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여개 회원사에 ‘운영지침’ 배포
“유휴인력 해소·인건비 절감” 강조
위로금 산정방식 등 매뉴얼 마련
‘명퇴 분위기 조성’ 의도 비판예상
“유휴인력 해소·인건비 절감” 강조
위로금 산정방식 등 매뉴얼 마련
‘명퇴 분위기 조성’ 의도 비판예상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사용자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사실상 명예퇴직을 적극 권고하는 지침을 회원 기업들에 내려보냈다. 기업 규모를 불문하고 실적 악화 공포가 번지고 있는 와중에 ‘명퇴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비판을 살 수 있는 움직임이다.
경총은 13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기이사회를 열고 ‘명예퇴직제도 운영 지침’을 124개 이사회원기업에 주요 사업내용으로 보고한 뒤, 전국 4000여개 대·중소기업 회원사에 일제히 배포했다. 경총이 매년 초 제시하는 임금교섭 가이드라인과 유사한 성격이다. 경총은 이날 “정년 60세 의무화,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노동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기업 인력운영에서 전략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명예퇴직을 통해 유휴인력 해소와 인건비 절감 등 인력운용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노동법·제도 체계에서 순수 자발적 퇴사 이외에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인력조정 방안은 △(기존의 노사 합의로 단체협약에 자율적으로 정한)정년제 △경영상 해고(정리해고) △명예퇴직이 있다. 하지만 대개 단협상 55~57세로 돼 있는 정년이 2016년 대기업부터 ‘정년 60세’ 강제조항으로 의무화되면서 정년제를 활용한 인력조정 통로가 막히게 됐다. 정리해고는 충족해야 할 법적 요건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격렬한 노사갈등을 불러와 큰 부담이 있다.
경총의 지침은 이러한 조건 변화 속에서 그 대안으로, 형식상 자발성을 띠고 상대적으로 갈등이 적은 명퇴를 적극 독려해 인력조정 숨통을 터주려는 기획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팀장은 “회원기업들의 요구도 어느 정도 고려해 오래 전부터 명예퇴직 방안을 연구해왔다”며 “지침 내용은 퇴직인원수·대상자 범위·보상처우를 얼마나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설계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경총은 특히 명예퇴직 위로금 산정 표준모델까지 개발한 뒤 이를 담은 ‘명예퇴직 제도의 운영과 사례’ 매뉴얼을 이날 회원사에 함께 뿌렸다. 매출액 순이익률과 부채비율을 고려해 위로금 조정비율을 산정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산출식은 물론, 퇴직대상자 면담 행동요령까지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하 팀장은 “조선·건설업종의 경우 몇년째 실적 악화로 고용조정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는데, 대기업은 어느 정도 명퇴 위로금 지급여력이 있으나 중견기업은 위로금 과다지급 문제로 실제로 명퇴를 단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위로금 산정방식은 이런 어려운 기업을 기준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경총이 고용보험법에 따른 임금피크제 매뉴얼이나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판단기준 매뉴얼을 만들어 회원사들에 제시한 적은 있지만 노동법에 아무런 근거가 없는 명예퇴직 매뉴얼을 마련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매뉴얼에 다소 엉뚱하게도 국가공무원법상의 명예퇴직 규정까지 끌어들여 명퇴의 “법률적 근거 개념을 유추”한 대목은 이 지침이 은연중 명퇴 유도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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