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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공정경쟁 위해 기업 자율규제 강화를…그래야 진화 가능”

등록 2014-10-21 21:57수정 2014-10-22 13:14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왼쪽)과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에서 청년일자리·안전·복지 등을 화두로 대담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왼쪽)과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밀레니엄 서울힐튼 호텔에서 청년일자리·안전·복지 등을 화두로 대담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14 아시아 미래포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조한혜정 명예교수 대담
타르야 할로넨 전 대통령은 특유의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2014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21일 오전 서울을 찾은 그는 짧은 휴식 뒤에 숙소에서 만난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와 1시간여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할로넨 전 대통령은 한국의 ‘삼포 세대’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내 딸은 똑같이 34살에 아이를 낳았는데, 나만 늙은 산모 소리를 들었다”고 공감을 표시하면서, “사회의 변화가 너무 빨라 아버지 세대의 교육으로는 미래에 대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

세월호 사건 막으려면
좋은 정부·건실한 기업이
지속가능 시스템 갖춰야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한국 ‘삼포세대’ 말 유행
핀란드 ‘동거권’ 부러워
양국 청년 교류 필요해

조한혜정 만나서 반갑다. 오늘 핀란드에서 한국까지 긴 시간 비행 끝에 바로 대담을 진행하게 돼 힘드시겠다. 북유럽은 1970년 이후 세계 여성운동에 불꽃을 붙였고, 핀란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함께 근대화를 이뤘으며 국민 간에 합의를 잘 이뤄 존경을 받고 있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리더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부각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타르야 할로넨(이하 할로넨) 만나서 영광이다. 즐거운 여행이었다.

조한혜정 이 대담은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성 권리의 신장과 관련해 핀란드는 가장 인상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0년대 이후 남녀평등 운동을 통해 여성이 가정 밖으로 나와 남성과 동등하게 일을 하는 데까지 진전을 보았지만, 이후 남성과 여성이 협력하는 파트너로서 함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목에서 고전하고 있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균형을 잡아야 좋은 사회인데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이 존중되고 소프트한 복지 체계를 갖춘 핀란드가 부럽고 배우는 것도 많다.

할로넨 핀란드가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는 긴 역사와 중요한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도 새로운 과제와 도전을 맞고 있는 과정이다.

조한혜정 한국은 민주화를 이뤘지만 근래 다시 후퇴하는 중이라고 본다. 세계 전체적으로도 글로벌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힘든 시기를 맞고 있다. 이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정치·경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발표를 하실 예정인데, 우선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 전 핀란드 대통령
할로넨 젊은 사람의 일자리 문제는 발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리우+20(지속가능성에 대한 유엔의 세계 지도자 협의체로 할로넨은 공동의장을 맡았음)에서도 깊은 논의가 있었다. 많은 국가들이 사람들이 복지 수입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일자리들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핀란드와 유럽연합(EU) 역시 최근 수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조한혜정 뉴이코노미, 소셜이코노미(사회적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영미 방식으로 흐르고 있는 세계 경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북유럽은 좋은 모델을 보여주었는데, 그런 방식이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특히 삼성과 같은 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크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인식이 이를 대변한다. 핀란드에서도 노키아가 고꾸라진 일이 있었다.

할로넨 큰 충격이었고, 이제 겨우 벗어났다. 노키아도 마이크로소프트 인수 뒤 회복 중이다. 노키아 사례에서 우리가 배운 점은 한 기업에 집중되는 경제 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숲은 다양한 나무가 있어야 건강하다. 핀란드는 과거 중공업에 강점을 보이다가 점차 정보통신기술(ICT)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왔고 그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네트워크 등 스마트 산업에서 다양한 강한 기업들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할 것이다. 한 회사가 한 국가에 너무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

조한혜정 국가의 역할과 관련해 한국은 세금을 피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유럽은 역사적으로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납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잘 이뤄낸 점이 부럽다.

할로넨 핀란드 국민은 자신의 세금이 가져올 효과에 관심이 높다. 25년 전 한 여성 대사가 한 말이 있다. “나는 세금을 사랑한다. 세금이 있어야 사회적 복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정신 나간 소리”라는 비난을 살 정도로 거부감이 컸다. 시간이 지나며 인식은 많이 개선되었다. 납세자가 내가 낸 돈이 정확히 어디에 쓰일지를 아는 게 핵심이다. 학교 급식, 학비 지원, 보육 서비스 등 체감하는 서비스에서 개선이 있어야 한다. 같은 북유럽 국가인 아이슬란드가 경제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한 계기와 기반이 복지였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공직자 청렴이다. 제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는데 부정부패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도둑질이라는 점이다. 심각한 범죄이기 때문에 그저 부패라고만 하면 너무 좋게 표현하는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한국에선 최근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투명성과 활발한 시민정신이 선진국의 핵심 요건이라는 논의가 일었다. 단순히 국민총생산(GNP)에 매달려온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다. 한국은 혼란에 휩싸인 굉장한 위기 상황인데, 복지도 미비한 상태라 걱정이다.

