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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이재용 리더십 세우려면 이건희 체제 흔들어야”

등록 2014-11-10 15:17수정 2014-11-10 15:18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1년 4월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 사무실에 처음 출근한 뒤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사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1년 4월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 사무실에 처음 출근한 뒤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사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삼성 연구서 2탄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펴낸 조돈문 교수…
“아직 삼성이 변화하려는 진정성 믿을 수 없지만 변화할 가능성, 조건은 있다”
11월14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는 삼성SDS 공모주 청약이 11월6일 마감됐다. 최종 경쟁률은 134 대 1로, 15조5520억원의 엄청난 자금이 몰렸다. 일반 투자자들은 1주당 19만원의 공모가로 주식을 사야 한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9년 발행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1주당 7150원이란 싼값으로 넘겨받아, 삼성SDS 주식을 대거 취득했다. 이재용 부회장(11.25%)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3.9%),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3.9%) 등 삼성가(家)의 삼남매가 이번 상장으로 거둘 차익추정치만 해도 2조7천억원가량이다. 당시 BW 발행을 주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배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인주 삼성선물 사장도 각각 3.97%와 1.71%의 지분을 갖고 있어 수천억원대의 차익을 챙겨갈 것으로 보인다. 돈은 법보다 강했다. 상장 이후에 주가가 상승하면, 이들이 갖고 있는 주식을 팔아 깔고 앉을 돈방석은 훨씬 더 두툼해진다.

이처럼 과거 불법과 비리의 그늘로부터 삼성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삼성은 그늘에서 벗어나, 빛을 찾아가려 노력하고 있긴 할까? 11월3일 출간된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조돈문·이병천·송원근·이창곤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은 “변화를 거부하는 삼성에 미래는 없다”고 지적한다. “이건희 체제의 악습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이건희 시대가 끝나도 ‘이건희 없는 이건희 체제’는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768쪽이나 되는 두툼한 책에는 27명의 학자,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댄 공동연구물 20편이 실려 있다. ‘삼성전자의 축적 방식 분석: 세계화 시대 한국 일류기업의 빛과 그림자’(이병천), ‘이재용 시대, 삼성 재벌의 지배구조’(송원근), ‘아파트 공화국 삼성의 래미안 공간 지배’(전규찬), ‘삼성의 언론 지배 방식과 현실’(김서중) 등 경제·사회·문화·언론을 아우르는 삼성에 대한 종합보고서다. 2008년 펴낸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를 잇는 ‘2편’이기도 하다.

“변화를 거부하는 삼성에 미래는 없다”  

2008년에 이어 이번 책을 기획하고 공동연구자들을 모은 사람은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다. 책이 출간된 지난 11월3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다시 삼성을 묻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2시간의 강연회에 더해, 2시간여의 추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11월10일에는 같은 자리에서 정범구 전 의원의 사회로 이병천 강원대 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이 나오는 출판 기념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삼성 연구서’를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낸 이유가 있나.

한국 사회에서의 삼성을 좀더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삼성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2008년엔 연구자 10여 명이 3년 동안 공동 연구해서 출판을 준비했다. 당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과 삼성특검이 있었다. 삼성의 불법행위와 비자금 등이 드러났지만, 특검은 삼성의 잘못을 바로잡아주지 못했다. 그 뒤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삼성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2012년부터 2탄을 준비했다. ‘이건희 시대’가 끝나기 전에 제대로 평가하고,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 삼성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 결과를 모아 지난해 12월부터 6차례 연속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다. 조만간 경영권 승계가 있을 듯해서 출판을 조금 서둘렀다.

 
삼성을 종합적으로 해부한 공동연구서를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펴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삼성이 아니라 삼성 총수 일가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삼성을 종합적으로 해부한 공동연구서를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펴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삼성이 아니라 삼성 총수 일가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이건희 시대 끝나도 이건희 체제 지속될 것”  

첫 번째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2008년엔 문제의식을 던졌다. 하지만 삼성에 묻기만 해서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대국민 사과를 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몇 년 뒤 비등기임원으로 경영에 복귀했고, (차명 주식을 실명 전환한 뒤 남은) 1조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해체된 구조조정본부는 미래전략실로 복원됐다. 이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응과 운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했다(조 교수는 노동·인권·시민·종교·학계가 모인 이 단체의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첫 번째 책은 전문학술도서로 삼성에 대해 진단하는 게 끝이었다. 이번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참여사회연구소, 함께하는시민행동,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등 4개 단체가 출판을 기획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등도 후원했다.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이들 단체가 삼성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이건희 회장이 6개월째 병상에 누워 있는데.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도, 한국 사회를 완벽하게 지배하게 된 것도 ‘이건희 시대’다. 삼성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이건희 시대는 끝났으나, 이건희 체제는 지속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와 에버랜드(현재 제일모직) 지분을 확보한 건, 주식을 싼값에 발행해서 몰아주기를 했기 때문이다. 삼성SDS BW 건은 이건희 회장 등의 불법행위가 인정됐고, 에버랜드 배임 건은 대법원에서 팽팽하게 의견이 갈려 ‘6 대 5’로 무죄 선고됐다. 그런 두 회사를 그대로 상장한다는 건, 불법·비리의 결과물을 갖고 이재용 부회장이 지배·경영권을 다 물려받겠다는 거다. 이재용 삼남매는 수조원의 상장차익을 얻게 되는데, 그걸로 상속세도 내고 그룹 지배권을 장악하겠다는 거다.

