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담뱃세 인상안을 발표한 뒤 담배 사재기 조짐이 일고 있다. 세제 전문가들은 담뱃세 같은 간접세보다 직접세인 법인·소득세를 올려 나라 곳간을 채우고 사회복지망을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편의점 담배판매대가 군데군데 비어 있다. 연합뉴스
‘꼼수 증세’ 제2탄 ‘꼼수 입법예고’
[현장에서]
“이 개정안에 대하여 의견이 있는 단체 또는 개인은 2014년 9월15일까지 다음 사항을 기재한 의견서를 기획재정부(참조: 환경에너지세제과, 전화 (044)215-4251, 팩스 (044)215-8069, 이메일 meing@mosf.go.kr)에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획재정부가 담뱃값 인상에 필요한 개별소비세법 개정 입법예고안을 15일 누리집에 올려두며 덧붙인 문구다. 개별소비세는 담뱃값을 4500원으로 2000원 올리기 위해 새로 추가한 세목이다. 담뱃값 제세부담금 인상분 1768원 가운데 594원으로 30%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비중이 크다. 담뱃값으로 인한 증세 효과를 3조원으로만 잡더라도 국민한테 ‘조단위 증세’를 하는 입법인 셈이다.
이런 중대한 사안을 입법예고 하는데 의견수렴 기한이 9월12일에서 15일로 나흘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주말을 제외하면 이틀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재부는 나흘뿐인 입법예고 기한 마지막날인 15일 오전에서야 누리집 입법예고란에 이를 올렸다. “개별소비세법을 개정함에 있어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이를 공고한다고 밝힌 입법예고 문구가 무색할 지경이다. 같은 내용을 관보에 12일 게시했지만 통상 부처 누리집의 입법예고란이 국민들이 법령 개정 정보를 접하는 손쉬운 창구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성의한 행태다.
담뱃값 인상 관련 입법예고를 이처럼 요식행위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기재부뿐만이 아니다. 안전행정부와 보건복지부도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인상하기 위해 지방세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을 각각 개정하면서 마찬가지로 나흘짜리 입법예고를 했다. 3조원이 넘는 증세 법안과 관련한 국민 의견 수렴이 사실상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현행 행정절차법 43조는 입법예고 기한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자치법규는 2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1조에 입법예고 기한 단축 사유로 예측곤란한 특별한 사정 발생으로 입법이 긴급을 요하는 경우 등 몇가지 예외를 두고 있긴 하다. 하지만 조단위 증세 입법을 하면서 국민의견 수렴 절차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킬 만한 사유는 눈에 띄지 않는다.
관련 부처 담당자들도 뾰족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쪽은 “올 정기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하려다 보니 기한이 짧아졌고, 복지부 등 여러 부처가 관련돼 있어 단독으로 결정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입법예고 기한을 10분의 1로 단축해 사실상 국민 의견수렴을 건너뛸 긴급한 사유가 뭔지에 대해서는 얼버무릴 뿐이었다.
찬반 의견이 첨예한 경우 정부가 입법예고 뒤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하는 게 정석이다. 지금같은 졸속 처리는 “국민 건강을 생각해주는 척, 국민 주머니를 털어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꼼수 증세’를 한다”는 비판을 키울 수밖에 없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정세라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