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소탈한 모습을 거리낌없이 공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왼쪽 사진은 그가 친구 부부를 초대해 요리를 하고 있는 사진이고, 오른쪽은 두산 임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박용만 회장과 함께하는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다. 박 회장은 “노래를 잘 못해서 한 소절만 했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두산의 형제경영
두산의 형제경영
자산기준 재계 12위인 두산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장수 기업이다. 창업주인 매헌 박승직이 1896년 서울 종로4가 배오개(현재의 연지동) 인근에 포목점인 ‘박승직 상점’을 연 이래 118년을 이어왔다. 매헌은 보부상에서 출발해 재산을 모은 뒤 한국 근대기업의 출발을 이루었고, 1915년에는 우리나라 근대 화장품의 효시인 ‘박가분’을 만들었다. 매헌의 장남인 박두병 회장은 1946년 박승직 상점을 두산상회로 바꾸고, 1952년 일본 쇼와기린맥주를 인수해 동양맥주(현 오비맥주)를 설립하는 등 두산그룹의 기틀을 갖추었다.
지난 100여년간 두산그룹의 주력사업은 두차례 완전히 바뀌었다. 창업주 시절에는 포목점을 하다가, 2대 시절에는 이를 다 정리하고 식음료로 바꾸었고, 3대 때인 1996년에는 다시 식음료를 모두 정리하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잇달아 인수해 중공업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조3천억원이었던 매출이 2013년 22조원으로 늘어날 정도로 두산의 구조조정은 성공적이었다. 박용만 회장은 “두산은 특정 회사나 사업(패밀리 비즈니스)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는 집안’(비즈니스 패밀리)이라는 전통을 물려받았다. 이 전통은 지금의 3세대에 그치지 않고 4세대 이후로까지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포목점에서 시작해 118년
상회→식음료→중공업 변신
3세는 다섯째 박용만 회장까지
5형제가 돌아가며 경영했다 특정 기업이나 가업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사업하는 집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믿음
4대째 이후에도 잘 이어질까 두산의 기업문화는 인화를 바탕으로 한 합리성 사고를 강조한다. 두산의 형제들이 그룹을 공동으로 경영하는 ‘형제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이런 오랜 전통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두산의 3세들은 장남인 박용곤, 차남인 박용오, 3남인 박용성, 4남인 박용현을 거쳐 현재는 5남인 박용만 회장이 그룹 총수를 맡고 있다. 2005년 발생한 이른바 ‘형제의 난’은 둘째인 박용오 전 회장이 이런 그룹 전통에서 벗어나 과욕을 부린 게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대 박두병 회장과 관련된 일화는 두산의 또 다른 전통인 합리성을 보여준다. 박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7년부터 1973년까지 대한상공회의소(상의) 회장을 맡았다. 박 회장은 박 대통령의 요청으로 외자도입심의위원을 맡아, 활발하게 외자유치 활동을 벌였다. 두산그룹의 한 전직 임원은 “당시 박 회장이 외자유치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박 대통령이 두산이 먼저 외자를 사용하라고 권했으나, 박 회장은 다른 기업한테 주라고 끝내 사양했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이처럼 합리성에 기반한 ‘기업 경영에서 지름길을 찾지 않는다’는 경영이념을 실천해, 다른 기업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두산의 전직 임원은 “두산이 100년 넘게 지속해오는 동안 많은 기업들이 한순간 재계 1~2위의 자리에 올랐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두산은 지난 수십년 동안 줄곧 재계 11~15위를 유지해 왔다. 이는 합리성을 중시하는 두산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산의 4세들은 이미 그룹 경영의 전면에 포진해 있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 회장,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 사장이 대표적이다. 박용만 회장의 차남인 박재원씨는 두산인프라코어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두산이 4세 때에도 지금과 같은 형제경영 체제를 계속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또 외환위기 속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도약에 성공한 3세들처럼 4세들이 경영 역량을 보여줄지도 미지수다. 두산도 4세 이후 경영체제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산의 전통이 살아있는 한 특별한 불협화음만 없다면 4세 때도 형제경영이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골고루 분산된 지분에 의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두산 총수 일가의 소유지배구조를 고려할 때 어느 한 사람이 그룹 경영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용만 회장은 “4세들도 3대에 걸쳐 내려온 집안의 전통 속에서 커왔는데 쉽사리 변하겠느냐. 비즈니스 패밀리의 전통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는 내일 바로 은퇴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상회→식음료→중공업 변신
3세는 다섯째 박용만 회장까지
5형제가 돌아가며 경영했다 특정 기업이나 가업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사업하는 집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믿음
4대째 이후에도 잘 이어질까 두산의 기업문화는 인화를 바탕으로 한 합리성 사고를 강조한다. 두산의 형제들이 그룹을 공동으로 경영하는 ‘형제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이런 오랜 전통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두산의 3세들은 장남인 박용곤, 차남인 박용오, 3남인 박용성, 4남인 박용현을 거쳐 현재는 5남인 박용만 회장이 그룹 총수를 맡고 있다. 2005년 발생한 이른바 ‘형제의 난’은 둘째인 박용오 전 회장이 이런 그룹 전통에서 벗어나 과욕을 부린 게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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