘전차경제’라는 말이 생길만큼 삼성과 현대차 같은 일부 재벌의 독주가 두드러지고 있다. 경제적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 이들의 실적변동에 따라 전체 경제가 함께 흔들리는 위험이 커진다. 재벌을 교정하는 것은 힘과 힘의 대결이다. 정부가 재벌그룹에서 금융계열회사를 분리하라는 계열분리 명령을 내리고,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지주회사 제도를 정상화하면 고쳐질 것으로 본다. 재벌개혁은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정운찬 이사장은

대기업-중소기업 ‘균형성장’ 위해 힘써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경제활동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즈주의자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금융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 총장을 맡으면서 학생 선발에 있어 ‘지역할당제’를 도입했다.

2007년 대선 당시, 대권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불출마 선언’을 하고 학계로 돌아갔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국무총리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한국경제의 대기업 쏠림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고 있던 2010년 12월, 민관협의체로 신설된 동반성장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아 1년4개월간 대기업·중소기업의 균형 성장을 위해 힘을 쏟았다.

퇴임 뒤 2012년6월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매월 동반성장 포럼을 개최하는 등 ‘동반성장’ 전도사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스승인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김상조 한성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홍장표 부경대 교수 등 학계 진보적인 학자들이 가까운 제자들이다. 학계뿐 아니라 사회 각계에 인맥이 넓다.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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