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업영화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카트’의 한 장면. 영필름 제공
비정규직 문제와 해법을 둘러싸고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이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7년째 공고화된 ‘비정규직 800만명대’ 현상의 배경에 대기업의 비정규직 사용 행태 및 전략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7월, 대기업의 ‘선도적인 사회적 책임과 자율적 고용구조개선’을 내걸고 시행된 고용형태공시제에 따라 300인 이상 대기업(2942개)이 처음으로 고용안정정보망(워크넷)에 각 사의 고용형태를 공시했다. <한겨레>가 19일 이 공시내용을 업종별로 살펴본 결과, 전자·자동차·조선·건설·철강 업종에 걸쳐 재벌 대기업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파견·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사용비율에서 거의 유사한 행태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업종을 보면, 삼성전자는 직접고용 상시근로자(총 9만7266명) 중에서 정규직 9만6237명·기간제 980명인데, 간접고용인 ‘소속외 근로자’는 2만6304명(상시근로자 대비 소속외 근로자 비율 27%·이하 동일)이다. 엘지(LG)전자는 상시 총 3만8285명 중 기간제가 751명에 불과하지만 ‘소속외’는 4081명(10%),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상시 총 2만1011명 중에 기간제가 6명에 그쳤으나 소속외 4905명(23%)이다. 직접고용 기간제의 숫자·비율은 작은 반면, 파견·사내하청 비율이 상대적으로 꽤 높다. 특히 엘지전자를 제외하면 같은 업종에서 어느 재벌기업을 불문하고 상시 대비 소속외 비율이 23~27%로 거의 일정하다는 사실이 뚜렷이 확인된다.
조립완성차업종에서도 개별 대기업의 ‘소속외 비율’은 거의 일정하다. 현대차는 상시 총 6만3937명·소속외 1만1066명(17%), 기아차는 상시 총 3만3645명·소속외 4873명(14%), 한국지엠(부평공장)은 상시 총 1만6843명·소속외 3984명(23%)이다. 상시 대비 소속외 비율이 14~27% 사이에 걸쳐 있다. 조선·철강 업종에서도 각각의 기업별 차이가 거의 없다는 ‘특징’이 발견되는데, 소속외가 상시근로자보다 훨씬 많거나 거의 육박한다. 철강의 경우, 포스코는 상시 총 1만8036명·소속외 1만5723명, 현대제철은 상시 총 1만807명·소속외 1만1956명으로 나타났다.
전자업계 대부분 23~27% 유지
완성차·조선 부문도 14~27%선
“기업들 균형점 찾아 일제히 시행”
비정규직 191만명으로 44% 달해
전체 비정규직 비율과 거의 비슷
‘대기업이 앞장서 해법 제시해야’
이광호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정책팀장은 “개별 기업과 업종마다 기업의 성과를 고려할 때 비정규 인력 비중을 어느 정도로 가져가는 게 최적인지 나름대로 적정한 균형점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고용전략을 펴고 있다”며 “비정규직법 등 제도적 규제의 충격은 민간 대기업에서 3~4분기 정도 지나면 그 효과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규모는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총 818만~865만명 사이를 7년째 오르내리고 있다. 언뜻 증가 추세가 멈춘 것으로 보이지만, 비정규직법·제도와 노동조합의 투쟁 효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크게 떨어지지도 않은 채 ‘공고화’하는 추세가 확연하다. 여기엔 파견·하청 등 대규모의 ‘소속외 근로자’를 기반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는, 모든 재벌 대기업의 똑같은 고용전략이 한 가지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이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특히 사용자단체는 “전체 비정규직 중에 300인 이상 대기업은 5.6%(2013년 8월 기준)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30인 이하 중소영세사업장에 존재하기 때문에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고용형태공시 자료를 들여다보면 대기업이 비정규직의 온상이자 주범으로 지목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공시 자료 분석결과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전체 임금노동자(435만8천명) 중에 비정규직은 191만명으로 43.8%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8월 현재 전체 비정규직 비율(전체 임금노동자의 45.4%·852만명·한국노동사회연구소 추산)과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은 비정규 문제의 소재지와 해법이 ‘대기업’에 있음을 보여준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