그래도 최근엔 백혈병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교섭에 나서고, 삼성전자서비스 AS 기사들과의 교섭 타결을 막후 지원하는 등 달라진 측면도 있지 않나.

어쨌든 옛날 식으로 덮고 넘어가지 않긴 했다. 사회적 압박과 어느 정도 타협한 거다. 하지만 백혈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진행 중인 지난 8월에도 노동자 1명이 백혈병으로 숨졌다. 그런데도 삼성은 교섭장에 나와서 ‘현장은 깨끗하고 위험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뿌린다. 여전히 생산 현장의 위험한 상황을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교섭 과정에서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대책위원회 양쪽으로 갈라진 것에 대해서도, 삼성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반올림은 피해자 가족만이 아니라 삼성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 그걸 지켜보는 국민을 대신해서 교섭에 나섰다는 점이다. 반올림에 제보한 삼성 계열사 직업병 사망자만 99명이다. 한두 명이 죽은 건 실수지만, 99명은 살인 행위다. 유해물질이 노동자를 죽인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했고, 진실이 알려지는 걸 은폐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3일 출간된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단행본 표지.
지난 11월 3일 출간된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단행본 표지.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조 교수는 “삼성과 싸우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이 아니라, 지배·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불법·비리 행위를 저지르는 삼성 총수 일가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삼성은 총수 일가가 아닌 삼성 구성원 전체의 것” “우리의 목표는 삼성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삼성이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이 망하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는 믿음이 워낙 큰데.

한국 사회는 삼성에 대해 이중적 시각을 갖고 있다. 한국 경제성장의 상징이지만, ‘은둔의 제왕’이라는 제목을 달고 <뉴스위크> 표지 인물로 나오는 이건희 회장은 부끄러운 거다. 삼성은 늘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삼성이 국가경제를 책임진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까? 삼성의 인건비 대비 배당 성향은 12.5%로 30대 그룹의 중위값 7.7%보다 월등히 높다. 노동자보다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거다. 또 4대 법인의 실효법인세율도 삼성이 16.9%, 현대차 19.6%, SK 24.2%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린다? 대한민국이 삼성을, 삼성이 주식 부자들을 먹여살리고 있는 거다.

삼성에 변화를 요구하는 핵심 내용이 뭔가.

크게 3가지다. 첫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와 에버랜드 지분 취득 과정에서 애초 잘못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부당하게 취득한 지분으로 지배권을 승계하려는 걸 바로잡아야 한다. 둘째, 지배권과 경영권을 독점·세습하지 말라는 거다. 주식이야 세금 내고 자식에게 물려주면 된다. 하지만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라는 거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주식시장 시가총액 점유율은 40%가 넘는다. 하지만 후계자를 선정할 때 기준은 경영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냐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그냥 고 이병철, 이건희 회장과 DNA 구조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발탁된 거 아니냐. 셋째,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기하라는 거다. 지배구조 개선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건 돈도 안 들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삼성이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시험지다.

이건희 시대가 끝나고, 이재용 시대로 넘어가면 달라질까.

아직 삼성이 변화하려는 진정성을 믿을 수는 없다. 다만 변화할 가능성, 조건은 있다. 아버지 것을 물려받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건물관리인과 같은 식이 아닌 새로운 이미지를 원한다.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을 거다. 의료바이오 등 신수종 사업을 이야기하지만, 내용적으로 새로운 삼성으로 보여줄 만한 게 없다. 그러면 불법·비리를 털어내는 게 대안일 수 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체제에서 있었던 불법·비리의 수혜자인 건 분명하지만, 자기가 직접 불법·비리를 기획하고 집행했던 인물은 아니다. 이재용 리더십을 구축하려면 불법·비리에 연루된 이건희 체제를 흔들 필요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으로 바뀌는 것만 해도 변화에 유리한 조건은 된 거라고 판단하는 이유다.

 

지배구조 개선, 변화 의지 판단하는 잣대

세 번째 책도 나오나.

물론이다. (웃음) 삼성의 경쟁력을 노동, 경영 방식 등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작업을 구상 중이다. 또 정부나 사법부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건 등 삼성에 면죄부를 많이 줬는데, 삼성의 불법·비리와 위기는 현재진행형 아닌가. 그동안은 역사에 평가를 맡기자고 했는데, 이제는 국민법정 방식으로 심판대에 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든다.

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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