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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쳇바퀴 도는 신불자

등록 2005-09-23 19:14수정 2005-09-23 19:29

“빚 탈출”워크아웃 허덕이다 파산신청

#1.“개인워크아웃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 회사가 어려워 실직하는 바람에 더이상 상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120만원 월급에 80만원 상환하면서 힘들게 1년을 버텼는데 더이상은 무리네요. 이제 살아남을 길은 파산밖에 없는 것 같아요.”(32살·여)

#2.“워크아웃을 하면 빚에서 헤어나고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상황이 개선되기보다는 악순환의 연속이네요. 저도 법원의 개인회생제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27살·남)(인터넷포털 다음의 ‘신용불량자 카페’에서)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 같은 민간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빚 상환에 나섰던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들이 상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회생이나 파산 신청을 위해 법원으로 가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개인회생·파산 전문 변호사들과 신용불량자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와 관련한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상환조건 까다로워 중도탈락 급증
개인회생·파산신청 올 2배로 늘어

조재현 변호사는 “지금까지 상담한 2천여명의 신용불량자 중 절반 가량이 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 경험자였다”며 “이들은 대부분 5~6개월 정도 빚 상환을 하다가 견디지 못하고 개인회생이나 파산 신청을 냈다”고 말했다. 권정순 변호사도 “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 참가자들이 전세보증금이 3천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줄어들 때까지 기를 쓰며 빚을 갚다가 그래도 안되니까 법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1차 배드뱅크인 한마음금융 및 워크아웃 탈락자와 개인회생·파산 신청자 수에서도 확인된다. 한마음금융 참가자 18만3948명 가운데 석 달 이상 연체해 탈락한 사람은 8월 말 현재 3만4946명(19%)으로 5명 중 1명이 중도탈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워크아웃 참가자 44만여명 중 중도탈락자도 4만명(9%) 가량인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개인회생·파산 신청자는 올해만 4만2253명(1~7월)으로 지난해 신청자(2만1387명)의 두배나 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워크아웃과 배드뱅크의 빚 상환 조건이 채무자에게 가혹한데다 채무자들이 중간에 질병·실직 등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는 8년 분할 상환, 이자 감면 등의 혜택을 주지만, 개인회생·파산에 비해 원리금 감면 폭이 매우 작다.

김아무개(52·도장업)씨는 지난해 6월부터 워크아웃을 시작했다. 부채가 7천만원인 김씨는 처음에는 70만원씩, 11월부터는 90만원씩 갚아 나갔다. 그는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갚아 나가려고 했으나 올해 5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100만원이 조금 넘는 한달 수입으로는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달 파산신청을 낸 그는 “애초에 개인회생이나 파산으로 갔어야 했는데 그런 제도가 있는지 몰랐고 신용회복위원회에서는 파산에 대해 전혀 얘기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드뱅크 관계자는 “중도탈락한 사람들은 대부분 생활형편이 정말로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에서 중도탈락하면 이자 감면 등의 혜택이 없어지는데다 채권금융기관의 추심에 다시 시달리게 된다. 문제는 중도탈락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배드뱅크 관계자는 프로그램 참가자 중 절반만 끝까지 가도 성공적이라고 얘기하고 있으며, 일부 전문가는 20% 정도만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신용회복위원회와 배드뱅크가 채무자들이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상환 계획을 짜고, 애초에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신용회복이 불가능한 채무자들은 개인회생·파산으로 유도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용불량자 ‘길거리 상담’을 1년째 해오고 있는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신용회복위원회와 배드뱅크는 채권자들의 추심기구인 만큼 채권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 기구의 공익성을 강화하거나 별도의 무료상담기구를 만들어 신용불량자들이 자기 처지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도록 안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돈 없으면 파산신청 말라?

정부의 신용불량자 대책이 나온 지 2년, 신용불량자 등록제도를 폐지한 지 반년이 지나가지만 신용불량자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23일 “금융채무 불이행자 문제가 더이상 확장되지 않고 가닥이 잡히고 있다”며 “신용불량자 등록제도가 폐지되면서 숫자를 집계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 추계를 해보면 지난해 말 361만명에서 차츰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들어 워크아웃(18만여명)이나 2차 배드뱅크(10만여명),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8만6천여명), 개인회생·파산제(4만여명) 등을 통해 40만여명이 새로 채무재조정을 하고 있는데다, 신규 연체율이 줄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행정비용 50만원·변호사비 최고200만원
자영업자·청년층등 신용회복 신청 저조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정부 주장과는 다르다. 우선 워크아웃과 배드뱅크의 중도탈락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다, 올해 3월 내놓은 생계형 신용불량자(기초생활보장수급자·영세자영업자·청년층) 대책도 대상자들의 신용회복 신청이 저조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기초수급자의 신용회복 실적은 지난 16일 현재 대상자(15만5천명)의 40%인 6만2천여명이 신청을 해 양호한 반면 영세자영업자와 청년층의 신청률은 각각 7.8%, 18%에 그치고 있다. 이는 기초수급자의 경우 ‘기초수급자로 있는 동안은 상환유예’ 지원을 해줘 사실상 채무탕감 혜택을 주는 반면 영세자영업자와 청년층은 지원이 많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개인회생이나 파산과 같은 공적 채무조정 프로그램 참여자도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신용불량자 전체 수에 견주면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개인회생 신청자는 지난해 9천여명에서 올해는 2만5천여명, 파산 신청자는 지난해 1만2천명에서 올해는 1만6천여명으로 증가했다. 이헌욱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은 “신용불량자 외에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등 신용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500만명으로 추산된다”며 “이에 견줘볼 때 개인회생·파산 신청자 수는 너무 적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의 파산 신청자는 전체 인구의 0.5%, 0.1%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0.03%에 불과하다.

개인파산이 좀더 빨리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그리고 비용 부담 등 때문이다. 김관기 변호사는 “파산 선고를 받으면 의사·공무원·교사 등 150여개의 직업 종사자들이 자격이 상실되며, 순수 행정비용으로만 50만원, 변호사에게 의뢰할 경우 100만~2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신용불량자 수가 감소하기는 했지만 소득과 소비의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크게 줄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하위 20%의 저소득층 가계 수지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어 신용불량자 수가 갑자기 줄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여전히 우리 경제에 잠재적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미 시행중인 정부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철저히 점검하는 한편 개인회생·파산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헌욱 위원장은 “정부의 대책은 주로 소규모 연체자에게 집중돼 있고 실제로 심각한 문제인 고액의 과중채무자들에 대해서는 개인회생·파산제를 언급할 뿐 거의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개인회생·파산 신청자에 대한 무료 법률구조사업과 함께 파산 선고자에 대한 자격·직업상 불이익 금지, 임대차 보증금을 비롯한 최소한의 재산 보호 등을 규정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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