할로넨 저희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94년 여객선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한 사건이다.(당시 852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는데 여성 승객의 97%가 숨졌다.) 지난해까지 이를 기억하는 행사가 이어졌고 이제야 극복한 상황이다. 사고는 문제가 리스크(위험)와 만났을 때 일어난다. 유엔 역시 이를 강조한다. 세월호 사건을 듣고 제가 걱정했던 부분은 사고 예방과 대응 절차에서 보다 효과적인 시스템이 있었다면 그런 사고는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핀란드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는 다시 지속가능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다. 좋은 정부와 건실한 기업이 핵심이다. 에스토니아호 사고 때 승무원들은 저임금에서 일했다.

조한혜정 세월호 역시 정부가 선박 규제를 완화시키는 등 투명성 문제가 심각했고, 선장은 승객을 두고 먼저 빠져나갔다. 그는 1년 계약직이었다. 끊임없이 위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위험사회를 살아가면서 복지가 무엇이며 사회안전망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된다. 핀란드와 같이 안전망이 강한 나라는 회복을 해왔지만, 안 되어 있는 나라는 패닉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할로넨 저희 역시 완벽한 복지를 가졌다고 하긴 어렵다. 핀란드에서 살아보신다면 위험 요소들을 발견할 것이다. 위험의 한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복지에서 집중할 부분은 교육이다. 지금 위험은 개발과 성장이 너무 빨리 이뤄지면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점들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의 교육만으로는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 기업들은 항상 법과 규제를 너무 싫어한다. 늘 “규제가 너무 강해 창조적 기업활동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시장경제 체제는 회사들의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데, 이 체제에서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기업들이 자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세계적인 합의를 통해 강제하는 것보다 기업들이 자기 활동을 스스로 바꿔나가야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한혜정 일상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핀란드에 부러운 점 하나가 동거권(전통의 결혼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파트너를 가족으로서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할로넨 유럽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제 경험에 비춰보면 어머니가 저를 25살에 낳으셨는데 의사가 “나이가 많다”고 했다. 저는 제 아이를 34살에 낳았는데 같은 말을 들었다. 제 딸 역시 34살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무도 산모가 나이가 많다고 하지 않았다. 삼포세대는 도시화 문제이기도 하다. 젊은 청년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한데, 이를 마련하기 어려우니 아이를 가질 용기를 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핀란드에서는 일생에 한번은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일생에서 가장 큰 투자일 것이다. 개인마다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다. 시장경제와 개인들의 계획을 통합해서 보면, 경제 체제로 인해 자기 계획대로 살기 어려운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의 경우 싱글맘이나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이는 북유럽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우리의 경우 이혼을 했건 싱글맘이건 여성과 아이에 대해 상당한 존중을 한다. 남성도 육아에 있어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옛말에 ‘꿈은 깨어져도 인생은 계속해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제도적인 결혼이라는 틀이 깨어지더라도,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는 부분은 계속될 수 있도록 사회가 집중해서 살펴야 한다.

조한혜정 한국에서도 그 부분이 핵심이라고 본다. 결혼을 제도로서 보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책임은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 돈 있는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사례들이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념을 보여준다. 제도가 아니라 실제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고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할로넨 20년 전에 유엔의 ‘국제인구개발회의’(ICPD)에서 인력과 인구 개발에 대한 회의가 있었는데, 지금 나온 주제들은 누구도 제안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곧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런 내용이 포함된) 지속개발을 위한 보고서를 발표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세대들의 결혼은 여전히 다루기 힘든 문제이지만,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슈인 것은 확실하다.

조한혜정 유엔과 국가 단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로부터 시작하는 변화,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변화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핀란드의 청년들이 서로 상대방의 나라에 1년가량 머물면서 서로의 삶을 보고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활동의 장을 여는 교류의 활성화다.

할로넨 공감한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서로 사이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데, 그런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연합의 모든 나라의 고등학생, 대학생이 회원국의 어떤 학교에도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청년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문화를 겪고 살아보는 경험을 쌓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핀란드와 한국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두 나라의 국민은 모두 자신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고, 삶을 개선하려는 욕구가 큰 나라들이다.

조한혜정 시니넨 베르스타스(북유럽의 직업교육 학교)와 서울시립 직업체험센터 ‘하자’가 서로 교류를 하면서 핀란드 청년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한국에 대한 인상이 매우 호의적인 것을 느꼈다. 두 나라가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사회적 리스크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지혜를 계속 발견해갔으면 한다.

할로넨 그렇게 되길 바란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대화였다.

조한혜정 좋은 말씀에 감사드린다.

정리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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