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농민시장은 2000년 처음 개설된 뒤 50여곳으로 늘어났다.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만나 얘기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가는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옥스퍼드 농민시장에서 노부부가 지역농민이 키운 화분을 고르고 있다. 대산농촌문화재단, 뉴질랜드농업연구소 제공
뉴질랜드 농민시장 탐방기
글로벌화의 가속으로 농업개방의 압력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15일 뉴질랜드와의 자유무역협정(FTA)도 사실상 타결됐다. 23%의 낮은 식량자급률로 식량주권에 대한 우려도 높아진다. 지역농민들이 주민들에게 중간상 없이 건강한 먹을거리를 파는 농민시장은 의미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농민시장에서 생산자는 제값으로 팔고, 소비자는 저렴하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살 수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정기적으로 만나 얘기를 나누며 신뢰도 쌓여 지역공동체도 살아난다. 이런 신뢰에 기초해 다른 형태의 대안적 농업과 거래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지역 여성농민 16명이 대산농촌문화재단의 여성농업인 리더십계발 연수에 참여해 뉴질랜드 농민시장을 함께 둘러봤다.
농민·소비자 함께 만든 생활문화공간
2000년 첫 개설, 50여곳 민간 자율운영
정부·공공기관, 장소 제공 등 간접지원
지역공동체의 참여와 협력 이끌어내야 지난 8일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옥스퍼드 마을의 한 공원에서 작은 농민시장이 열렸다. 8년째 폭우나 폭설 때를 빼고는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지역 농민들과 소비자들이 만나는 장터가 문을 연다. 수제 빵·햄 등 육가공품, 칠리 등 소스, 연어 등 수산물, 유기농가의 과일, 가족농으로 키운 채소, 방사 달걀, 견과류, 꽃, 묘목, 감자, 수제 파이 등 20여개 품목이 소비자들과 만난다. 장터 한쪽에선 아이들이 합창을 하거나 악기 연주 실력을 뽐내고 있다. 농민 판매자와 소비자는 한 주 만에 만나 그간의 안부를 묻고 얘기도 나눈다.
장터가 열리는 공원은 지역공원위원회가 공짜로 빌려준다. 농민 판매자들이 매회 내는 20뉴질랜드달러(1만8000원)를 운영비로 쓰고 있다. 조세핀 우드필드(73)는 옥스퍼드 농민시장 초기부터 함께해온 운영위원이다. 현재는 시장 매니저를 맡고 있다. 학교 보조교사인 그는 “농민시장은 돈을 버는 것보다 지역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는 현재 50여개의 농민시장이 있다. 뉴질랜드 면적이 남한의 2.5배인데 인구는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적잖은 숫자다. 직거래 농민시장은 2000년 처음 북섬 호크스베이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부터 농민시장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영향을 받아서다. 뉴질랜드 농민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의 의미를 넘어선다.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의 공간이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농민시장을 제도적으로 지원하지는 않는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이 일찍부터 지역 먹을거리(로컬푸드) 확산을 위해 법을 만들어 농민시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민간 자율에 맡기는 뉴질랜드 정부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한다.
물론 지역 정부나 공공기관은 농민시장 참여자들이 지원을 요청할 때는 적극 도움을 준다. 오클랜드 인근 부둣가 수상비행기 격납고를 개조해 2011년부터 매주 토·일 오전 9시~오후 1시 열리는 홉슨빌포인트 농민시장은 최근 장소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 3000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인 새도시 조성으로 그동안 무료로 사용해오던 공공기관(ATEED·Auckland Tourism, Events and Economic Development·아티드) 소유의 공간이 팔리기 때문이다. 유기농 양봉을 하며 운영위 회장을 맡고 있는 테리 쇼투미(47)는 이사들과 함께 아티드를 찾았다. “농민시장의 의미와 운영의 어려움에 대해 들은 아티드 관계자들은 운영위 워크숍을 지원하고 농민시장이 장소를 계속 사용하는 조건을 걸어 매각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부분의 뉴질랜드 농민시장은 농민과 소비자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로 꾸려진다. 대개 5~7명의 이사가 중심이 되어 이사회를 만들고 연 1회 총회를 연다. 이사는 1년 임기로, 매년 총회에서 뽑는다. 이사 후보자들은 꼼꼼하게 이력을 적고 농민시장에 대한 비전을 구체적으로 써내야 한다. 이사회는 판매대 위치 지정, 품목 조정 등을 결정한다. 시장을 운영하는 매니저를 뽑고, 홍보전략도 세운다.
뉴질랜드 농민시장은 이제 성장기에 들어섰다. 초기의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운영위원회의 경험도 쌓이고 인지도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여러 실험도 이어진다. 옥스퍼드 농민시장은 수익이 나면 지역 봉사단을 후원하기도 한다. 홉스빌포인트 농민시장은 주변 고등학교와 협업해 학생들이 취업 전 판매 경험을 해볼 수 있게 기회를 준다.
농민시장이 풀어가야 할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쇼투미는 “소비자들에게 농민시장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일 거라는 믿음을 줘야 하고, 농민 판매자들이 적절하게 수익을 낼 수 있게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운영에서는 신선농산물, 가공농산물, 즉석조리 음식 등의 비율을 균형있게 맞춰 나가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뉴질랜드 농민시장을 둘러본 한국의 지역 여성농민들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위를 꾸려 직거래 장터를 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영미 충남 서산 초록꿈틀마을 사무장은 “시골 작은학교의 학부모들 중심으로 아이들도 참여하는 정기적 직거래 장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클랜드·크라이스트처치/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2000년 첫 개설, 50여곳 민간 자율운영
정부·공공기관, 장소 제공 등 간접지원
지역공동체의 참여와 협력 이끌어내야 지난 8일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옥스퍼드 마을의 한 공원에서 작은 농민시장이 열렸다. 8년째 폭우나 폭설 때를 빼고는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면 어김없이 지역 농민들과 소비자들이 만나는 장터가 문을 연다. 수제 빵·햄 등 육가공품, 칠리 등 소스, 연어 등 수산물, 유기농가의 과일, 가족농으로 키운 채소, 방사 달걀, 견과류, 꽃, 묘목, 감자, 수제 파이 등 20여개 품목이 소비자들과 만난다. 장터 한쪽에선 아이들이 합창을 하거나 악기 연주 실력을 뽐내고 있다. 농민 판매자와 소비자는 한 주 만에 만나 그간의 안부를 묻고 얘기도 나눈다.
홉슨빌포인트 농민시장에서 농민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자신이 만든 다양한 종류의 올리브오일을 맛보이고 있다. 대산농촌문화재단, 뉴질랜드농업연구소 제공
홉슨빌포인트 농민시장 운영위원들. 대산농촌문화재단, 뉴질랜드농업연구소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