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기자
현장에서
국토교통부가 ‘장수명(수명이 긴) 아파트’를 짓도록 하기 위한 ‘장수명 주택 건설·인증 기준’을 마련해 2일부터 행정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사업자가 1000채 이상의 주택을 공급할 때 내구성과 가변성, 수리 용이성을 확보하도록 해서 앞으로는 아파트도 50년, 100년 가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아파트의 내구성은 18메가파스칼(㎫)에서 21㎫로 높여야 하고, 내력벽은 줄이고 가설벽은 늘려 가변성도 높여야 한다. 이중바닥을 설치해 욕실과 화장실, 주방도 위치를 바꿀 수 있게 해야 한다. 오래된 아파트도 고쳐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집의 평균 수명이 27년에 불과한 한국에서 이런 정책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불과 한달 전에 정부는 아파트의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10년이나 줄이는 내용을 포함한 9·1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안전에 문제가 없어도 생활이 불편하면 30년 이상 된 아파트를 언제든 부수고 새로 지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생활 불편은 명분이고, 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활성화해 건설 경기, 부동산 경기를 살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속뜻이다.
재건축 연한을 10년이나 줄이는 동시에 장수명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존의 장수명 단독주택은 재개발로 부수고, 장수명 아파트는 재건축으로 부수면서 앞으로 장수명 아파트를 짓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숲의 큰 나무를 다 베어내고 어린나무를 새로 심어 숲을 가꾸겠다는 것처럼 어이없다. 정부가 다른 나라들처럼 옛집과 새집이 공존하는 주거문화를 만들려면 현재의 단독주택과 아파트를 잘 고쳐 살도록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100년 된 한옥, 60년 된 단독주택, 40년 된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까. 영국의 경우 주택의 평균 수명은 77년이고, 100년이 넘은 집도 즐비하다.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 도심의 아파트는 대부분 100년이 넘은 것이다. 건설·부동산 경기를 위해서라면 멀쩡한 아파트라도 쉽사리 부수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세상엔 돈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전통과 품위가 그렇다. 이제 한국인들도 먹고살 만해졌으니 주거 문제에서도 전통과 품위를 생각하면 어떨까.
세종/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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